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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강용수 전 세종시의회 부의장‘순교자(殉敎者) 문준경·김동훈 전도사’
세종매일  |  ygnews@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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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2.17  16: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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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용수 전 세종시의회 부의장.

나라와 민족이 위기에 봉착했을 때 목숨 바쳐 나라를 구하려는 애국지사들이 나왔듯이, 개인의 신앙과 교회에 위협이 가해질 때 목숨 걸고 신앙을 지켜왔던 순교자들 또한 많이 있었다.

오늘날처럼 세속화 되어가는 그리스도인에게 참된 신앙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곳이 바로 순교성지(殉敎聖地)라고 한다.

즉, 종교 혼합주의와 이단 사이비가 판을 치고 비성경적인 사회풍조와 타락한 세속문화의 늪에 빠져 가는 영적 혼란기에 오늘의 기독인이 지녀야 할 정체성과 기독교 신앙의 진수가 무엇인지를 확실하게 배울 수 있는 곳이 바로 순교지(殉敎地)와 유적지(遺跡地)라는 말일 것이다.

성결교단의 많은 순교성지 중에 전남 신안군에 있는 임자 진리교회와 증동리교회 그리고 문준경 전도사의 순교기념관을 꼽지 않을 수 없다.
 
이곳은 1,004개의 섬(島)이 있어 천사(天使)의 섬으로 불리는 유명한 관광지이기도 하지만 이곳은 기독교 대한성결교단의 순교성지(殉敎聖地)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이곳의 문준경 전도사는 모진 박해(迫害) 속에서도 가시밭의 백합화처럼 피 흘려 죽어 가면서도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뿜었던 연약한 여인이었다. 죽음 앞에서도 변절하지 아니한 그의 순교로 인해 오늘의 성결교회들이 반석 위에 굳건히 설 수 있었고, 한국교회 부흥의 밑거름이 되었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는 성서의 진리를 더욱 빛나게 한 장본인이다.

전남 신안군에 있는 천국의 보물섬인 증도는 우리나라에서 복음화율이 가장 높은 곳이기도 하다.

그곳 주민의 90% 이상이 예수를 믿고 있기 때문이란다.

마을 사람들이라고는 이천 여명밖에 안 되는 이 작은 섬에 교회만 10개가 넘게 세워져 있다고 하니 그들의 경건한 삶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간다.

예로부터 섬(島)사람들은 토속(土俗)신앙을 믿으며 살아왔다. 이런 오랜 전통 때문에 섬은 기독교 신앙이 전파되기 가장 어려운 곳 중의 하나였다. 이런 곳에 성결교단이 들어와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워 복음통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문준경 전도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그는 연약한 여인으로 신안군에 흩어져 있는 수많은 섬들마다, 나룻배를 타고 다니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끈질기게 주민들을 설득하고, 먹이고, 입히고, 돌보아 주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녀는 1891년 2월 2일 신안군 암태면 수곡리의 작은 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부지런해 주위 사람들로부터 칭찬과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1908년 17세에 정씨가문의 근택 씨와 결혼하여 증도라는 섬으로 오게 되었다. 사업가인 남편은 두문불출하였고, 설상가상으로 둘 사이에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고 한다.

결혼 후 14년 만에 남편은 소실을 얻었고 시부모님이 돌아가시자 목포에서 홀로 셋방살이를 하며 외롭고 고달픈 삶을 살았다.

이때 예수 그리스도는 한줄기 빛이 돼 그녀에게 다가왔다고 한다.
그 무렵 장석초 목사님이 개척한 ‘북교동 성결교회’에 출석하게 되었고 이성봉 목사님을 통해 하나님을 만난 그녀는 죽을 때까지 복음을 전하며 살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서울에 있는 ‘경성성서학원’ ((현) 서울신학대학교)에 입학하여 신학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나락(奈落)으로 떨어진 그의 비참한 인생은 훈련된 하나님의 사역자로 거듭난 것이다.

그 당시 결혼한 여자는 입학할 수 없다는 관례 때문에 신학교에 정식으로 들어 갈 수 없어서, 이혼을 하려고 남편과 소실 그리고 자녀들이 살고 있는 임자도에 찾아갔지만 거절당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의 발걸음으로 임자도에는 전도사님을 통해 진리교회가 세워지고 훗날 48명의 순교자와 자신의 일가족을 죽인 좌익들을 사랑으로 용서한 이인재 목사가 배출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임자도를 기점으로 전도사님의 섬(島) 선교사역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증동리 교회와 대초리 교회가 세워지게 되었고 섬 곳곳에 기도처가 세워졌다는 것이다.

