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재찬

법정에서 김재규가 여인들의 리스트에 대해서 더 이상 언급하지 말 것을 말했다. 

군 법무관들도 사건과 관계없는 증언을 하지 말라고 했기 때문에, 세간에는 이러한 박정환의 엽색 행각이, 여사의 사망 이후에 외로움을 견디지 못한 행색이라고 하여 동정하기도 했다. 

박정환의 여성 편력은 여사 생전에도 마찬가지 였으며, 여사 사후에 더 깊어진 것 정도로 인정되곤 한다. 대통령 박정환에게 여자를 조달하는 일은 본래 경호실이 시작했다. 5·16쿠데타를 거사할 때부터 충직한 경호대장이던 박종규가 모든 것을 관장했다. 

박종규는 각하의 심기 관리에서부터 술자리까지 챙겼다. 군대에서 부관이나 전령병이 지휘관을 잘못 모시면 전체 분위기가 썰렁해진다는 말은 금언에 속한다. 그런 군사문화에 젖은 경호실장 박종규는 각하의 심기 관리를 최우선 업무로 삼았다. 

박정환은 74년 ‘문세광 저격사건’으로 여사가 죽자, 마치 굴레에서 벗어난 듯 밤행사가 더욱 심해졌다. 이를 우려한 주변에선 박정환에게 새장가를 들어주기 위해 노력했다. 

박정환은 암살때 61세의 나이에 비해 절륜의 정력을 과시했다. 70년대 후반, 법정 증언. 박정환은 평균 일주일에 2회 정도의 밤행사를 가졌다. 밤행사는 대행사와 소행사로 나뉘는데, 대행사에서 박정환이 맘에 드는 여성을 ‘뽑아’ 따로 즐기는 일을 소행사라고 불렸다. 

‘대행사’는 월 2회, 소행사는 월 8회 정도 치러졌다. 박선호는 말이 의전과장이지 궁정동 안가를 관리하고 소행사가 있을 때마다, 대통령에게 쓸만한 여자를 찾아내 바치는 게 주 임무였다. 

역사 속에 흐르는 어떤 배신의 역설을 느끼게 한다. 죄를 범할 수도 있고 타락할 수도 있는데 바로 이러한 운명을 선택한 자가 박정환이다. 

충격적인 것은, 그 자리 ‘술시중 여인’으로 일류 탤런트와 가수를 비롯해서, 연예인을 지망하는 나이 어린 여대생까지 불러들였다. 사생활이 문란했다. 박정환이 국가를 위해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섰다면, 그는 당연히 그런 권력의지를 갖게 된 가슴 절절한 사연과 감성적 심연의 동기에 대해 묻고, 또 알아야 했다. 

미사여구를 동원한 그의 삶의 궤적과 견주어 엄밀히 판단해야 했다. 
박정환시대 하에서는 설마 하던 일들이 실제 벌어졌다. 엽기성 괴물의 출현에, 철권통치 하에서 워낙 컸던 일도 놀람 속에 은폐로 묻혀버렸다.

 “박정환은 서울지구 국군통합병원에서 정기적으로 건강검진을 받았고, 여러 검사 수발을 현역 여자 간호장교가 맡았다고 해.” 
 “그 간호장교를 농락하였고, 결국 간호장교가 임신을 하게 되어 청와대에 알려지게 됐고마!”

국군 간호장교 추문사건은, 건강검진을 도운 여성 장교를 맘에 들어 한 박정환이 여성 장교를 임신시키고, 이 여성이 잠적하자 찾기 위해 고생했다는 소문이다. 보기 역겨운 사실이다. 박정환에 대한 숨겨진 미화가 도를 지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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