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의 시험에, 우리 청춘들이 이렇게 ‘좌절’을 느끼는 구조가 맞는 것일까?

                ▲송명석 박사.
                ▲송명석 박사.

수능 출제·평가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평가원)은 생명과학Ⅱ 기존 정답을 유지해 채점한 수능 성적을 지난 13일 제공했다. 전원 정답 처리한 수능 성적은 14일에 제공했다. 

평가원은 두 가지 수능 성적표 제공하는 초유의 사태 초래하여 정시 전형 일정 차질도 우려된다. 두 종류의 성적을 제공받은 대학은 수시 합격자를 가리는 작업을 미리 해 뒀다가, 소송 결과를 본 뒤 실제 합격자를 가리는 절차에 돌입한다. 사상 초유의 일이다.

2017년 경북 포항 지진이나 지난해 코로나19와 같은 재난 상황 때문이 아니라, 수능 출제오류 공방 때문에 대입 일정이 미뤄진 건 1994년 수능 시험이 도입된 이후 처음이다. 

더욱이 다가오는 17일 소송결과가 나온 뒤, 출제오류를 주장하는 수험생이나 출제오류가 없다고 방어하는 평가원 중에서 한쪽이라도 항소하면 법정 공방 기간은 더 늘어나 정시 전형 일정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당초 당국은 생명과학Ⅱ를 선택한 6515명의 수능 성적표를 1심 재판 다음날인 18일에 일괄 배포하려 했다.

하지만 그럴 경우 대학들이 단 하루 만에 수시 지원자들에 대한 평가를 마치고 수시 합격자를 확정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된다는 지적이 나오자, 법원 선고 전 두 종류의 성적을 제공하는 전례 없는 결정을 내놓게 된 것이다.

문제 풀이만 강조하는 평가원, “정답 풀이 가능해” 주장과 성숙한 사고를 드러낸 수험생과의 첨예한 대립을 하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아예 “문제 자체에 모순 담겨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평가원이 보여준 고집스런 태도를 두고 비난 여론이 높다. 

평가원은 지난달 29일 ‘이 문항의 조건이 완전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교육과정의 성취기준을 준거로 학업 성취 수준을 변별하기 위한 평가 문항으로서의 타당성은 유지된다고 판단 한다’며 문제에 이상이 없다고 결론을 냈다. 

평가원이 한 가지 문제 풀이만을 강제하고, 그 안에서 답만 찾기를 강요한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것이다.
결국 교육 주체인 평가원은 “문제를 풀어서 정답을 고를 수 있는 데 뭐가 문제냐”는 얄팍한 태도를 고수하고 있는 셈이다. 

이에 비해 일부 수험생들은 종합적 사고를 통해 문제가 주어진 구조 자체가 잘못 설계됐음을 지적하는 성숙한 관점을 드러내고 있다. 

국내외 전문가들이 문제 자체의 오류를 지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평가원은 오류가 없다는 입장을 되풀이하면서, 단 한 번의 사과도 하지 않았다. 

과학탐구Ⅱ 영역에서는 단 한 문제만으로도 합격이 좌우될 수 있다는 점에서, 수험생들은 어느 대학을 지원할지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출제 오류를 인정하지 않는 평가원의 뻔뻔한 태도에 수험생들만 골탕을 매기는 상황이다.

대입수학능력시험, 지난 1994년부터 이 시험이 시행된 지 어느덧 20년째다. 

대학 입학에 이 시험이 여전히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만큼, 매년 11월 수능 날만 되면 듣기평가 시간에는 비행기 이착륙도 금지되고, 관공서나 일부 기업의 경우 출근 시간도 수험과 겹치지 않게 연결된다. 

