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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강용수 전 세종시의회 부의장‘추수 감사절’의 유래
세종매일  |  ygnews@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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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11.30  15: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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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용수 전 세종시의회 부의장.

영국에서 신앙의 박해를 받아 네덜란드로 ‘순례의 길’을 떠났던 청교도들은 네덜렌드의 암스테르담과 라덴에서 얼마동안 신앙의 자유를 누리며 살다가 1558년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가 여왕으로 즉위하자, 타향살이를 청산하고 영국으로 돌아가기로 하였다. 

그러나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은 청교도들의 입국을 허락해주지 않았으며 엘리자베스 1세를 이어 즉위한 제임스 1세 그리고 그의 아들 찰스 1세는 왕권신수설(王權神授說)을 받아들이며, 모든 국민들이 영국 국교만 믿고, 이를 따를 것을 강요하고 있었다. 

결국, 청교도들은 고국인 영국 땅에 정착하지 못했고 신앙의 자유를 찾아 대서양을 건너 아메리카 대륙으로 가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드디어 1620년 9월 29일 승무원 6명을 비롯한 ‘필그림 파더스’라고 불리는 101명(남 72명, 여 29명)의 영국 청교도들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 메이플라워 호를 타고 영국 남서쪽 플리머스 항구를 떠났다. 
그러나 그들의 항해는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대서양 바다를 가로질러 항해해야 했기에 그들은 높은 파도와 싸워야만 했고 변덕스러운 날씨에다, 빈약한 식량으로 인해 고난의 여정을 견디고 견뎌야만 했다. 

약 40여 일간의 악전고투 끝에 드디어 1620년 11월 9일에 신대륙 매사추세츠 주 케이프 카드 만에 감격적으로 도착하였다. 

그렇게 험난한 항해의 여정으로 초죽음이 되다시피 한 영국 청교도들에게 찾아온 것은 바닥난 식량과 극심한 굶주림, 11월부터 시작된 혹독한 추위, 그리고 아메리카 신대륙에 이미 살고 있던 인디언들의 습격에 대한 공포 속에서 첫해 겨울을 보내야 했었다. 

겨우내 추위와 굶주림, 인디언의 습격, 괴혈병, 폐렴 등 질병에 걸리어 이듬해 봄이 오기 전까지 하루에 2, 3명씩 거의 절반이 죽어나가는 비극을 견뎌야만 했다.

그러나 청교도들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있다는 믿음과 신앙의 자유를 찾아서 떠나온 의지와 일념으로 윌리엄 브래드포드의 리더십 하에 현재의 보스턴 근방에 자신들이 떠나왔던 영국의‘플리머스’를 기념하기 의해 ‘플리머스’라고 이름을 짓고 황무지 땅을 개척하고 또 개척해 나갔다.

그런 가운데서도 인디언들에 대한 습격으로 가족과 동료를 잃은 슬픔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하지만 1621년 3월의 봄을 맞으면서 인디언들과 청교도들 간에 상호 협력 및 불가침 조약을 맺은 이후, 청교도들에게 우호적인 태도를 보인 왐파노악 부족 인디언들로부터 옥수수와 밀, 토지 경작법 등 많은 것을 지원받을 수 있었다. 

바닥난 식량으로 인해 일주일에 3일씩 어쩔 수 없이 금식을 하면서 굶주린 배를 움켜쥐어야 했을 때에는 인디언들이 짐승들을 잡아다 주는 덕분에 겨우 굶주림을 면하면서 버티어 나갔다.  

봄부터 부지런히 땅을 개간했고, 씨를 뿌려 경작을 해나갔으며 또 여름을 지나 가을까지, 풍요로운 수확물을 학수고대하며 열심히 일을 해 나갔다. 

드디어 가을이 돼 그들의 기도와 기대대로 봄에 심었던 옥수수와 보리, 밀 등이 풍작을 이뤄 신대륙에서의 감격적인 첫 추수를 하게 된 것이다. 

청교도들의 지도자 브래드포드는 지금까지 돌보셨던 하나님의 은혜에 크게 감사드리고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열심히 땀 흘렸던 자신들의 첫 수확을 자축하기 위해, 그리고 첫 수확에 크게 도움을 주었던 인디언들을 위로하기 위해 왐파노악, 부족 인디언 추장 마시소이드를 초청했다.

그렇게 최초의 ‘추수감사절’을 지냈던 것이다. 

이 자리에 마시소이드 추장은 90명의 용사를 데리고 참석하였다. 이날 청교도들은 들새를 잡으러 나가서 많은 칠면조를 잡았고 그 용사들도 사냥을 해서 큰 사슴 다섯 마리를 잡았다. 

청교도들은 제단을 쌓았고 인디언들과 함께 모여 앉아서 하나님께 감사를 올려드리며 큰 축제의 잔치를 벌였다. 

생존한 청교도들은 그렇게 감격적인 기쁨의 첫 ‘추수감사예배’를 드렸던 것이다. 목숨과 맞바꿔야 했을 정도로 그토록 바라고 바라던 신앙의 자유를 만끽하는 순간이었다. 

그날이 바로 1621년 11월 마지막 목요일이었다. 이것이 유래가 돼 오늘날 ‘추수감사절’이 탄생됐다고 한다. 

이 관습은 복음과 함께 서서히 다른 지역으로도 퍼져 나가기 시작하였는데, 영적으로 척박하기만 했던 이 땅에도 1885년에 복음이 들어오면서 그 절기를 지키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135년이 지난 지금, 어디를 불문하고 6만 여개의 십자가(十字架)가 빛을 발하고 있다. 

올해에는 코로나19의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수많은 교회들이 온 맘과 뜻과 정성을 다해 11월 3째 주일에 축제다운 ‘추수감사절’ 예배를 드렸다고 한다. 

특히 성결교단의 조치원성결교회(담임 최명덕 목사)에서는 ‘감사의 조건’이라는 주제의 설교가 있었다. 

하나님의 감동으로 쓰여진 성서에는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씀하시는데 좋은 일은 몰라도 나쁜 일까지 감사하기란 쉽지 않다고 한다. 아니 그건 불가능 한 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비결이 있다면, 주님과 동거할 때만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주님의 마음에 거하고 주님이 우리의 마음에 거하면 범사에 감사할 수 있다고 한다. 

즉, 주님과 동행하면 좋던, 나쁘던 그 뜻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기독교의 ‘추수감사절’은 현재 내가 소유하고, 누리고 있는 모든 일용한 것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어진 축복의 절기(節氣)라고 한다.

그렇다! 이 절기에 감사 없이는 희열(喜悅)도 없다는 말일 것이다.
우리들 모두, 감사가 넘쳐나는 나날 되시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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