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사다의 항쟁’

▲강용수 전 세종시의회 부의장.
▲강용수 전 세종시의회 부의장.

성서의 나라 이스라엘에서 신학을 전공하신, 성결교단의 어느 목회자로부터, 고대 역사가(歷史家), 요세푸스(37~100)가 쓴 ‘유대 전쟁사’에 나오는 역사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유대인의 격언 중에 ‘사람은 죽기 위해 태어난다. 그러나 영원히 살기 위해 죽는다.’는 이 역사의 배경은, 2005년도 유네스코에 등재돼, 세계적인 관광지로도 유명한 ‘마사다 항쟁’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기원전 63년부터 로마의 지배를 받아오던 유대인들은 서기 66~70년 사이 독립전쟁을 벌인다. 

그러나 서기70년 예루살렘은 마침내 로마군인들에게 점령당하고 만다. 성전은 모두 파괴되고 유대인 110만 명이 죽임을 당하게 된다. 

이때 유대인들 중 일부 열심당원(Zealots)들은, 가족과 함께 사해(죽음의 바다) 인근에 있는 해발 450m의 마사다(Masada)요새로 퇴각해 최후의 항전을 계속하고 있었다. 

로마의 최정예부대인 제10군단은 마사다 함락을 위해 2년 동안이나 공격을 시도하였지만 좀처럼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사방이 절벽인 천혜의 요새인데다가 비록 소수이지만 유대인들의 저항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로마의 살바 장군은 최후의 수단으로 저항세력의 동족인 유대인 노예들을 앞장세워 요새 서쪽에 흙으로 경사로(ramp)를 쌓아 올리기 시작하였다. 

마침내 공사가 끝나고, 다음 날이면 로마군의 총공세가 예고된 상황에서 유대인 지도자 엘르아살 벤 야일은 그날 밤 960명의 동지들을 모아놓고 다음과 같이 연설을 한다.

“형제들이여! 이제 날이 밝으면 우리의 저항은 끝 날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분명한 행동으로 우리의 신앙을 입증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우리에게 아직 자유가 있을 때 우리 스스로 명예로운 죽음을 맞이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아내들이 저들에게 욕보임을 당하지 않은 채로 죽음을 맞게 합시다. 우리 자녀들이 노예가 무엇인지 모른 채로 죽음에 이르도록 합시다.”

이 비장한 연설에 모두의 마음이 하나가 되었던 것입니다. 

자살을 금지하는 율법에 따라 남자들은 집에 돌아가 처자식과 이별의 포옹과 키스를 나눈 뒤 가족들을 자신의 손으로 죽였습니다. 
남자들만 남게 되었을 때 제비로 뽑힌 10명이 나머지 남자들을 모두 죽였습니다. 

그리고 제비로 뽑힌 1명이 나머지 9명을 죽인 후, 곡식 창고에 불을 지르고 자신은 칼에 엎드려 자결하였다는 것이다. 

다음 날 아침 로마군이 성문을 부수고, 쳐들어 왔을 때 그들은 허망한 승리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비록 마사다 요새는 정복했지만 유대인들은 이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곳을 이스라엘 국방장관이었던 모세 다이안(6일 전쟁의 영웅)은 이  스토리를 이스라엘 군인 정신의 상징으로 여기고 신병훈련의 마지막 코스를 언제나 이곳 마사다에서 끝마치도록 지시하였다고 한다. 

그때 이후로 마사다에는 젊은 이스라엘 군인들과 이곳을 방문하는 이스라엘 청소년들이 외치는 “마사다! 로 오드 파암!”이라고 하는 함성이 사방에 메아리치고 있다는 것이다.

“Masada! Never Again!” ‘마사다’와 같은 일은 다시는 없다. 

즉,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목숨을 담보하겠다는 각오가 서려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죽은 후, 다시 부활하여 신에 의해 영생이 주어진 것이라고 믿으며, 쓰라린 역사를 애써 감추거나 남의 탓으로 돌리지 않고 오로지 같은 비극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애쓰는 저들의 모습이 늘 존경스럽기만 하다는 것이다. 

또한, 마사다의 정신으로 형성된 그들의 인성은 세계적인 리더(Leader)들로 길러내기 때문에, 세계에서 가장 많은 노벨상 수상자들을 배출했다. 그리고 국방, 과학, 금융, 예술, 첨단산업 등에서 독보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 미국이 전 세계를 이끌어 간다면, 작은 나라의 이스라엘인들이 큰 나라의 미국을 조종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말일 것이다. 

얼마 전 문 대통령은 유엔 연설에서 종전 선언을 하였다. 

북한의 김여정은 시기상조라고 하였고, 며칠 후에는 좋은 일로 기대가 된다고 하였다. 

3일도 안돼서 신형 미사일을 쏘아대고 있는 것이, 어찌 보면 정상적인 남북관계는 아닌 듯하다. 2000년도에 남북정상회담(6.15)을 시작으로 많은 변화를 가져오는 듯하였으나, 수 차례의 핵실험과 미사일로 갖은 위협을 당하고, 번번이 얻어터질 때마다, 우리 국민들은 울화통이 터지곤 했었다. 

그래서일까! 혹자는 이르기를, 종전 선언은 항복 선언과 같고, 평화조약은 아군 무장해제와 북한의 선제공격을 인정해 주는 것 같아서 왠지 씁쓸하기만 하다는 것이다. 

더구나, 언어의 최면에 걸린 이 땅의 봉황(鳳凰)들은 말해야 할때 말을 못하는 우둔한 감각뿐이라는 걱정의 소리가 높기만 하다. 2018년 때에도, 종전을 하자고 하면서 평양으로 날아간 문 대통령은 북한의 수많은 인민들에게 열광적인 환호를 받고 돌아왔다. 

또한, 판문점 휴전선을 북한의 김정은과 문재인 대통령이 서로 넘나들고 웃으면서 악수를 하고, 어깨를 나란히 걸어가는 광경을 본 우리는 종전이란 말에 현실성이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종전은 대북 적화통일의 빌미만 주고 있는 듯 해 안타깝기 짝이 없다.
종전이 돼 미군을 철수시키면, 남한에 핵을 포함한 미 군사전략 무기가 모두 철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안보는 생명과 생명의 대결이다. 이러한 군인들이 한미 연합훈련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시뮬레이션으로 적당히 하고 끝이 났다. 

군인들의 느긋함은 조국의 안보가 약해질 수밖에 없다고, 전문가들이 경고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특히, 그들은 평화조약을 주장한다. 

아프가니스탄의 평화조약이 탈레반과 맺어진지 3년이 돼지 않아 오늘의 사태가 발발했다. 대통령은 피를 흘리지 않기 위해 망명한다며, 4대 트럭에도 실을 수 없을 정도의 현금을 가지고 달아나기도 했다. 

또한, 1975년 베트남의 마지막 사이공의 미 대사관 헬리콥터가 하늘로 오르던 날을 우리는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베트남 역시 평화조약을 맺고 있었지만, 모두가 숙청(肅淸)되고 말았다. 

그렇다, 이스라엘 국민들이 ‘마사다’를 결코 잊을 수 없다고 몸부림을 치고 있듯이, 지금의 이 땅에는 국가관과 안보관이 너무나 절실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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