그만큼 한국 사회가 이 시험에 굉장한 무게감을 두는 것이다. 
올해 수능을 두고 논란이 많다. 쉬워서 변별력을 키우지 못해 ‘물 수능’이란 비판도 받았고, 어떤 시험장에서는 듣기평가 도중 감독관의 핸드폰이 울려 문제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복수정답’이 될 것 같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24일, 문제 오류 논란이 있었던 생명과학Ⅱ 8번 문항과 영어 25번 문항에 대해 복수정답을 인정했다. 

생명과학Ⅱ 8번 문항은 정답 4번외에 2번도 정답, 영어는 4번외에 5번도 정답으로 인정했다. 이에 따라 수 천 명의 수험생들이 등급이 오르거나 내려가게 돼, 이에 대한 후속 파문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에는 세계지리 8번 문제가 긴 소송 끝에 복수정답으로 인정되기도 했다. 문제의 오류가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상황인데, 올해는 사상 처음으로 두 문항이나 오류가 발견된 것이다. 작년처럼 버티다 소송을 통해 해결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 그나마 위안인 걸까?

하지만 이미 수 천 명이 피해를 보는 상황은 벗어나기 어려울 것 같다. 수능의 변별력이 적어 문제 하나 맞추고 틀리는 것에 수험생들의 희비가 엇갈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국 김성훈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이 책임을 지고 사퇴했지만, 이 소식이 수험생들에게 큰 의미로 다가오진 않을 것 같다. 이게 평가원장 사퇴한다고 해결되는 문제인가?

SNS에서는 교육당국의 무능을 질책하고 있다. 

트위터에서는 “정말 싫다. 이제 와서 복수 정답을 인정한다면…. 이미 대학교 수시가 끝났는데”, “수능 복수정답 좀 그만 나와라 지겹다 이제” 등과 같은 반응들이 많다. “10년 넘는 세월을 수능 하나만 보고 달려온 아이들이 수십·수 백 만 명인데, 걔들 인생을 가를 수 있는 시험이라면 신중에 신중을 기해도 모자랄 판에 복수정답사태 계속 나는 것 보니 우리나라도 답이 없긴 없다”는 지적도 있다.

“평가원 출제자 나와, 수능을 몇 년째 보는 건데 이런 오류가 나옴, 문제 출제할 때 검토안하고 출제하나 복수정답 인정되면 진짜 수시 최저 못 맞춘 애들 인생 니들이 책임질래?”라는 토로도 있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이것이 아니다. 1년에 한 번의 시험으로 대입이 결정되는 수능의 특성상 언제든 이런 문제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6번을 검토했는데도 오류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올해 수능. 

평가원장의 자진사퇴만으로 책임을 벗기는 어렵다. 문제의 70%를 EBS교재와 연계하는 것도 그렇고 난이도 조절 실패도 그렇고, 신뢰를 잃은 수능을 대체할 평가모델이 필요한 시점 같다.
단순히 ‘개선’에서 끝낼 일이 아니다. 대학 입시 제도를 근본부터 혁신하지 않는다면, 이와 같은 일은 또 반복되고 말 것이다. 

수능 출제 오류를 통해 피해를 입은 학생들에 대한 구제는 물론이거니와, 상대적으로 손해를 보게 된 학생들에 대해서도 교육당국이 책임 있는 태도로 응대해야 할 것이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한국사회에서 ‘대학’이라는 의미가 지나치게 크다는 점이다. 

어떤 대학에 진학하느냐에 따라 인생의 운명이 정해지는, 현재의 대학서열화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수능에 대한 지나친 과열은 계속될 것이다. 이번에도 몇몇 수험생들이 수능 성적을 비관해 자살하는 일이 있었다.

이번 복수정답 논란에 대해 시험문제를 애들이 공부했는가? 를 평가하는 게 아니라, 얼마나 문제를 잘 푸는가?를 평가하는 용도로 복잡한 함정을 넣으니 생긴 일로 보인다. 

교육과 평가에 대한 마인드가 바뀌지 않는 한 이런 일은 계속 반복될 것이다.

저작권자 © 세종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