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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 전의면 유천리 어천마을의 ‘전의마을도서관’한사람 위한 산골도서관, 여러사람 살리는 사람책
충지협 이진영 기자  |  ygnews@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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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10.09  09:2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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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이 “가까운 곳 산속에 마을도서관이 있으니 가보자”고 권했다. 

좀 헤매는 듯하더니만 공단 분위기인 유천리로 진입한다. 마당에 들어서 니 ‘고려전통기술㈜ 고려도검’ 간판이 보인다. 1층에는 전통도검이 전시되어 있는데, 도서관은 2층이란다. 

   
 

2층은 꽤 넓었고 빈 공간에 미술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니 비로소 서가요, 책이다. 뭔지 조금은 덜 갖추어진 듯한 공간에, 있을 것은 다 있다. 커피도 내릴 수 있어 여유가 생겨난다. 

도서관에 사람이 없으니 주인 노릇해도 괜찮겠다 싶을 즈음, 노인 한 분이 들어오신다. 관장님이다. 도서관 초입에 관장실이 따로 있었던 것이다. 

장인순 박사, 별칭 우리나라 원자력의 아버지다. ‘여든의 서재’를 쓰신 8순 원로 저술가이기도 하다. 셋의 대화는, 격의 없이 시작되었다. 

언제 문을 열었는지요? 

올해 어린이날입니다. 여기 출입구에 ‘2021 왜?’, ‘2121 Why?’라고 새긴 현판을 붙여 놓았습니다.

교육은 백년지대계인데, 올해부터 100년 후의 숫자입니다. 인류역사, 문명사는 ‘왜?’라는 물음에서부터 시작됐습니다. 근원적 질문 ‘왜?’가 바탕인 교육을 꿈꾸며 써놓았어요.  

나는 작년 팔순을 맞아 ‘여든의 서재’라는 책을 냈어요. ‘책은 세상이며 삶이며 우주이다’, ‘이 하루는 왜 이렇게 소중한가’, ‘나는 내가 모른다는 사실을 안다’... 그간 내가 읽은 책에서 발췌한 문장을 적고 그 느낌과 생각을 적어놓은 나만의 독서노트입니다. 그 책 인세 5천만원으로 책을 구입하고 인테리어 공사를 했습니다. 

비용 절감을 위해 바닥칠은 저와 주변의 도움으로 했으며, 그래도 모자라는 돈과 운영비는 이심전심 후원해주시는 분들 도움을 받기도 했고요..... 

장소를 이처럼 외진 산골로 정하신 이유가 궁금하네요.

우리 집은 대전입니다. 여기는 도검을 만드는 회사로,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칼은 대부분 여기서 제작하여 나갑니다. 작년 봄부터 이 회사에 나와서 기술 자문을 하고 있는데요, 

인연은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네요. 라연희 고려전통기술 사장은 대전 자택에서 이웃으로 인연을 맺었고, 수양딸이 된 사이입니다. 라 대표가 여기 2층 150㎡ 정도의 공간을 내었는데, 물론 이유가 있죠.  

매일 출근하여 자문하고 남은 시간에, 나는 공장 한쪽에서 글을 써왔습니다. 여유 있을 때 나 자신을 돌아보니, 감사 아닌 게 없더라구요. 대학 6년 중 5년은 가정교사를 했는데, 당시 내 공부도 바쁜 터에 집안 아이들 몇 명 공부까지 책임지는 일은 힘들고 괴로웠죠. 

하지만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니, 그분들 덕에 제가 졸업을 하고, 여러 분 덕에 유학도 떠난 거더라구요. 그 많은 은혜를 어떻게 갚을까 생각해 보았죠. 대전집에서 1시간에 걸친 출·퇴근길에서 만나는 전의 아이들이 눈에 들어왔어요. ‘그래, 우리 아이들을 위해 도서관을 만들어보자.’ 그랬습니다. 

   
 

읍내 아이들이 여기까지 찾아오기에, 멀지 않은가요?

이구동성 하는 질문이죠! 이 산골에까지 와서 책을 읽고 과학 공부를 할 학생은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한 가지 생각을 했어요. 전의역 기준, 택시로는 6~7천원 요금거리니까 왕복요금을 내주면 되겠구나. 그래서 요즘 택시비 입소문을 내는 중입니다(웃음). 

요즘 내 마음은 식당주인과 똑같아요. 아침에 문 열고 준비하면서 손님 오기만을 학수고대한다는 점에서요. 

다른 것도 있죠. 식당에서는 식후 바로 나가기를 바라지만, 여기선 조금이라도 더 머물렀다 가면 좋겠어요. 

‘공부는 머리가 아니라 엉덩이로 하는 거야’라고 써붙여 놓았답니다.

