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재찬

각하는 술이 취하면 으레 둘 중 마음에 드는 쪽으로 몸이 기울었다. 그리고 그 다음 일은 경호실장과 이 관립 비밀요정의 담당자만 아는 비화속에 묻혔다. 박정환은 만주군 출신답게 때로는 여자에게 기모노를 입힌 채로 농락하였다. 

착실히 썩어가고 썩어가면 썩어갈수록 단 냄새는 진해지고, 몸에서 흘러나와 베개를 적신 것은 땀이 아니라 피눈물이다. 

박 정권은 정권에 우호적이지 않은 지식인들을 정리할 목적으로 대학정비사업을 추진했다. 여기에 휘말린 대구대학의 운영자였던 독립운동가 최준은 삼성그룹 이맹희 회장에게 대학을 넘겼고, 삼성 사카린 밀수사건 때 삼성은 대구대학을 정부에 넘겼는데, 이 또한 국고로 귀속되지 않고, 다른 헌납대학인 청구대와 합쳐 영남대가 되었다. 

이맹희 회장의 회고록에서 “70년대 초반, 삼성은 대구시의 대구대학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후락 씨가 어느 날 ‘대구대학을 정부에 넘기라’고 요구를 해왔다.”고
삼성은 정부에 헌납을 한 것이라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들 대학은 사유화가 되었다. 이 막중한 일을 누가 한 짓인가? 
이들을 포함하여 이름이 오르내리는 몇몇 반역자들은 결국 아무 일 없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을까? 아니면 숨죽이며 형사범으로 처리될 가능성에 몸을 떨기나 했을까? 삶의 가장 큰 상실은 죽음이 아니다. 가장 큰 상실은 살아있는 동안 우리 내부에서 죽어가는 것이다. 

박정환은 제3차 5개년 개발계획의 하나로 산지개발을 지시, 설악관광주식회사의 대표 겸 민주공화당 국회의원 한병기(주미대사)는 “1970년 1월 13일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이 완공된다"고 밝혔다. 

이후 이 사업은 상당한 의혹을 받고 있는데, 설악산이라는 국립공원에 단독으로 케이블카를 대통령으로부터 아무런 제약 없이 허락받았기 때문이다. 

한병기가 박정환의 첫 부인, 장녀인 박재옥의 남편이라는 사실이 더 큰 파장을 일으켰고, 한병기 일가의 '사업 대물림' 때문에 논란이 되었으며, 설악산 케이블카를 독점하여 자녀들에게 대물림 된다. ‘나 지금 어떻게 살고 있지?’ 

“거짓말하지 말 것, 협잡질하지 말 것, 도둑질하지 말 것. 실상 이런 교훈은 윤리라는 과목으로 가르칠 것도 없이 된 꼴이지요.”
“벽촌에서 국민학교를 다녔어예. 교과서마다 박정환 장군의 훈시와 그들 집안의 단란한 사진이 등장했는기라. 그런데도 박정환의 탐욕과 어리석음은 끝이 없고마예.”
“높고 힘세고 돈 잘 버는 사람들의 엉터리 짓거리를 보여주네요.”
“사회가 단순히 불만을 품고 분노하는 것을 지나, 어떤 임계점을 향해 가다가 곧 터져버릴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지. 지난 박정환 독재정권에서 그랬다.”
“여기까지는 좁은 눈으로 본 사건의 양상이에요.”
“무슨 일이 벌어지려는 것일꼬?”
“지도자라는 자세는 법이란 것을 이용해서 하는 모든 일에서 사회정의 실현이라는 사명을 져버려서는 안 된다.” 

박정환은 일본의 메이지 유신을 모방하여 ‘10월 유신’이라고 국민들을 또 속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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