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재찬

1946년 5월 초순. 중국 텐진항에서 미군 상륙용 함정인 LST 한 척이 뱃고 동을 울리며 동으로 항해를 시작했다.

승무원 등 500여명을 태운 이 배는 일제 의 패망으로 꿈에도 그리던 고국으로 돌아가는 조선인들이 대거 타고 있었다. 이른바 ‘귀국선’이었다.

전투용 군함이기에 몹시 배가 흔들려 다들 멀미를 심하게 했다.

그러나 이들에게 이 배는 ‘노아의 방주’나 마찬가지였다. 이날 ‘귀국선’ 갑판 위에서 한 젊은이가 무거운 시선으로 중국 땅을 말없이 응시하고 있었다.

그는 일제의 패망으로 패잔병 신세가 돼 귀국하는 ‘박정환 중위’였다.
만주군관  학교와 일본 육사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꿈에도 그리던 군인이 돼 당당 해 하던 그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몰골은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1940년 초 만주행에 오른 그로선 6년여만의 귀향이었다.

텐진에서 부산까지 오는 15일간, 추운 겨울바다와 선실도 없는 갑판 위에서, 태반이 굶는 동포들은 혹심한 멀미에도 토해낼 것이 없었다.

신음이나 울부짖을 힘도 없는 이 귀국선 갑판 위에서, 계급장을 뗀 군복차림에 다소 길어 보이는 군도(軍刀)를 허리에 차고 있는 한 사나이에게 눈길이 쏠렸다.

인상적인 이 사나이가 먼 훗날 박정환 대통령이었다.

박정환의 독립군토벌대 활동, 만주관동군 생활도, 일본의 무조건 항복에 날아가 버린다. 친일파 아니 일본인 다카키 마사오, 박정환!

그는 1945년 8월 15일 이후에는 어떤 행동을 하였는가? 일본의 지배는 영원할 것이라고 생각한 친 박정환에게는 일본의 항복은 대단한 쇼크였을 것이다. 패잔병의 낭패감과 극한의 절망에 빠졌으리라.

박정환. 하지만 그는 누구인가! 변신의 천재가 아닌가! 절망도 잠시였다.

그는 곧바로 변신을 시도한다. 그토록 노력하고 공들여 입은 황군의 군복을 벗어 던지고 민간복으로 갈아입고, 만주군의 부대를 탈영하여 피난민으로 가장하고, 피난민 대열에 끼어들어 북경으로 들어가 광복군에 합류한다.

우리는 여기서 유리한 상황에만 빌어 붙는 기회주의자의 전횡을 볼 수 있다. 이뿐만 아니다. 후일 그는 좌익계열의 장교가 되지만, 여순사건으로 불리해지자 수백이 넘는 동료들을 밀고하여 죽음으로 몰아넣고, 자기만 철저한 배신으로 살아남는다.

박정환이 좌익이 되는 행동에 대하여 보수논객 조갑제 등은 형, 박상희의 죽 음과 연관 지은다. 그 충격으로 좌익이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근거 없고 설득력도 없다는 주장이다.

박정환은 다만 유리한 상황에 편승한 것뿐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당시 한반도 상황은 미국 정보의 데이터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한반도는 온통 붉은색(좌파)으로 뒤덮고 있었다. 박정환은 그러한 권력의 흐름이 어디에 있는지 간파하고 그것에 편승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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