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재찬

사람은 무엇인가? ‘밥을 먹는 자다’다. “인간은 생존과 존엄, 그 모두를 갖추어 먹어야 하는 식사의 존재”다. 

먹이가 아닌 밥을 먹기 때문에 인간 삶으로 나아갔고, 밥을 통해 사랑과 질투를 느끼고 협력과 경쟁을 배운다고 느낀다. 

“밥은 먹고 다니냐”는 말은 밥 먹을 자격을 갖추고 사는지를 묻는 매서운 질문이다. 이야기는 이상할 것 없이 차분히 전개되지만 자세히 살피면 곳곳에 미스터리가 있다. 

현대판 연산군보다 더한 극악의 폭군! 타락! 출세주의자! 기회주의자! 추악한 박정환! 부당한 명령에 굴종하고, 자기 또한 부조리한 권력을 휘두르면서 뒤틀린 인격은 생애 전반에 어둠으로 드리운다. 무슨 일이 있었냐는 물음도 있었지만, 이미 늦었지만…. 

변호사: 피고인은 김 부장님이 대통령 앞에서도 아첨하는 법이 없는 것을 우연히 목격하거나, 대통령과 전화를 할 때도 피고인이 연결을 시켜주는 관계로 들은 일도 있다는데, 그런 경우를 구체적으로 말할 수 있습니까?
/박선호: 그것은 급한 연락사항이 있을 때, 부장님께서 각하실로 전화대라고 하면 연결해 주고 한 일은 있습니다.
/변호사: 글쎄, 그때 전화를 듣고, 역시 김 부장님은 대통령 앞에서도 솔직하게 무슨 말을 하는구나, 하는 걸 느낀 것이 있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좀 몇 가지 말할 수 있습니까?
/박선호: 모든 사항을 서슴지 않고 사실대로 말씀하시는, 여러 가지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변호사: 다른 분 같으면 대통령 앞에서 그런 투로 말하지 않을 텐데, 아주 의사를 분명하게 솔직하게 말한다, 하는 것을 느꼈다는 말이지요?
/박선호: 예, 그래서 항상 제가 김재규 부장님을 존경을 많이 했던 것입니다.
/변호사: 또 한번, 검찰신문 때도 그렇게 몇 가지 충고와 훈계를 해주었다고 했는데, 특히 피고인에게는 운동도 테니스나 하라고, 피고인에게는 그게 좋다고 훈계했다면서요?
/박선호: 수시로 부장님께서 모든 것을 검소하게 하고, 운동 같은 것도 화려함보다는 정구 같은 것을 하라고 말씀하시고, 사람들을 대할 때 항상 겸손하라는 말씀을 수시로 하시고, 저희들에게 지도 말씀을 자주 하십니다./ 

보통군법회의 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뒤, 박선호는 상당한 심경변화를 일으켰다. 어차피 죽을 바에야 역사적 증언이나 하자는 생각이었다. 

마치 주색에 빠져 나라를 빼앗긴 군주국의 마지막 왕들을 연상케 하는 얘기가, 그의 가슴속 깊은 곳에서 흘러나왔다. 박정환이 대통령을 하면서 어떻게 여자를 유린했는지. 그러나 그는 각하의 술자리에 왔다간 연예계 여인들의 명단을 두고 고민했다. 

10·26사건이 일어난 해를 넘긴 80년 1월 23일, 서울 용산 국방부에 설치된 계엄사 고등군법회의 2회 공판의 녹음이다. 

파렴치! 남의 인생을 망친 박정환! 다들 그냥 지나쳤으리라 생각하지만,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물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바로 이 독재자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변호사: 피고인은 1심에서 변호인이 그날 당일 여자 두 사람을 인솔해 온 것을 물었을 때 대답을 않겠다고 했는데, 지금도 그런 심정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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