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더 대왕’

▲강용수 전 세종시의회 부의장.
▲강용수 전 세종시의회 부의장.

알렉산드로스 3세라고도 하는 알렉산더 대왕은 B.C 356년 마케도니아의 왕인 필립2세와 올림피아스의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탄생에 관해서는“어머니인 올림피아스의 몸에 큰 벼락이 떨어지는 꿈. 또는 필립 왕이 자기 부인의 몸을 큰 뱀이 둘둘 감고 있는 꿈을 꾸고 낳았다.”는 등의 전설적인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그의 청소년 시절에는 그리스의 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답게 문학적으로 뛰어난 재능을 보이기도 하였으며 수많은 철학자들과 교유(交遊)를 하였다고 한다.

그 당시에 비록 가난하지만 부끄러움 없이 자족생활을 했던 철학자 디오게네스와의 일화는 지금도 유명하기만 하다. 어느 날 시내를 행차하다가 길거리 모퉁이에서 우두커니 앉아있는 디오게네스를 보자 그의 앞에 가서 “디오게네스여! 소원이 있으면 무엇이나 들어 줄 테니 말해보시오.”라고 말을 건넸다.

즉, 자기가 정복한 나라의 반이라도 떼어달라면 거저 줄 생각으로 말이다. 잠시 후에 디오게네스는“현명한 대왕이시여! 현재 대왕께서는 따뜻한 햇볕을 가로 막고 계십니다. 나의 소원은 제가 햇볕을 쬘 수 있도록 대왕께서 비켜주시는 것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렇다. 그들은 인간의 한계를 뛰어 넘는 대 철학자들이었다.
특히 알렉산더는 기원전(紀元前), 서양에 알려진 나라를 모두 정복한 왕으로 더 유명하기만 하다. 어려서부터 부왕(필립)으로부터 전술, 행정 등의 실제적인 일을 배워왔다.

그리고 18세에 이르러서는 카이로네이아 전투에 직접 참가하기도 하였다. 이후 부왕(필립)이 암살되자, 약관 20세의 나이로 왕위에 오르게 된 것이다.

그는 2년 후에 마케도니아 군을 거느리고 페르시아와 싸워 승리하였고, 그리스의 여러 도시를 해방하였다. 시리아, 페니키아를 정복한 다음 이집트에 이어 1,000km가 넘는 사막을 거처 아몬 신전을 참배(參拜)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다시 군대를 동쪽으로 돌려 이란고원을 넘어 인도까지 정복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계속되는 장마와 전염병으로 인하여 병사들은 쓰러져 가고  있었다. 결국, 군사를 돌려 B.C 324년에 페르세폴리스로 되돌아왔다.

그는 1년 후에 바빌론에 돌아와 아라비아 원정을 준비하던 중 33세의 젊은 나이로 병사하게 된다. 13년간의 오랜 전쟁을 치루면서 수많은 사상자(死傷者)를 내면서 원(願)없이 전리품을 챙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그가 죽음 앞에서 병사들에게 세가지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그 세가지 유언은 자신의 관은 반듯이 자신의 담당 의사가 옮기도록 할 것이며, 관을 무덤으로 옮기는 길에는 금은보화를 잔뜩 뿌려 놓을 것, 그리고 두 손을 관밖에 내놓으라는 것이었다.

병사들은 처음에는 알렉산더가 왜 그렇게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알렉산더는 세상 사람들에게 세가지 교훈을 남기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우선 의사가 관을 옮기게 함으로써 그 어떤 의술도 사람의 목숨을 살릴 수 없고 의사가 생사를 결정할 수 없음을 보여주고자 했던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살아생전에 돈과 부를 쫓지 말라는 것이었다고 한다. 이런 것들을 추구해도 아무런 의미가 없고 그저 시간 낭비라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 즉 사람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보여 주고자 했던 것이다. 그와 같이 알렉산더는 아쉬움을 남긴 채 세상을 떠났지만 죽음 앞에서 그는 자신의 체험을 토대로 제 아무리 많은 재물도 사람의 목숨을 되살릴 수는 없으며 더욱이 생명을 연장 할 수 없다는 교훈을 남겨주었던 것이다.

알렉산더가 우리들에게 자신과 같은 우(愚)를 범하지 말라고 교훈을 주었음에도 이 시대의 많은 이들이 그 깨달음을 얻지 못한 채,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알렉산더의 전철을 밟고 있다는 것이다.

어느 정권을 막론하고 청문회에 등장하는 각계각층의 봉황이라는 자들을 보고 있노라면 분노를 넘어 연민을 느낀다.

편법을 동원한 위장전입. 위장이혼. 부동산 투기. 교묘한 방법으로의 탈세. 자녀들과 가족들의 각종 특혜. 적절치 못한 재테크.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를 막론하고 국방의무가 있건만 비겁한 방법으로의 병역면제, 증거인멸, 거짓증거, 횡령, 배임, 공갈, 협박, 회유, 도피, 직권남용 모두가 그들만의 이야기인데도 남의 이야기처럼 변명하고 모르쇠로 일관하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정말로 가증스럽다는 말일 것이다.

아무리 참새들이 후안무치(厚顔無恥)라고 조잘조잘 댄들 살아있는 권력이 눈 하나 깜짝하겠느냐만 오늘따라 알렉산더 대왕의 교훈이 존경스럽기만 하다.

그런데 말입니다. 혹자는 말하기를 요즘은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악어의 눈물을 흘리는 자(者)들이 너무 많다고 한다.

즉, 그것이 진정한 참회의 눈물이라면 그 자리에 연연(連延)하지 않고 석고대죄(席稿待罪)가 우선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어느 유명한 철학자는 죽음이 코앞으로 다가왔을 때 알렉산더 대왕의 도리(道理)를 터득하다 보면 너무 늦을 수 있다고 충고한다. 명심들 하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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