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재찬

박정환이 남긴 ‘조국 근대화’란? 

국가주의 이데올로기는 국민들의 자율적 반성과 성찰능력을 빼앗아, 그 이데올로기에 순응하는 ‘수신형 인간’으로 만들어버려 국가폭력에 대해 암묵적 지지를 하도록 했고, 이러한 광기는 전두환 체제에서도 이어졌다.

제3공화국 시절의 인권은 역사의 가장 아픈 부분이다. 박정환 군사정권은 경제발전과 국가안보를 위해서는 개인의 자유는 일정 부분 유보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다 보니 대한민국은 ‘은폐’ 공화국이 되어갔다. 

막연한 불안감. “태어난 것” 자체를 후회한다. 
이 정도면 삶의 의미도, 기쁨도 없다. 그 고통이 욕이라도 하지 않으면 죽을 것 같다. 

그걸 솔직히 드러내고 풀기보다 은폐·억압·회피·묵인했기에 고통이 발생했다. 두려움 때문이다. 정부의 정책에 반대하거나 비판하는 것은 곧 국가안보를 해치는 것이라고 하여 강력히 처벌했다. 

‘완전하게 존재하기 위해 모든 형태의 소유를 스스로 포기할 것’. 생명 없는 유신은 내 삶을 지탱해주는 기준이 되었다. 
박정환은 반공을 빌미로 불법적으로 10월 유신을 선포하여 본색을 드러내 종신 독재로 나아갔으며 갖은 악행을 저질렀다. 

아이러니하게도 박정환이 정권 유지용 수단으로 활용한 극단적 반공주의는, 윤보선과의 대선 경쟁 당시 과거 남로당 경력 때문에 공격당하는 빌미가 되었으며, 막걸리·고무신 선거라는 말이 등장할 만큼 부정선거도 매우 심각했다. 

10월 유신 당시 친위 쿠데타 계획을 대한민국의 우방국인 미국이 아니라, 적국인 북한에 먼저 알리는 등 반공은 사실상 집권을 위한 명분이었을 뿐이었다. 

이점은 1970년대 이후 남북한 모두에서 독재자들이 종신집권을 준비하면서 보다 명확해진다. 
믿기지 않지만, ‘유신’이란 이름도 일본 근대화를 이룬 ‘메이지 유신’에서 따온 것으로 박정환 정권의 친일 편향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상징이다. 

만주군 복무 경력이 있던 박정환! 동문지기라 할 수 있는 친일파들을 적극적으로 등용했다. 이들은 5.16 쿠데타와 한일협정 등 박정환 정권의 주요 사건에 큰 활약을 했다. 

독립군 토벌·간도 특설대의 백선엽과 화신백화점 박흥식, 일제 침략 전쟁을 옹호한 김은호, 김기창, 이상범, 대법원장 민복기 등이 대표적이다. 

한국 정부의 친일파 등용은 해방 이후에 계속되었으나, 박정환 집권 기간에는 무려 206명의 친일파에게 훈장이 수여되었다. 이승만 집권 시기에는 친일파에 대한 서훈이 주로 일제 경찰과 군인 출신에 집중된 반면, 박정환 집권 시기에는 교육, 사법, 경제, 문화 등 전 분야로 확대된 것도 특징이다. 

친일파들에게 대한민국 훈장을 준 시기는 5.16 정변 직후인 1962년과 1963년에 집중됐고, 1970년에도 많았다. 

박정환이 친일파를 등용한 것은, 일단 본인부터 친일파였기 때문에 필연적이었다.
본인이 친일파이다 보니 친일파를 숙청하게 되면, 그 친일파 대상자에 본인도 포함되기 때문에 친일파와는 운명공동체가 된 것이다.

“이 사회는 민주주의가 밥 먹여주느냐, 라는 천박한 언술에 의해서 오랫동안 지배되어 왔어!” 

아버지의 외침이다. 이 말에는 가슴을 세차게 치는 호소가 깃들어 있다. 

깊은 밤, 책장을 덮은 나는 긴 한숨을 내 쉬었다. 정수리에 벼락을 맞은 듯했다.
민주주의는 ‘자유인의 자율적·자치적 삶’을 토대로 삼은, 민주주의가 없으면 밥도 못 먹는다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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