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찬 소설가
               김재찬 소설가

길은 하나의 방향이며 목표다. 바른 길에 들어서면 가기만 하면 된다. 잘못 들어선 길은 아무리 가도 헛된 노력밖에는 안 된다. 어떤 길을 선택해야 할 것인가. 그것은 자기가 가고자 하는 목적에서 비롯된다. 서울로 가야할 사람이 부산으로 가는 길에 잘 못 들어서면 아무리 열심히 걸어도 서울로는 못 갈 것이다.

우리는 지난 수년간 하면 된다는 정신으로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 또한 6위권의 막강한 군사력을 이뤄냈다. 이제 선진국이라고 해도 한 점 나무람이 없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이러한 물질적·외적 성장에 못 미치는 적잖은 모순과 문제점을 안고 있으며 심한 갈등을 겪고 있다. 한국사회전반에 걸친 불신풍조와 이기적 행태가 심각하다. 특히 민주화과정에서 그동안 잠재해있던 다양한 내재적 욕구가 한꺼번에 분출됨에 따라, 새롭고 총체적인 가치관을 확립하기란 더욱 어려운 실정에 놓여 있다.

우리의 이러한 부정적인 현상은 오랫동안 우리가 삶을 영위해 오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잘못된 가치체계나 행동양식으로 나타난 것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이 이대로 가다간 더욱 큰일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우려하지 아니할 수 없다. 이는 결코 어느 누구 또는 정부만의 책임이 아니고 모든 국민이 함께 책임지고 해결해야할 과제인 것이다.

해방이후 서울은 각지에서 이주해온 이주민들의 도시였다. 서울이 ‘특별시’가 된 것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듬해인 1949년이다. 1963년에는 행정구역 대개편으로 면적이 2배 가까이 확대됐다. 1975년부터 ‘강남개발’ 등을 거치며 서울은 인구 1000만명의 거대도시가 됐다. 1995년 지방자치법 개정으로 부산, 대구 등 직할시는 ‘광역시’로 명칭이 바뀌었으나 서울만은 ‘특별시’로 남았다. 일자리·교육·문화·주거·자산 등 거의 모든 인프라가 서울에 집중됐다. 이러한 특별대우는 지금까지 한 번도 달라지지 않았다.

정치권력과 경제권력, 문화권력은 물론 모든 가치가 비정상적으로 집중된 서울은 쉼 없이 사람과 돈·자원을 빨아들였다. 이미 서울은 만원이던 1966년 370만명이던 인구가 1970년엔 500만명을 돌파했다.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인구를 수용하기 위해 수없이 많은 택지를 개발하면서 외연을 확장했으나 가는 곳마다 이르는 곳마다 꽉꽉 찼다. 급기야 경기도에 열서너 개의 신도시를 개발해 밀려드는 인구를 분산했지만 서울은 여전히 만원이다. 서울의 주택보급률은 이미 95%를 넘어섰지만 1966년 때처럼 ‘연년이 자꾸 모자란다’. 집값과 전셋값 때문에 서울 밖으로 이주한 가구들은 기회만 되면 서울로 진입을 준비한다.
결국 수도권은 더 커졌다. 수도권 인구는 2596만명, 비수도권은 2582만명이다. 국토의 12%인 땅에 인구의 52%가 거주한다. 전체 인구의 절반이 넘는 사람이 한 도시와 그 주변에 몰려 사는 나라는 없다. 수도권 집중이 가속되는 건 서울이 정치·경제·문화·교육 등 모든 가치의 중심지이기 때문이다. 기업·의료·금융·교육 등의 최고기관이 몰려 있다. 소위 상위권 대학의 80%, 100대 기업 본사 91%가 서울에 있다. 나라 전체 일자리의 54%가 서울과 수도권에 있다. 예나 지금이나 일자리를 찾으러,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집을 사기 위해 모로 가도 서울로만 가야하는 세상이다.

