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영배(戒盈杯)’

▲강용수 전 세종시의회 부의장.
▲강용수 전 세종시의회 부의장.

도자기로 만든 계영배라는 술잔이 있다. 

술을 많이 마시는 것을 경계하기 위해 특별히 만든 잔으로 절주배(節酒盃)라고도 한다. 

이 잔을 만든 우명옥의 본명은 우삼돌 이었다. 
그는 강원도 홍천사람으로 1771년 정조 5년에 태어났다. 단순하게 질그릇만을 구워 팔던 삼돌은 도자기로 유명한 분원에서 좋은 작품을 만들어 보는 것이 소원이었다. 

마침내 그는 큰 뜻을 품고 고향을 떠나 궁중에 그릇을 만들어 진상하던 경기도 광주 분원으로 들어가서 조선 땅 최고 명인이던
‘지외장’의 제자가 되었다. 

젊은 20대 초반의 청년이었던 우삼돌은 주야로 스승의 지도아래 피땀 어린 노력 끝에 그의 도예기술은 뛰어난 경지에 도달하였다. 그는 스승의 수준을 넘어 순백색을 띠는 ‘설백자기(雪白磁器)’를 만들어 궁중(宮中)에 진상한다.  

그가 만든 백자 반상기를 만져보던 순조대왕도 탄복하며 상금을 하사하고 치하를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스승은 기쁨을 감추지 못해 촌스러운 삼돌이라는 이름대신 ‘명옥’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우명옥은 뛰어난 도공으로서 유명해지기 시작하였고, 명문세도가(名門勢道家)들은 그의 작품을 소장하는 것이 큰 자랑거리가 되었기 때문에 돈도 엄청나게 벌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자 그의 가슴속에는 교만함과 부도덕함이 싹트기 시작하였다. 
그의 뛰어난 재능과 스승의 지나친 편애, 그리고 드물게도 도공으로 소문난 유명세는 주변에 시기와 질투를 낳고 있었다. 동료들의 꼬드김으로 기생집을 드나들기 시작하였다. 

어느 날, 동료들이 뱃놀이를 하자고 유혹을 했던 것이다. 
그들은 아름다운 기녀 한명에게 명옥의 마음을 사로잡도록 단단히 부탁을 해놓았다. 우명옥은 난생처음 겪어보는 어여쁜 여자와의 향락에 빠져 시간가는 줄을 모르고 있었다. 

다음 날도 명옥은 날이 밝기가 무섭게 돈주머니를 차고 그 기녀 집으로 달려가 술을 마셨다. 타락해 가는 우명옥을 바라보며 동료들은 기뻐했다. 그러던 어느 날 뱃놀이를 나갔던 배가 심야에 돌아오다가 폭풍우를 만나 동료들은 모두 빠져 죽고 명옥이 혼자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그 일을 겪은 후 명옥은 지난날의 교만과 방탕함을 뼈저리게 반성하고 스승인 지외장을 다시 찾아가 용서를 구하기로 작정한다. 

초라한 몰골을 가지고 다시 찾은 광주분원에 인적은 끊겼고, 가마에 불이 꺼진지 오래됐건만, 먼 산을 바라보며 앉아있는 그의 스승은 제자가 돌아오길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스승 앞에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고 또 빌었다. 

스승 ‘지외장’은 네가 돌아올 줄 알고 있었다. 너를 내 아들이라고 여기고 있은 지 오래되었는데, 부자간에 무슨 용서가 있겠느냐?

이젠 그릇을 굽지 말고 네 모습을 만들어 구워 보라는 말씀에, 그는 다음 날부터 새벽 일찍 일어나 하나님께 기도를 드린 뒤, 오랫동안 망설이던 작품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명옥이 ‘설백자기’를 만들어 조선 땅에 이름을 날릴 즈음, 전라도 화순에서 하백원(1781~1844)이라는 젊은 선비가 찾아와 그에게 비밀리에 제작방법을 전해주었던 그릇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계영배였다. 

드디어 우명옥은 조그마한 술잔 하나를 만들어 스승인 ‘지외장’에게 바쳤다.“

이게 무슨 잔인가?” “계영배라는 술잔입니다.” “그게 무슨 뜻인가?” “지나침을 경계하는 뜻이 담긴 잔(盞) 입니다.”
“다른 술잔하고 어떻게 다른가?” “잔의 7부만 술을 따르면 마실 수가 있는데, 7부를 넘치게 술을 채우면 모두 밑바닥으로 흘러내려 사라지고 맙니다.”

그 후 우명옥이 스승에게 바쳤던 계영배는 당대 최고의 거상인 임상옥(1779~1855)에게 전해졌는데, 그는 이 잔을 곁에 두고 인간의 과욕을 경계하면서 조선 역사상 전무후무(前無後無)한 거상으로 거듭 났다고 한다. 

요즘, 지나친 욕심으로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남까지 피해를 주는 범법행위가 판을 치고 있다는 우려의 소리가 높다. 

이 나라 봉황이라는 자(者)들은 말끝마다 개혁을 외쳐대는데, 누구를 위한 개혁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 자기들만을 위한 개혁이고, 적패청산임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이름을 파는 모습은 정말로 뻔뻔하기 짝이 없다는 것이다. 

즉, 내편의 허물은 덮어주면서, 상대방에게는 흰머리뿐만 아니라 검은머리까지 다 뽑아버리겠다는 돌심보는 아닌지 묻지 않을 수 없다는 말일 것이다. 

정녕, 이 나라에서 비리천국(非理天國)을 만든 자(者)들이 누구였단 말인가! 그 장본인은 불쌍하고 힘없는 참새들이 아니라, 늘 봉황(鳳皇)이라는 자(者)들이 아니었던가! 

이 시대의 참새들에게 코로나19 보다 더 무서운 것을 꼽으라고 한다면, 무능, 위선, 불공정, 물가인상, 부동산정책, 세금폭탄, 부정, 비리, 부패, 내로남불 등을 들 수 있다고 한다.

얼마 전의 일이다. 어느 장관후보자 부인은 명품 식기들을 밀수방식으로 영국에서 수 천 만원 어치를 사들여 와 국내에서 판매를 하였고, 어느 장관후보자 부인은 물건을 도둑질 하다가 입건되어 벌금을 물기도 했다.

어느 장관후보자는 국가예산으로 가족들과 외유성 해외 출장을 다녔다가 여론에 뭇매를 맞기도 했다.  

아! 이 나라 봉황들은 모두가 그런 자(者)들만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런 자(者)들만 임명돼 청문회(聽聞會)에 나오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궁색(窮色)한 변명과 해명에, 실소(失笑)를 금할 길 없다. 그래서 일까! 

어느 유명한 목회자께서 “네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지 말고 남에게 유익한 자 되어 살라.”고 일갈(一喝)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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