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재찬

“반민주반민생반평화적폐들을 일소하고! 사회의 전면적 개혁을 통해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어달라는 게 촛불이었어요!”
“그들 보수가 기득권 지키기엔 온갖 권력을 한데 모아서 행사하고 싶겠지.”
“그래서 진보에선 권력을 쪼개야 한다고 있는 거 아니에요?”
“그래야 권력 주체 사이에 견제와 균형이 이루어지고, 권력 남용을 막을 수 있다고 말하지.”
“이렇다 보니 보수에선 죽자 사자 억지를 쓰는 거구요.”

역사는 한 방향으로만 우리를 안내하지 않았다.
계속 진보하거나 계속 퇴보하지도 않았다. 가르침을 주고 기다린다. 깨달을 시간을 준다. 우리는 4·19혁명에 이어 5·16군사쿠데타, 1970년대 암울한 유신의 정치적 암흑기를 거쳐 민주화 열망을 이어가며 1980년 5·18민주화운동, 1987년 6월 항쟁에 이어 촛불을 들었다.

“다만, 사회적, 경제적 모순이 심화되는 현재 한국사회는 혁명 이후에 얼마나 공평하고 정의로워졌는지 생각해 보게 돼.”

박정환의 5·16쿠데타, 전두환의 군부집단 학살테러를 비판적으로 보는 지식인의 평가는 엇갈릴 수 있다.

그리고 새로운 변화를 거부하는 보수들에게 강한 울림을 이끌어 낸다.

1963년 10월 대통령선거 국면에서 간첩 ‘황태성 사건’ 등 박정희 사상 논쟁이 벌어졌을 때 아버지는 미국 국회도서관에 있던 한 지인에게서 관련 자료를 찾았다. 그러던 중 5·16에 반대했다가 미국방성의 배려로 국방장학생으로 워싱턴 에 와 있던 아버지에게 귀가 번쩍 뜨일 얘기를 전해 들었다.

그 지인은 ‘황태성’과 박정환의 형인, 박상희는 박정환이가 남로당에 입당할 때의 신원보증인이다. 5·16이후 황태성이 박정환과 접촉을 위해 내려왔을 때 박정환은 김종팔에게 그를 만나도록 했다.

아버지는 이 정보를 입수해서 상부에 보고했는데 상부에서는 황태성, 김종팔이 회동하는 반도호텔을 감시하라고 했다. 그때 김종팔은 중앙정보부를 조직하느라 반도호텔 한 층을 온통 차지하여 사용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두 사람이 반도호텔 8층 몇 호실에서 몇 시간 동안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를 모두 조사해 상부에 보고했다.

황태성이 내려온 목적은 박정환과의 연대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같은 정보를 입수한 미국측은 황태성을 미정보기관 에 인도하라고 박정환에게 계속 압력을 가했다.

그러나 박정환은 석연치 않은 이유로 황태성을 인도하지 않고 계속 시간을 끌었다.

오히려 그 사건을 추적하는 아버지를 한국에서 추방했다. 아버지는 그 내용을 즉시 기사화해서 언론사에 송고했으나 친일언론지 조신일보는 웬일인지 이 기사를 보도하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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