다 좋은데, 박사님처럼 고급인력이 집중하니까 속칭 가성비도 그렇고 혹간 부담스러워할 분도 있을 거 같은데요?
 
공공도서관이니까 많은 사람이 와주면야 좋겠지만, 난 하루 딱 한 사람이라도 좋습니다. 도서관은 도시에 많지만 시골에는 없거나 적은데, 그래서 여기 아이들하고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더 들더군요. 

“오늘의 나를 만든 것은 마을의 도서관이었다.” “하버드 졸업장보다 소중한 것은 독서하는 습관이다.” 빌게이츠의 명언입니다. 

나는, 이 동네에서 빌게이츠나 일론 머스크가 나올 수도 있다고 봐요. 누군지 모를 한 아이, 한 시민이 여기 와서 좋은 책을 만나고 대화나 강의 속에서 뭔가를 하나라도 제대로 느낀다면, 세상은 그만큼 변하지 않겠어요? 여기서는 자본주의 상징인 수량(數量) 대신 질(質)과 깊이 같은 걸 느끼면 좋겠습니다. 

아이들이나 학부모가 오래, 편하게 머무르게끔 하기 위해서 어떻게 신경 쓰시는지요?

여기 올라오면 내 집처럼은 아니지만, 우선 마음이 편해야 할 거 같아요. 그래서 아이들이 뒹굴면서도 책 읽을 수 있는 소파는 필수로 챙겼습니다. 음료는 물론 책상 위 과자도 유기농인 한살림 거로 사다놓습니다. 

보세요, 여기 책상 테이블과 의자들은 모양도 색깔도 제각각이잖아요? 삼각형, 사각형, 원(태극), 별, 달 등은 실은 기하학과 천문학을 의미하는 모양새들이죠. 학생들에게 다양성을 직접 보고 만지고 느끼게 해주기 위해서입니다. 

우리 도서관 운영 원칙은 자율(自律)입니다. ‘정직과 신뢰는 서로 만들어가는 것’이란 의미에서 책을 빌려 갈 때 대출기록부에다가 쓰지 않고 그냥 가져가도 된다고 OK를 했어요. 

여기서 읽거나 집으로 빌려간 책에다가 메모하기, 밑줄치기 등도 허용했어요. 다만 당부는 하죠, ‘이 책을 다른 사람이 봤을 때 도움이 되는 기록이나 흔적을 남기면 더 좋겠다’고요. 

엄마와 함께 찾아오는 경우도 있는데, 커피 한 잔 놓고 사는 이야기, 자녀교육 이야기를 나누기도 해요. 하루는 어떤 엄마에게 “명품 가방이 뭔지 아느냐? 안에 책과 필기도구가 들어 있으면 그게 진짜 명품 가방이다.”는 얘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그분이 공감한표 크게 표하더군요. 

우리 어머니는 내가 캐나다로 유학 떠날 때 내 가방에다가 태극기를 넣어주었답니다. 내가 태극기와 한글사랑 액자를 걸어놓은 데에는 이유가 있어요. 이스라엘은 로마에 멸망한 이후 2천년이 지났는데도 독립을 쟁취했습니다. 

그들은 뿔뿔 흩어져 있으면서도 자기 나라 말 히브리어를 잊지 않은 채 전수에 전수를 거듭했고, 공동체로서 하고 싶은 말들을 ‘통곡의 벽’에 꽂아서 교신하는 과정을 통하여 결국 나라를 되찾았잖습니까?

여기서 독서 외에 어떤 활동이 이루어지는지요?

세 개짜리 책상 본 적이 있는지요? 사람들이 가장 안정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네 다리 책상이죠. 그런데 세 다리 책상은, 비탈이든 어디든 안정적으로 세울 수 있어요. 생활속 재미있는 과학 수학 원리의 한 예인데, 여건이 되는 대로 수학과 물리도 가르칠 예정입니다. 

아이가 책을 읽다가 질문을 하면, 그날은 대목 날 이랍니다. 과학에 관한 질문은 1:1 교육에서뿐 아니라, 주말과학교실로 이어지기도 해요. 특강은 나도 하지만, 내가 초대 회장을 지낸 대덕연구개발특구의 과학자 모임인 ‘따뜻한과학마을벽돌한장’에서도 도움을 주기로 한 상황입니다. 

원자력연구소에서 함께한 원로들이 모여서 ‘원사모’라는 독서모임을 하고 있어요. 지난 달 28일에는 과학서적에서 인문학 쪽 장영희 교수 에세이 “내 생애 단 한번”으로 진행해 보았습니다. 그때 내가 발표한 내용 2쪽과 “영국기자가 본 대한민국 32”가 이거니, 한번 읽어보세요. 

