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재찬

아버지는 이를 ‘비사교적 사교성’이라고 표현했다.

인간에게는 사회를 형성하고자 하는 성질과 자신을 개별화, 고립시키는 성질이 모두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혈연관계 친구관계, 애정관계를 모두 혐오했던 아버지는 혼자 철학에 몰두했다.
아버지는 예순 무렵에는 집에 매일 손님들을 초대해 열띤 대화를 나눴다.

하지만, 나는 어릴 때부터 농밀한 인간관계를 증오해왔다.

아버지는 생태적으로 ‘비사교적 사교성’을 실천해온 자신의 일상과 인생론을 위악적이라고 느껴질 만큼 직설적인 필치로 적고 있다. 나는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연인, 부모-자식, 친구, 사제 등 모든 형태의 구속적 인간관계를 기만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고립이 대안이라고 보지도 않는다.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 인간관계란 좋게 말해 자기중심적인, 자립한 사람들 사이의 옅은 관계이고 적나라하게 말하자면 늘 내가 우선이고 상대방은 두 번째인, 자기 희생정신이 결여된 이기주의자들 사이의 건조한 관계다.

내가 한국 사회의 집단주의적 분위기나 제도화된 규율에 거부감을 보이는 것은 그래서 자연스럽다.
철학을 대하는 태도도 독특하다.

소크라테스적 전통을 따르는 철학은 흔히 ‘어떻게 해야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가’에 대해 묻지만, 나는 철학을 한다는 것은 바로 니힐리즘의 극단적 형식인 ‘무의미한 것이 영원히’라는 잔혹하기 그지없는 진리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이며, 잘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산다는 것 자체가 좋은지, 묻는 것이라고 말한다.

“타인의 아픔을 아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므로 아이들에게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라고 가르칠 수는 없어.”
“인구절벽 같은 한국 사회의 절박한 현안 또한, 아버지에게는 조잡하고 사소한 문제에 불과하다고요?”
“나의 태도는 좋은 시민에 대한 통념적 이미지는 물론이고,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좋은 지식인 상과도 거리가 멀기는 해.”

“그러나 철학 같은 무법지대에 발을 들이려면 신경이 상당히 두꺼워야해요.”
“세상이 받아들이지 않는 진짜 되먹지 못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현대 한국에는 약함이 미덕으로 통하고 약자를 배려하자는 이야기만 떠들썩해요.”
“타인의 마음에 의존하는 태도를 하나씩 고쳐나가야해.”

삶의 의미에 대한 철저한 회의와 적당한 고립을 강조하는 아버지의 메시지는 이 지점에서 역대 최장기 베스트셀러와 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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