1960년대 이후 약 20년간 강남개발이 시작되던 시절, 땅과 돈 그리고 욕망. 허허벌판, 백사장이 금싸라기 땅으로 바뀌는 동안 누군가의 욕망은 돈으로 환전되었다. 개발독재, 개발행정이라는 말이 일반화되었다.
서울은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렇게 늘 만원이고 욕망은 아파트에 쌓인다. 누군가에겐 자산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삶의 기본적 터전인 집, 아파트. 그걸 단순히 개인의 욕망에만 맡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수도권 과밀화 억제와 균형발전을 위한 행정수도 건설이 처음 추진된 것은 박정희 정권 때다. 이후 행정수도 건설은 노무현 대통령의 집념에 힘입어 실현 목전까지 갔었다. 그러나 이는 2004년 헌법재판소의 위헌판결로 절름발이 행정도시가 됐다. 들어보지도 못한 ‘관습헌법’을 들어 위헌 결정을 내려 행정수도를 중단시킨 것은 후세에 역사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하지만 천도 주장은 흥행에는 성공한 듯하다. 야당인 미래통합당은 ‘부동산 정책 실패의 물타기’로 국면전환을 시도하고 있다고 주장도 하지만 통합당의 충청지역의원들을 포함해 동조하는 이들도 상당수에 달하고 있다. 

행정중심복합도시로 건설된 세종시는 어정쩡한 위상이다. 중앙부처의 3분의 2가 옮겨는 졌지만 정부의 핵심인 청와대와 국회가 서울에 남아있는 이상 그 효과는 기대를 미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쪽행정수도’로 인한 비효율성은 날로 커지고 있다. 심각한 행정 비효율성을 시정하기 위해서라도 ‘반쪽’은 반드시 해소되어야 한다.
수도권 일극 체제를 그냥 두고서는 어떤 주택·인구·교육·환경 정책도 제 기능을 발휘하기 어렵다. 수도권 집중을 해소하지 않고서는 부동산 양극화는 피할 수 없다. 결국 장기적으로 수도권 집중 완화와 집값 안정은 비수도권에서 수도권으로 인구이동이 발생하지 않고 균형발전이 이루어질 때야 가능하다.

만약 국회와 행정부가 이웃한다면 행정부의 정책 개발 집중력은 높아지고 국회와 행정부의 정책에 대한 공감대 형성도 수월할 것이다.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세종국회의사당 설치가 우선적이라 할 수 있겠다.
진정으로 지역균형발전을 이루고 싶다면 장기 플랜을 가지고 한반도와 도시.농촌을 어떻게 구성할지 고민해야 한다. 서울에 사람들이 몰리는 이유를 찾고 지방에서 부족한 부분이 무엇인지 찾아야 한다. 그리고 간극을 줄이려는 노력이 먼저다. 정치학적 접근은 접어두고 지역을 어떻게 살릴지 머리를 맞대야 한다. 국가균형발전은 진정한 고민 없이 불쑥 이루어질 일이 아니다.

길은 하나의 방향이요, 목표라고 했다. 목적을 위한 하나의 수단이었던 길이 목표와 방향이 되는 것은, 수단이나 방법으로서의 길이 인간의 욕구와 필요의 산물이었던 때문이다. 사람들은 필요에 따라 욕망하고 그 욕망은 또 목표를 만들어낸다. 이 때문에 길은 하나의 수단으로서 생각해도 좋고, 하나의 방향으로서 생각해도 좋다. 문제는 길을 가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옳은 수단으로서 옳은 목표로서 그 길을 가고 있는가가 문제일 뿐이다. 길은 아무데나 있다. 그러나 아무데나 함부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우리는 잘 안다. 아무데나 길은 있으면서도 아무데나 길은 있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에겐 방황과 불안과 위험이 있다. 눈 감고라도 가기만 하면 되는 그러한 길이 있다면 어느 누가 그 길을 택하지 않을 것인가. 그러한 길을 택하기가 어렵다는데 인간이 살아가는 어려움이 있는 것이리라!.

경험과 전통을 바탕으로 한 객관적인 가치를 가져야 하고, 오늘의 삶 속에 개인적 욕망에 대한 자기절제를 통한 공동체적 집단의식을 가져야하며, 바람직 못한 것은 과감히 버려야 한다. 우리의 미래는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이 나니라 우리가 선택하는 것이므로 무엇을 어떻게 선택하느냐가 중요하다. 우리의 도덕성이 무너지고, 국민정신이 황폐화된다면 정치나 경제를 비롯한 어떠한 형태의 미래지향적인 청사진도 한낱 신기루에 지나지 않게 될 것이다. 우리들의 가치체계나 행동양식을 하루아침에 바꾼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우리 모두에 의해 부지불식간의 행위의 결과로 말미암아 조성된 그릇된 국민의식을 우리 모두가 책임을 지고 바로 잡아 나가야 한다. 우리 자신과 자손들을 위해 좋은 것은 더욱 좋게 하고, 나쁜 것은 과감히 척결해 가는 강인한 의지와 혁신적인 노력이 절실히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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