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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평사 낙화법, 무형문화재 전승 가치 높다는 학술연구 ‘주목’이선이 세종시문화재위원·강향숙 동국대 연구교수 영평사 소장 ‘오대진언집’ 분석 학술서 출간…“낙화법, 연등회에 기원해 전승”
충지협 이선형 기자  |  shl034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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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03.23  14:3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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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평사 소장 오대진언집. 낙화법이 묵서돼 있는 오대진언집은 영평사 소장 오대진언집이 유일본이다.

영평사 낙화법이, 불교 교의적으로 의지하는 근본경전인 소의경전(所依經典)을 가지고 있으며 유일본인 오대진언집(영평사 소장)에 낙화 제작방법과 재료 등이 기록돼 전해지고 있다는 점에서 무형문화재로 전승할 가치가 높다는 학술연구 결과가 발표돼 주목된다.

이선이 세종시문화재위원(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 의제위원회 의제실무위원)과 강향숙 동국대 연구교수가 최근 공동 출간한 ‘불교의례 낙화법의 기원과 형성과정’은 사찰 전승 낙화법을 처음으로 종합 고찰한 학술연구 성과물이란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이 위원은 이번 학술연구를 통해 낙화법은 연등회의 화산(火山)에 기원해 화산대의 폭죽놀이를 변용시킨 불교의례라고 밝혀 낙화의 기원과 형성과정, 연등회의 원형 등을 연구하는데 있어 큰 학술적 의미를 갖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강 교수도 고려사에 나오는 연등회 관련 용어 중 관화(觀火)가 낙화의 개념과 일치하는 것이며 관화가 낙화의 기원이라고 밝히고 있어 수구다라니 신앙을 중심으로 이뤄진 영평사 낙화법이 연등회 연구와 관련, 사료적 가치가 클 것으로 평가된다.

강 교수에 의하면 낙화법은 재난과 재앙을 소멸시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연등회의 관등(觀燈)과 관화 의식에 기원해 전승되고 있다는 것이다.

낙화법이 연등회의 화산과 관등, 관화에 기원했다는 것은 앞으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연등회의 원형을 재정립해야 할 만큼 중요한 내용이어서 큰 의미를 지닌다.

그동안 학계에서는 연등회의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추진 과정 등에서 낙화법이 연등회의 구성 요소였을 가능성이 제기되기는 했으나 학술연구를 통해 낙화법과 연등회의 형성에 대해 구체적으로 밝힌 것은 이번 연구가 처음이다.

낙화법은 한국에만 있는 불교의례로서, 대중문화를 기반으로 발전했다는 것이 이 책 공동저자들의 평가다.

이 위원과 강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영평사 소장 ‘오대진언집’과 수기(手記) 낙화법을 중심으로 살펴본 결과 영평사 낙화법이 숯을 이용하고 의례를 갖춘 불교수행의 한 방편으로 탄생했다고 한다.

이 위원은 영평사 소장본 ‘오대진언집’에 쓰여 있는 낙화법은 소의경전을 갖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낙화에 필요한 재료, 재료를 태우는 법, 진언 등의 요소를 잘 갖추고 있다고 평가한다.

오대진언집(五大眞言集)은 인수대비(1437~1504년)의 명으로 진언을 쉽고 바르게 읽을 수 있도록 편집한 진언집이다.

영평사 오대진언집은 17세기 후반이나 간행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위원은, 낙화법은 낙화놀이가 아닌 관등과 관화의 개념이며 연등회의 범주에 속하는 불교의례라고 판단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말한다.

이 위원은 영평사 낙화법이 숯으로 낙화하는 기구를 만들어 절차에 따라 태우며 진언을 염송하는 것으로 볼 때 소의경전을 갖춘 온전한 의궤로 손색없다는 점에 주목한다.

사진속에 연등이 매달려 있는 줄과 낙화봉지가 매달려 있는 줄이 보인다. 낙화와 연등회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사료로 평가된다.

   
▲일본인 무라야마 지준이 1925년 개성에서 석가탄신일에 찍은 사진. 사진속에 연등이 매달려 있는 줄과 낙화봉지가 매달려 있는 줄이 보인다. 낙화와 연등회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사료로 평가된다.

이번 연구에서는 1920~30년대 개성의 관등(연등) 모습을 찍은 사진 출처를 밝히고 불교 낙화법에 대해 분석했다는 점이 성과로 꼽힌다.

이 위원은 일본인 무라야마 지준(1891~1968년)이 한국에서 촬영한 사진을 소장하고 있던 노무라 신이치가 2019년 한국무형유산원에 기증한 사진 조사를 통해 1925년 개성에서 행해진 관등을 분석하고 연등과 낙화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무라야마 지준이 개성에서 1925년 석가탄신일에 찍은 사진을 보면 연등이 매달려 있는 줄과 낙화봉지가 매달려 있는 줄이 나타난다.

무라야이 지준의 사진 속 낙화봉지는 영평사 소장본 ‘오대진언집’ 속에 묵서로 쓰여 있는 낙화법에 따라 재현한 낙화봉과 형태면에서 아주 많이 닮아 있다는 점에서 불교 낙화법 전승 연구에 사료적 가치가 높다는 평가가 나온다.

   
▲세종시불교사암연합회가 2017년 세종호수공원에서 개최한 낙화 행사 모습

한국의 전통놀이 가운데 낙화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민속놀이는 20여 가지에 이른다.

불타는 실제 모습을 묘사해 낙화라 표현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조선시대다. 숯을 이용한 숯불놀이가 민간에서는 연희적인 면을 강조해 낙화놀이로 불리고 사찰에서는 의례로 발전해 낙화법으로 불리게 됐다는 것이 이 위원과 강 교수의 견해다.

시·도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낙화는 경상남도 함안낙화놀이(2008년 지정), 전라북도 무주안성낙화놀이(2016년 지정) 등 2건이다.

전국 낙화 행사 중 유일하게 제작방법이 문헌에 기록돼 전해지고 있는 영평사 낙화법은 세종시 장군면 영평사 주지 환성스님과 부강면 광제사 주지 원행 스님에 의해 전승돼 오고 있으며 이번 학술연구서를 통해 보존, 계승 가치를 높게 평가받았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환성스님은 1975년 서산 부석사에서 시작해 1987년 영평사를 창건한 이후 지속적으로 낙화 행사를 가져왔으며 원행스님도 2006년부터 매년 1~2회 낙화행사를 개최해 전승 필요성을 인정받고 있는 상황이다.

환성스님은 1975년, 금강산 유점사에서 수행한 노스님으로부터 낙화제작기술이 수록돼 있는 오대진언집을 건네받고 낙화를 전승해 왔으며 원행스님은 2006년 환성스님으로부터 낙화를 전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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