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재찬

자본주의 경제성장 중심 사회에서, 자유주의의 결핍 속에서 개인의 자유와 권리는 호사스러운 사치로 받아들여졌다. 

‘한국적 민주주의’가 먹히던 유신시대! 

반공법, 국가보안법 등 각종 반인권적 악법과 긴급조치란 초법적 조치를 통해 권력이 임의의 기준으로 반대파를 탄압했다. 국민의 인권을 보호해야 할 사법부마저 정권의 꼭두각시 노릇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는 철저히 유린됐고, 근로기준법은 있으나 마나 해 노동자들은 최저임금도 보장받지 못하는 환경에서 살인적인 중노동에 시달렸다. 

박정환 정부는 정권 후반기로 갈수록, 한국형 파시즘과 민주주의 훼손, 인권탄압, 언론 탄압, 매카시즘이 극에 달했다. 

대통령을 비판하는 사람은 물론이거니와 정치와 관련이 없어 보이는 사람도 조금만 의심되면 빨갱이로 몰아가기 일쑤였으며, 온갖 악랄한 고문 방식을 동원해 탄압하고, 국민을 간첩으로 둔갑시켜 사회적인 매장을 하는 일까지 일어났다. 

고문과 납치, 살해가 횡행했다. 심지어 피해자의 가족도 불고지죄로 줄줄이 잡혀가 곤혹을 치루었고, 연좌제가 적용돼 국가의 적으로 몰려 차별을 당했다. 

국민들 간에 서로를 믿지 못하고, 자신의 견해를 쉽사리 못 꺼내는 이중성이 생기기도 했다. 후로도 한국인들은 그 후유증을 고치지 못하고 있다. 

독재정권의 위기 때마다 인민혁명당사건, 민청학련사건, 동백림사건, 울릉도 간첩사건, 미법도 간첩사건, 심문규 간첩사건, 이수근 간첩사건, 11.22 사건, 문인간첩단사건, 형제 간첩사건, 삼척 고정간첩단사건, 유럽간첩단사건, NH회 학원침투 간첩사건, 남조선해방전략당사건 등의 수많은 간첩조작사건과 사법살인을 일으켜 무고한 사람들을 해친 뒤 공안정국을 조성했다.  

특히 유신헌법 90% 이상 지지는 공포정치의 산물이었다.  

“박정환이 수천년 빈곤 국가를 살렸는가! 우리나라 경제를 키우고 다졌는지 모르겠어요? 박정환 통치가 우리에게 무엇인가요? 무엇을 남겼는지 따져봐요!”
“절대로 위인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사람은 아니야. 박정환이 소박하고, 인간미 넘치고, 국민만을 위해 살아온 사람이라는 평가나, 어쩔 수 없이 독재를 한, 청렴한 독재자라는 소리를 하는 자들이 간혹 많은데 일고의 여지도 없는 소리!” 

아버지는 단호하게 말했다.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히 사라질 기억이다.

“여느 독재자들과 다르지 않은 부패하고 악랄한 독재자일 뿐이고마!”

군사독재 한가운데 있으면서도, 마치 태풍의 눈 속에 있기라도 한 듯이 비인간적, 반민주적 현실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살았던 때가 있었다. 불의와 권력 앞에 당당한 사람. 세월의 풍상을 견뎌온 봉준이의 분노이다. 

“박정환이 새마을 어머니회 배구대회의 우승팀에게 격려차 악수를 하였고, 그중에 마음에 들었던 유부녀를 불러 관계를 맺었다는 소문이 있어요.”

박정환의 복잡한 여성관계와 독재자의 지위를 이용하여 연예인과 밀회하고, 접대를 받았다는 논란은 10·26 사건 전에도 공공연히 알려졌던 사실이다. 
국정 최고책임자이며, 국민의 정신적 지주여야 할 대통령이 국민의 눈이 닿지 않는 중앙정보부 부속 ‘비밀연회장’에서, 사흘에 한 번 꼴로 술자리 행사를 가졌다.

저작권자 © 세종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