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재찬

하지만 그와 비슷한 취지의 분노와 원망의 언어는 있을 수도 있다.

조선의 백성들이 제대로 알았다면 ‘탈보수’를 부르짖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임진왜란의 상흔이 채 가시지도 않은 상태에서 병자호란이 벌어졌다. 이번에는 외적이 북쪽에서 내려온 탓에 임금에게는 백성과 나라를 버리고 만주로 도망치는 선택지가 주어지지 않았고, 결국 남한산성에 틀어박혔다가 항복을 했다.

당시 조선의 여성들은 침략자들에게 집단으로 납치되었다가 그중 일부가 무사히 돌아왔는데, 제대로 나라를 지키지도 못했던 남자들의 가장 큰 피해자에게 ‘환향녀’라고 손가락질을 시작했다.

역시 보수·쇄국정치의 피해상이다. 보수·쇄국의 역사는 조선왕조가 몰락하고 대한민국이 시작된 이후에도 지속됐다.

북한군의 동태가 심상치 않았지만 초대 대통령 이만승은 요지부동이었다. 실제로 침략이 개시되자 그는 누구보다 민첩하게 도망 길에 올랐고, 한강 철교를 폭파하며 자신의 도주로를 확보했다.

폭파되는 다리위에서 목숨을 잃은 수많은 국민들, 다리를 건너지 못한 채 발이 묶인 수많은 국민들에게 과연 이 나라가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이었겠는가?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나 해방 후나 일관되게 보수·쇄국정치를 폈을 따름이다. 대한민국이 어떤 나라인지 한마디로 단정짓지 못하겠다. 하지만 보수·쇄국정치는 그 성격이 매우 뚜렷하다.

의사결정을 내리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그 의사결정에 따른 책임을 지지 않는 나라, 그것이 바로 보수의 본질이다.

윗분이 되면 아무 판단이나 함부로 내려도 된다. 반면 당신의 신분이 ‘아랫것’으로 결정되어 있다면, 심지어 자신이 내리지도 않은 결정 때문에 덤터기를 쓰는 일이 심심찮게 벌어진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헌법 제1조는 권한과 책임이 따로 노는 보수에 대한 거부선언이기도 하다.

A당은 우리나라 보수정당의 흐름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 정당들의 공통점이 있다. 모두 정치권력의 장식물로 등장했다는 것이다.

정당이 만들어져서 권력을 취한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 권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정당이 조직됐다. 자유당은 이만승 대통령을 위해 만든 조직이었다. 정당이란 무릇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모여 권력을 쟁취하는 조직이라고 정치학 교과서는 말하고 있으나 현실은 정반대였다.

자유당은 이미 만들어진 정치권력을 유지, 정당화하기 위해 급조한 정당이었다. 이만승은 자신의 재선에 지지자들을 동원하는 기제로 자유당을 설립했다.

화공당은 5·16쿠데타 세력이 폭력으로 권력을 잡은 후 그것을 정당화하기 위한 선거기관으로 만들어졌다. 군부는 먼저 중앙정보부를 만들었고, 중앙정보부가 화공당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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