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에 살리라…‘괴화산의 산짐승’

▲권오엽 충남대 명예교수.
▲권오엽 충남대 명예교수.

‘연기군지’가 전하는 전설들을 읽다 보면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있다.

전월산의 버드나무가 흔들릴 때마다 괴화산 자락 여인들이 바람난다는 전설이 대표적이다. 그 같은 것을 보면

“전월산과 괴화산 자락의 주민들을 이간질시키려는 전설이다.”

라는 생각이 든다. 금강을 사이에 둔 양쪽 주민들을 다투게 하는 일로 이득을 보려는 세력이 만든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그것은 ‘연기군지’을 편찬한 분들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다만 전하는 기록을 소중히 여겼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연기대첩연구’는 더 한다.

옛날에 오랑캐들이 나타나 닥치는 대로 방화하고 약탈한 후에는 부녀자는 물론 어린아이와 노인들까지 잡아갔다. 필설로 다 할 수 없는 악행을 저질렀다. 오랑캐들은 금강을 타고 올라와 괴화산에 진을 쳤고, 우리 병사들은 강 건너 전월산에 진을 쳤다.

괴화산 자락의 주민들은 오랑캐가 무서워 꼼짝달싹 못하고 숨어서 동태를 살폈다.

도망친 주민도 있었으나 대부분의 주민들의 숨어서 떨고 있었다. 괴화산에 진을 친 오랑캐들은 총공격을 하기 위해 무기를 점검하고, 날이 밝으면 활을 쏘면서 강을 건너는 작전을 펴기로 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의 일이다.

“아니 무기들이 왜 이렇게 되었단 말인가.”

아침에 일어난 오랑캐들은 무기를 보고 깜짝 놀랐다.

어제 저녁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무기들을 괴화산 짐승들이 쪼아서 못쓰게 만들었던 것이다. 놀란 오랑캐들이 우왕좌왕했고, 그것을 안 전월산의 아군이 활을 쏘아 적군을 사살했다. 살아서 도망친 오랑캐는 불과 몇 명만이었다. 그것을 안 동네 사람들은 덩실덩실 춤을 추면서

“괴화산 짐승들이 아니었으면 승리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보답해야 한다.”

산짐승에게 감사해야 한다며 음식을 장만하여 차리고 절을 했다. 이후로도 괴화산 자락의 주민들은 10월 1일마다 괴화산에 올라 제사를 지냈다.
이 전설이 말하는 오랑캐의 정체가 분명하지 않다. 원래 오랑캐란 만주에 사는 여진족이나 거란족을 의미했으나 후에는 중국도 포함하게 된다. 그런 오랑캐라면 금강을 타고 올라오기 보다는 북에서 내려왔어야 한다.

또 우리는 금강에 나타난 오랑캐라면 고려를 침범한 몽고군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금강을 타고 올라 와서 괴화산에 진을 쳤다면 그것은 오랑캐가 아니라 왜구로 보아야 한다.

원래 왜인들은 삼한시대부터 우리 해변에 나타나 구걸했다. 그러다 마음에 차지 않으면 방화하고 약탈하다 살인까지 해댔다. 백제는 금강을 타고 내려가 동해를 건너간 왜에 많은 문화를 전해 주었다. 왜의 각지에 나라를 세우기도 했다. 그래서 일본의 천황들은

“우리는 백제의 후손이다.”

라는 말을 자랑스럽게 한다. 우리는 그렇게 많은 것을 왜에 전해주었는데도, 그들은 수시로 금강을 타고 올라와 온갖 만행을 저질렀다. 따라서 이곳의 오랑캐는 왜구로 보아야 한다.

지금은 금강을 사이에 둔 전월산과 괴화산 자락의 주민들이 쉽게 오가며 살고 있지만 다리가 없던 옛날에는 한 번도 건너보지 못하고 죽는 사람도 많았다. 그래서 금강에 나타나는 침탈자들은 양편 주민이 화합하지 않고 미워하며 싸우기를 원했다. 그래서

“저쪽 사람들이 당신들 욕을 하던데요.”

이쪽을 찾아가서는 건너편 사람들의 말을 왜곡하고

“강 건너편 주민들이 당신들을 해칠 흉계를 꾸밉니다.”

저쪽을 찾아가서는 있지도 않은 거짓말로 이쪽을 미워하게 한다. 그런 자들이 만들어 낸 것이 전월산의 버드나무의 전설이다.

“전월산 버드나무가 흔들리면 괴화산 자락에 사는 여인들이 바람난다.”

괴화산 자락의 주민이라면 누구나 화를 내고 겅건너 사람들을 미워하게 하는 내용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괴화산 자락의 주민들이 관대하여 아랑곳하지 않았다. 따라서 양쪽 주민들이 다투지 않은 것은 오로지 괴화산 자락 주민들의 아량으로 보고 감사해야 한다.

그런데 외적을 물리친 것이 짐승의 공이라는 전설도, 보기에 따라서는 이상하다.

총공격을 준비한 적군의 화살을 짐승들이 쪼아서 못쓰게 했다는데, 그것은 쥐를 연상하는 내용의 전설로, 주민들을 쥐보다 못한 존재로 전락시킬 수도 있다. 물론 동물의 은덕을 칭송하는 전설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전월산의 버드나무가 흔들리면 괴화산자락의 여인들이 바람난다는 모욕적인 전설과 같이 생각하면, 주민이 쥐만도 못하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어, 생각해볼 일이다.

그저 쥐를 칭송하는 전설이 아니라 주민을 모독하려는 의도가 있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원래는 이랬을 수 있다. 그 해에도 왜놈들이 금강에 나타나자 전월산과 괴화산 자락의 주민들은

“봉화를 올려라.”

어느 때와 마찬가지로 산정에 불을 피워 연락하고 같이 공격하여 왜구를 전멸시켰다. 그리고 봉화를 올렸던 산정의 돌탑 앞에 제물을 차리고 노래하고 춤을 추며 밤을 새웠다.

이런 내용의 전설이 전해지고 있었다. 그것을 금강변의 주민을 이간질 시키려는 동방의 세력이 왜곡시켰고, 주민들은 생각 없이 전승시키고 있을 수도 있다.

저작권자 © 세종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