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재찬

국민소득 1만 달러를 돌파하는데 일본은 100년, 미국은 180년, 영국은 200년 이 걸렸다. 박정환이 이끈 대한민국만이 오로지 30년 만에 1만 달러를 달성했다.

어떻게 세계 최빈국이었던 ‘대한민국’을 세계 10위권의 부자나라로 만들 수 있 었는지에 열광하는 것이다.

“아버지, 18년간이나 장기집권·독재하면서 그만한 것도 못 이루면 말이 돼요?”
“그래도 성장과정과 꿈, 그리고 그의 도전을 통해 많은 배울 점을 함께 나눌 수 있으면 더욱 좋겠다.”
“오늘을 사는 우리는 잘못된 점은 과감히 버리고, 좋은 것들은 과감히 수용하여 나를 발전시켜 나가는 현명한 사람들이기 때문이야.”
“살다 보면 때로는 우리가 원치 않은 힘든 상황에 내몰리기도 해요.”
“이것은 우리가 살아있기 때문이야. 여전히 강고한 수구 보수가 큰 문제야.”
“그들이 구축한 절대 기득권을 왜 타파하지 못하고 있는 거지요?”
“살다 보면 때로는 우리가 원치 않은 힘든 상황에 내몰리기도 하지.”

보수정권하에서 박정환은 신비주의화로 숭배하며, 근대화를 일군 인물로 그에  대한 흠결을 논하는 것은 엄격히 금기시되었다.

1917년 경북 선산에서 출생한 박정환은, 일제시대에 문경소학교 교사로 재직 하던 중 ‘진충보국멸사봉공盡忠 保國滅私 奉公’이라는 혈서血書와 함께, 사범학교 시절 자신을 아껴주던 교련 주임이던 아리카와 중좌에게 만주군관학교에 꼭 입학하고 싶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아리카와의 도움으로 박정환은 만주군관학교에 시험을 볼 수 있었다.

이 혈서로 그는 훗날 친일파 논란에 휩싸이게 된다. 하지만, 여기서 암담한 현실 을 극복하고자 했던 그의 열망과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도전정신은 대단했다.

“4년제인 일본 육사와는 달리 만주군관학교는 2년제였어. 그가 조국 근대화에 경제개발계획을 추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만주군관학교에서 시작되었다고 말 하는 이들이 많아.”
“왜죠?”

당시 만주국은 일본 관동군이 독립적으로 만든 신개척지로, 붉은 노을에 물든 수수밭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는가 하면, 폭이 100m나 되는 대로를 중심으로 도시가 건설되고 있었다.

“만주 철도와 거대한 산업시설이 속속 들어서고 있던 터여서 박정환에게 이런 눈부신 발전의 모습은 그야말로 충격이었을거야.”
“그런 모습을 보면서 조선 역시 만주국처럼 눈부신 발전을 이룰 수 있다고 믿었었고, 훗날 경제개발계획을 주도했는지도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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