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便紙)

▲강용수 전 세종시의회 부의장
▲강용수 전 세종시의회 부의장

10년 넘게 유배생활을 하던 다산 정약용(1762~1836)에게 부인은 결혼식 날 입었던 치마를 보냈다. 

다산은 그 치마에 종이를 붙여 자식들에게 편지를 썼다. 다홍치마에 글을 썼다하여 ‘노을 하, 치마 피’를 붙여 하피첩이라 하였다. 

이 하피첩은 2015년 9월 14일 서울 옥션스페이스가 주관한 고서(古書)경매에 나와 국립민속박물관 측에 7억 5000만원에 낙찰됐다. 

또한, 화가 이중섭(1916~1956)은, 1952년 한국전쟁 당시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리게 되자, 결국 부인과 자식들을 일본 처갓집으로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는 죽기 직전까지 부인 마사코와 두 아들에게 수십 통의 편지를 썼다. 일본어로 적혀 있는, 이 편지는 2012년 3월 21일 1억 500만원에 낙찰(落札)되어, 현재 국립현대미술관에 보관 중이라고 한다. 

이들의 편지에는, 자신의 신념부터 구구절절한 사랑 이야기와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애틋하게 담겨 있을 것이다. 

그리고 최근에는 엉성한 지게꾼이, 영상제작 한 ‘어느 아빠의 이야기’가 많은 이들을 감동시키고 있다.

“아내가 어이없이 우리 곁을 떠난 지 어언 4년, 아내의 자리는 정말 크기만 하더군요. 어느 날 출장일로 아이에게 아침을 챙겨주지 못한 채, 출근길에 올랐습니다. 그날 저녁 아이와 잠깐 인사를 나눈 뒤 양복상의를 아무렇게나 던지고는 침대에 벌러덩 누웠습니다. 

그 순간 뭔가 느껴지는 것이었어요. 빨간 양념국과 손가락만한 라면발이 이불에 퍼질러져, 컵라면이 이불 위에 쓰러져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게 무슨 일인가는 뒷전으로 하고 자기 방에서 동화책을 보고 있던 아이를 붙잡아, 장딴지며 엉덩이를 마구 때렸습니다. 

왜? 아빠를 속상하게 하니? 라고 하면서, 때리는 것을 멈추지 않고 있을 때, 아들 녀석의 울음 섞인 몇 마디가 내 손을 멈추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빠가 가스레인지 불을 함부로 켜서는 안 된다는 말에, 보일러 온도를 높여서 대펴진 물을 컵라면에 부어서, 하나는 자기가 먹고 하나는 아빠 드리려고 식을까 봐, 이불속에 넣어 둔 것이라고 말끝을 흐리고 있더군요. 

가슴이 메어 오는 것이었습니다. 아들 앞에서 눈물보이기 싫어 화장실에 가서 수돗물을 틀어 놓고 한참을 울었습니다. 그 일로부터 1년이 지나고, 저 나름대로 엄마의 빈자리를 채워 줄려고 많이 노력했습니다. 

아이는 이제 6살, 내년이면 학교에 갈 나이가 되었죠. 그런데 얼마 전 아이에게 또 매를 들게 되었습니다. 근무시간에 회사로 유치원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아이가 유치원에 나오지 않았다는 거예요. 너무 다급해진 마음에 회사에 조퇴를 하고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는 아이를 찾았죠. 동네를 이 잡듯이 뒤지면서, 아이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그런데 그 녀석이 혼자 놀이터에서 놀고 있더군요. 집으로 데리고 와서 화가나 마구 때렸습니다. 하지만, 단 한차례의 변명도 하지 않고, 잘못했다고만 빌더라고요.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날 부모님을 불러놓고 재롱잔치를 한날이라 했습니다. 그 일이 있고 며칠 후, 아이는 유치원에서 글자를 배웠다며, 하루 종일 자기 방에서 꼼짝도 하지 않은 채, 글을 써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1년이 지나고 아이는 학교에 입학을 했죠. 그런데 또 한 차례 사고를 쳤습니다. 그날은 크리스마스 날, 일을 마치고 퇴근을 하려고 하는데 1통의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우리 동네 우체국 출장소였는데, 우리 아이가 주소도 쓰지 않고, 우표도 부치지 않은 채, 편지 300여 통을 넣는 바람에, 연말에 우체국 업무가 지장을 받는다고 온 전화였습니다. 

아이가 또 일을 저질렀다는 생각에, 불러서 또 매를 들었습니다. 아이는 그렇게 맞는데도 한마디 변명도 하지 않은 채, 잘못했다는 말만 하더군요.

그리고 우체국 가서 편지를 받아 온 후, 아이를 불러놓고 왜 이런 짓을 했냐고 하니까 아이는 울먹이며, 엄마한테 쓴 편지라고 하더군요. 순간 울컥하며 나의 눈시울이 빨게 졌습니다. 

아이에게 다시 물어 보았습니다. 그럼, 왜 한꺼번에 이렇게 많은 편지를 보냈어라고 묻자.

아이는 그 동안 키가 닿지 않아서 써오기만 하다가, 오늘 가보니깐, 손이 닿아서 다시 돌아와, 그동안 써 놓은 거 다 들고 갔다는 것이었어요. 

아이에게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몰라 어리벙벙하기만 했지요. 그리고 아이에게 엄마는 하늘나라에 계신단다. 다음부턴 적어서 태워버리면 엄마가 볼 수 있다고, 밖으로 편지를 들고 나간 뒤, 라이타 불을 켰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무슨 내용인가 궁금해 하나의 편지를 읽어 보게 되었습니다. 

보고 싶은 엄마에게 
엄마. 지난주에 우리 유치원에서 재롱잔치 했어. 

근데 난 엄마가 없어서 가지 않았어. 아빠한테 말하면 엄마 생각 날까봐 하지 않았어. 아빠가 날 막 찾는 소리에 그냥 혼자서 재미있게 노는척 했어. 그래서 아빠가 날 마구 때렸는데, 애기하면 아빠가 울까 봐 절대로 얘기 안 했어. 

나 매일 아빠가 엄마생각 하면서 우는 것 봤거든. 근데 나는 이제 엄마 생각 안 나, 엄마 얼굴이 기억이 안 나, 보고 싶은 사람 사진을 가슴에 품고 자면, 그 사람이 꿈에 나타난다고 아빠가 그랬어. 

그러니깐 엄마 내 꿈에 한번만 나타나. 그렇게 해줄 수 있지? 약속해야 해. 엄마 보고 싶단 말이야. 엄마~ 엄마~  혁수가

이 편지를 보고는, 도무지 고개를 떨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내의 빈자리를 제가 채울 순 없는 건가요? 시간이 이렇게 많이 흘렀는데도, 엄마 사랑을 못 받아 마음이 아프기만 합니다. 

혁수야! 아빠가 정말 미안하구나, 아빠는 그런 것도 모르고, 너 요즘에도 엄마한테 편지 쓰고 있는 것 알고 있단다. 
엄마가 하늘에서 그 편지 받으면, 즐거워하고 때론 슬퍼서 울기도 하겠지, 아빠가 널 때린다고, 엄마가 너를 놔두고 갔다고, 섭섭해 하지 마. 혁수야! ~아~ 아~ 사랑한다. 아들아!”

이 글의 주인공들은, 실존 인물이고 실화라고 한다. 
어느덧 임인년(壬寅年) 새해를 맞고 있다. 금년에는 슬픔일랑 모두 불태워 버리시고, 좋은 일만 가득하시길 기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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