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재찬

여름철에는 코를 찌르는 악취로 인해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 즈음 급속한 산업화과정 속에서 공돌이, 공순이란 신조어가 탄생하였다.

초·증학교만 졸업하면 대부분의 가난한 농촌, 특히 호남의 아이들은 보따리 하나 들고 무작정 상경을 서슴지 않았다.

그들이 갈 곳은 청계천 평화시장의 봉제공장 시다 아니면, 시내버스 안내양, 중국집 자장면 배달부, 구두닦이, 구로공단의 단순 생산직이 전부였다. 서글픈 시대, 암울했던 군사독재정권이 낳은 어두운 시대의 자화상이었던 것이다.

특히 집안 형편이 넉넉지 못한 호남인들은 아들을 출세시키기 위해 우리의 딸, 누나, 여동생들을 희생양으로 삼곤 했다.

유신 말기인 70년대 후반, 호남인의 서울로의 엑소도스가 절정을 이루던 시기였다. 수도권 포화와 인구 과밀화를 해소하기 위해 강남개발에 착수하여 대대적으로 아파트를 건설하였다.

압구정동, 잠실, 반포, 개포지구에 대단위 아파트단지가 속속 들어섰다. 허허벌판이던 강남은 아파트와 빌딩숲으로 상전벽해가 되어가고 있었다.

강남개발 붐에 힘입어 토착민과 지주들은 엄청남 토지보상을 받고 일약 신흥 부자대열에 합류하였다. 강남의 중대형 아파트지역인 압구정 현대, 대치동 은마, 쌍용, 선경, 우성아파트 등 민영아파트는 고위관료 권력층과 강북의 상류층, 그리고 벼락부자가 된 토착민들이 입주하였고, 잠실, 개포지구 소형 주공아파트는 대부분 서민들이 입주하였다.

그런데 중대형 평수가 밀집한 아파트촌에 거주하는 대부분은 출신지가 경상도출신이 압도하였다.
박정희 18년 장기집권으로 인해 경상도 출신의 패권주의가 대한민국의 주류세력으로 강고한 틀을 구축하였고, 도처에 경상도 패권주의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

정부 고위관료, 재벌, 대기업, 검찰, 경찰 등 권력의 중심은 경상도 출신이 지배, 군림하여 기득권층을 이루어 배타적 카르텔을 형성하여 출신지역 인사들의 자기지역 출신 챙겨주기, 밀어주기가 일반화되었고, 각종 개발정보를 독점하여 자기들끼리 공유하여 개발이익을 챙기는 독식구조가 고착화된 것이다.

따라서 지금 강남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출신지가 영남인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역사적 필연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하고 보호하는 정치세력을 확고히 지지하였고, 반대급부로 그 정치세력은 개발을 더욱 확대재생산 하는데 몰두함으로써 부동산개발에 따른 막대한 개발이익을 챙겨주어 막대한 불로소득을 창출하도록 했다. 

이들이 보수기득권 세력의 상징으로 부각되기에 이르렀고 어느덧 강남은 동토의 땅, 수구보수의 철옹성으로 한00당의 텃밭이 되고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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