그는 가까운 이웃 마을부터 먼 섬까지 주민들의 부탁으로 짐꾼, 우편배달부 노릇을 마다하지 않았고, 섬 주위에 있는 돌 자갈길을 얼마나 걸었던지 1년에 고무신을 아홉 켤레나 바꿔 신었다고 한다.

또한 그의 열정적인 기도는 신유(神癒)의 은사까지 더해 정신병자, 중풍환자를 고쳐낸 ‘섬 여의사’란 말까지 들을 정도였다.

1943년 일제의 탄압으로 기독교 성결교단이 강제 해산됨과 동시에 그녀가 개척한 증도교회까지 그 여파가 미치게 된다. 왜놈들의 형사들은 그녀가 신사참배를 거부했다며 목포경찰서로 불러내 온갖 고문을 일삼기도 하였다.

이때마다 문 전도사는 찬송가 “환란과 핍박 중에도 성도는 신앙 지켰네.”를 부르고, 에스더의 4장 16절 “죽으면 죽으리라”는 말씀 붙잡고 그 고통을 이겨 낼 수 있었다고 한다.

아무리 회유와 협박이 이어져도 굴욕적인 신사참배는 절대로 허락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해방 후 공산당을 따르는 좌익들의 활동은 이 작은 섬까지 점령하다시피 하였다.

특히 6.25 때에 지역 전체가 인민군의 손아귀에 넘어가자 평소 교회를 못마땅하게 여겼던 이들이 문 전도사와 성도들을 못살게 굴었다.

1950년 10월 4일. 국군이 증동리 섬까지 들어온단 소식이 전해지자 악의에 찬 공산당원들은 교인과 양민을 바닷가 모래사장으로 끌고 가더니 한 사람씩 단도로 내리쳐 죽이는 만행을 저질렀던 것이다.

그녀에게 다가와서는 “새끼를 많이 깐 씨암탉” 이라는 말과 함께 몽둥이를 가지고 인정사정없이 때리는 바람에, 그녀는 “아버지여! 내 영혼을 받으소서.”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이어진 총탄에 의해 순교 당하였다. 아! 그녀의 나이 59살이었다.

이렇듯 문 전도사의 헌신과 사역은 한 톨의 밀알이 되어, 고향인 전남 신안군의 섬에 증동리 교회, 임자 진리 교회, 대초리 교회, 우진리 교회,병풍리 교회, 사옥 교회, 장고리 교회 등 10여개의 교회를 설립하였다. 그가 세운 교회들이 오늘날 기독교를 대표하는 수많은 목회자들을 배출하는 믿음의 산실이 돼 왔던 것이다.

이 영향을 받아 증도면에는 160여 명의 목회자와 80명의 장로가 세워졌다고 한다. 또한 1,500명 이상의 헌신자(獻身者)들이 배출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 한국 교회의 자랑스러운 순교자! 문준경 전도사는 영원한 성자(聖者)의 반열에 올라 있다고 한다.

우리 지역 세종시에도 순교자의 피(血)가 흐르는 거룩한 성지(聖地)가 있다.

‘진리와 성결’의 요람인 ‘경성성서학원’ ((현)서울신학대학교)을 졸업한 김동훈 전도사는 1928년 3월에 세종시 조치원읍 돌마루 4길 19 소재지인 조치원성결교회 ((현)담임: 최명덕목사)의 사역자로 부임하게 된다.

성결한 삶의 대명사로, 억울한 누명과 무자비한 구타 때문에 중상을 입고 죽음에 이른 성결교단 최초의 순교자인 그는, 그곳에서 365일 내내 빛을 발하고 있다. 왕대밭에 왕대 난다는 말이 있던가!

이 거룩한 성지에는 성서의 말씀과 인간 이해가 돋보이는 곳이기도 하다. ‘2020’년의 표어 “공경하고 양육하라!”는 밀알에서 앞으로 달릴 열매가 벌써부터 풍요롭게만 느껴진다.

독자 여러분! 성탄의 기쁨이 가득하시길 기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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