주말엔 음악회 같은 문화행사도 구상중입니다. 마침 여기 누가 책상 위에 윤동주 동시집을 뽑아다 놨군요. 나는 과학자지만 시를 즐겨 읽어요. 내가 좋아하는 로버트 프로스트 등 시집 2.000여권도 있고요. 내가 펴낸 책 중 하나가 ‘하나님이 빛으로 우주를 창조하다’입니다. 

이 날개표지에는 좀 길게 썼는데요 ‘시와 수학과 책을 사랑하는 대한민국 원자력의 대부’ 장인순 박사가 말하는 “광활한 우주와 신의 섭리”라고 긴 설명글을 써놓았습니다. 여기는 굳이 구분하자면 ‘어린이과학도서관’에 가깝지만,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시심, 인문학 등을 아울러서 통섭(統攝)하면 좋은 공간입니다. 

   
 

책을 십진분류법보다 연령층으로 구분해 놓았네요?

현재 여기 구비된 책은 관장실에 있는 거 포함, 만여 권입니다. 초등 필독서 2000권, 중고생 1000권 등 3000권이 학생용인데, 국립도서관에서 추천받은 소설, 수필, 위인전, 만화 등 다양합니다. 

기증받는 책도 장르를 가리지 않습니다. 도서구분은 평소 익숙한 10진 분류법이 좋을 수도 있겠지만, 여기서는 대상별로만 정리해 놓았어요. 쭉 보다가 뜻밖의 책을 만나는 기쁨도 있을 테니까요. 

제가 펴낸 책은 네 권입니다. 그 중 오늘 사인해서 드리는 두 책의 영문판은 ‘상상력은 우주를 품고도 남는다’입니다. 어릴 때 한없이 솟아나는 상상력은, 내가 힘주어 강조하는 화두입니다. 

“상상력....” 캘리와 배경그림은 저기 비빔밥 화랑에도 걸어두었습니다. 저 벽은 내 소장품과 기증받은 미술품 50여점으로 장식했는데, 이 역시 구상화·추상화 등을 구분하지 않고 섞어놓았기 때문에 ‘비빔밥 화랑’이라 이름 붙였습니다(웃음). 여기는 전통검 제작사이므로 ‘검박물관’도 함께 구상중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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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은 검을 이긴다’ 했는데 여기 소정면과 경계인 전의면 유천리 어천마을 도서관은 펜과 검이 공존·상생하는 공간이다. 장 박사는 펜을 들어 저자 사인을 해준 다음, 사진 두 장을 들고 나온다. 

하나는 여기 뒷산에서 찍은 둥지 속의 새 새끼들이다. 그 입 모양이 제비새끼를 똑닮은 생명의 신비다. 

또 하나는 기도하는 태아사진이다. 장 박사는 지금까지 500여 쌍 주례를 섰는데, 그 중  술과 도박에 빠진 남자가 하나 있었다. 

그 부인이 할 수 있는 것은 매일 울면서 기도하는 것뿐이었다. 임신 중 초음파 사진을 찍었는데, 그 어린 아이가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장면이 나왔다. 현재 그 아이는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고 들려준다. 

장박사는 자신을 ‘딸기아빠’라고 소개를 한다. 하나는 딸, 하나는 기집애, 그래서 딸기 아빠란다. 인생이나 학문의 경지에 도달하면 모든 게 여유로워지는 모양이다. 이웃집 아저씨처럼 편안한 말씨, 여유있는 유머, 상대방이 불편해하지 않도록 신경 써주는 깨알 배려, 삶과 학문의 깊이가 절로 배어나는 대학자로서의 그윽함.... 

서울 지인들이 내려온다 할 때는 자가용보다, 전의역에서 내리는 무궁화호를 권한다고 한다. 마침 점심때 도착하는 이들의 픽업을 위해 자리를 뜰 시간이 되었다. 

나를 가이드해준 지인의 수업 시간도 1시부터란다. “다음에는 내 차 끌고서 찾아와야지. 시간이 없으면 커피 한 잔 내리며 책이라도 빌려가야지.” 

그러고 보니 전의는 문화명소가 지천이다. 문무(文武)에서 文은 전의향교를 위시하여 읍내의 작도(작은도서관), 북스테이도 하는 비암사 근처 숲속 ‘단비책방’... 武는 궁도장만 해도 서너 군데가 있다. 

세상에, 다른 곳은 한 시군에 궁도장 한두 곳뿐인데, 전의는 면 단위에서 활터가 서너 군데라니? ‘문화마을’이란 이름이 명실상부 딱 들어맞는 곳, 대한민국 세종특별자치시 전의(全義)다. 
- 이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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