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재찬

남성의 머리가 조금만 길어도, 여성의 치마 길이가 조금만 짧아도 경찰서에 잡혀갔다. 

민심도 자신도 돌아보지 못하여 ‘마이너스 독재정권’으로 질주한다.

아버지는 1980년 2월에 사면된다. 다시 대학으로 복직된다. 그해 3월 ‘니체사상전집’의 ‘수정증보판’이 ‘서울의 자유’와 함께 출간된다. 

유신 독재체제하에 정신적 지주가 되어 준 ‘현인·賢人’ 아버지의 생각과 실천을 담아냈다. 

말하고 쓰는 것은 물론 생각하는 것조차 용인되지 않던 엄혹한 시절, 뜨거운 말과 행동은 시민들의 생각을 밝혀 주는 빛이자 희망이었다. 

떳떳하게 극우 보수단체라고 자신들을 소개하면서 등장한 일군의 집단들은 과거 냉전시대에 위력을 발휘했던 독재에 대한 향수를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있다. 

독재자의 신민에서 법의 시민으로 거듭 태어나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의 핵심이다. 

민주주의가 시장경제의 안착과 함께 중요하게 대두되었지만, 여전히 이런 분위기에 저항하는 잔재가 없어지지 않았다.

과거 냉전시대의 한국에서 경제발전으로 전쟁을 막자는 구호로 변주되기도 했다. 박정환이 독일을 방문했을 때, 북한체제에 승리하려면 경제발전을 이뤄야 한다는 조언을 받았다. 

경제발전이라는 대의명분은 자유민주주의 이념의 실현을 자유민주주의의 원칙을 배반할 수 있는 예외성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박정환이 믿었던 무역의 호혜성은 실제로 개발독재라는 폭력을 통한 경제발전이 있어야 가능한 셈이었다. 

정치의 목적이 시장의 질서를 바로잡는 선에서 그쳐야 한다는 것이 자유민주주의의 이념일진대, 독재자의 경우는 이런 원칙을 배반하는 사례가 너무 많다. 경제발전 여기에 위배되는 것은 쓸모없거나 아니면 낭비로 받아들였다. 

종북 사냥을 부추겨 시청률을 높이는 보수종편 또한 그만큼 민주주의의 감시기능이 약화됐기 때문이다. 

혁명은 민중의 것이다. 민중만이 혁명을 할 수 있다. 
군인은 혁명하지 못한다. 어떤 혁명도 전적인 찬성과 지지와 참가를 받지 않고는 혁명이 아니다. 민중을 내놓고 꾸미는 혁명은 참혁명이 아니다. 

아버지가 5·16 쿠데타를 통렬히 비판한 글에 감명받았던 고등학생은 어느 날 집에 찾아와 꽃잎을 따주며 향기를 맡아보라고 권하던 “꽃을 가꾸는 소년 같은 할아버지”였다고 말하기도 했다.

1980년대는 위대한 각성의 시대였다. 오늘 한국 사회를 어떻게 새롭게 일으킬 수 있을지, 순수한 열정으로 가득했던 ‘그해 봄날’ 아버지의 생각을 전해 본다. 

3대 독재자 전두환. 테러리스트 전두환 군부는 그러나 아버지를 ‘광주소요 배후조종자’로 다시 구속하고 해직시킨다. 

전두환 일당이 광주의 학살을 딛고 권력을 찬탈하는 1980년 5월에 아버지가 중심이 되는 교수 7인은 스스로의 학문적 자리에서 시대정신을 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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