소설가 김재찬

(509) 11 보수·친일·유신단죄 51

납득할 만한 설명 없이, 연예계에서 힘쓰는 ‘협회’에서 무조건 출두하라는 연락이 가는 것이다. 

이런 일로 한두 차례 곤욕을 치른 경험이 있는 연예계 제작진 사이에 소문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개인의 자유나 언론의 자유가 완전한 민주정만큼 향상되기 힘들어지고, 사회가 경직화되며 인권탄압과 독재자의 권력과 향락에 빠진다. 

10·26이 일어난 곳은 안가(安家)였다. 대통령이 청와대 인근에 비밀 안가를 만들어놓고 질펀하게 놀았다. 대통령의 고정 집무실이 청와대 안에 엄연히 있고, 또 휴식을 취할 장소도 청와대 경내에 다 갖춰져 있는데 군사정권은 안가라는 이름을 붙여 따로 12채나 호화로운 집을 지었다. 

그곳을 비밀 아지트 삼아 ‘오늘은 이 안가, 내일은 저 안가’를 오가며 공작정치를 펼쳤다. 안가에서는 보통 한 달에 10여 차례나 탤런트 등 미희(美姬)들을 불러다 옆에 앉히고 술판을 벌였다고 한다. 광기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한심한 정치군인들이 보여준 타락의 극치였다. 

이런 문화는 민주화 이후의 사회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민주화 이후 고위직 인사들의 국회청문회를 보면, 우리나라 지도층이라는 사람들이 특권을 활용해 국민이 다 가는 군대도 안 가고, 세금도 포탈하고, 위장전입·부동산투기·뇌물수수 등 온갖 부정행위를 한 것이 밝혀져 국민을 실망시켰다. 

심지어 많은 사람들이 “그때는 다 그랬다니까”라거나 “누구나 다 하는 관행이었고, 그렇게 안 한 사람이 누가 있느냐”라고 항변했다. 

오히려 잘못을 잘못이라고 지적하는 사람들에게 “너무하는 것 아니냐”며 “이런 청문회를 통과할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일 할 사람의 업무능력은 검증하지 않고 도덕군자를 찾는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맞다. 박정환으로부터 전두환·노태우까지 무려 32년 동안 군사독재정권, 세뇌화 되었던, 그들의 세상이 이어지면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군사 문화가 그랬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부패 공화국’이었음을 자랑인 양 자백하는 한심한 나라가 된 것이다. 

독재로 비판력을 상실한 채 세뇌된 사람들은, 박정환이 경제를 일으켜 두 끼밖에 못 먹던 대한민국 국민들이 비로소 한 끼를 더해 세끼를 먹게 됐고, 조상 대대로 내려왔던 보릿고개도 넘었다고 말했다. 

또 먹는 문제가 해결돼 민주화도 이를 수 있었다고, 이 모든 것이 박정환이 한 일이라고 치켜세운다. 

일본군에서 남로당으로, 남로당에서 국군으로 박정환은 일제강점기 때 빼앗긴 나라를 되찾겠다든가, 나라를 위해 충성하겠다는 마음 같은 것은 애당초 없었다. 그저 주어진 환경을 최대한 이용해 출세를 해야겠다는 일념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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