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제일의 사기꾼 김선달’
조선시대의 평양 출신인 사기꾼 김선달을 모르는 사람들은 별로 없을 듯하다.
그는 1906년부터 연재된 한문소설 ‘신단공안(神斷公案)’에 등장하기도 하고 그가 지은 수많은 풍자시(諷刺詩)가 책으로 출간되어 지금까지 온전히 전승(傳承)되는 것을 보면 그 당시에 얼마나 유명했던 사람인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또한 그의 지략(智略)이 얼마나 뛰어났으면, 그 당시의 고관대작(高官大爵)들도 그에게 봉(鳳)이 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물론, 김선달의 많은 일화 중에 대표적인 것은 대동강 물을 팔아먹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가 대동강에 나가서 물을 길어 가는 사람들에게 돈을 나눠 주면서 다음 날 그 돈을 돌려 달라고 한다. 계획한 대로 다음 날 아침 대동강에 나가서 “물 값을 주시오.”라고 하면서 미리 뿌려 놓은 밑천을 걷는다.
외지에서 온 돈 많은 행인이 이 장면을 보고 의아해하며 뭘 하냐고 물어보자 그는 대동강 물을 팔고 있다고 대답한다.
욕심이 생긴 그 행인은 김선달에게 큰돈을 주고 대동강 물을 팔 수 있는 권리를 사게 된다. 다음 날 아침 대동강에 나가 물을 긷는 사람에게 물 값을 달라고 한다. 아무도 돈을 내지 않자 그제야 행인은 속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외에도 김선달이 남을 속이고 득을 보는 이야기가 많은데 그중 쉰 팥죽을 초 친 팥죽으로 파는 이야기도 있다.
그리고 돈을 벌지 않더라도 먹을 것을 공짜로 얻으려고 남을 속이는 예도 있는데 여관에 들어가 다른 사람으로 행세하는 이야기가 그 예이다.
김선달이 옆에서 자고 있는 중의 옷을 입고 나가서 개고기를 먹거나, 함께 투숙하는 상제의 옷을 입고 가까운 기생집에 가서 마냥 놀고는, 계산은 다음 날 아침에 하겠다고 한다.
상제로 행세하는 이야기에서는 담보로 상제의 건(巾)을 주고 가기도 한다. 아침이 되면 스님이나 상제(喪制)가 어쩔 수 없이 대신 돈을 낸다. 결국 김선달은 마음껏 먹고 놀지만 남들이 그 대가를 치러주고 망신까지 당했다는 것이다.
이렇듯 그는 인간 사회가 정하는 모든 범주나 개념을 초월하는 인물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인간의 사고체계를 초월하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사고를 꿰뚫는 능력 또한 탁월했다고 한다.
또 한편으로는 그런 능력을 지녔기에 남들로부터 인정을 받기도 하고 나름대로 영웅행세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 그의 이름 김선달 앞에 봉자가 붙은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김선달은 서울 장안을 자주 드나들었다. 한 번은 사람들로 붐비는 장터로 구경을 나섰다. 그런데 장터 한쪽에 닭장(鷄市場)이 서서 온갖 닭들이 우글댔다. 김선달이 닭장 속을 이리저리 살펴보니 유난히 살이 포동포동하고 털에 윤기가 흐르는 닭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김 선달은 시치미를 뚝 떼고 닭 장수에게 물었다. “주인장, 이게 무슨 날짐승이오? 거참 통통한 게 보기 좋구먼” 그 말을 듣자 주인은 눈을 크게 뜨며 속으로 생각했다.
세상에 얼치기가 많다고 하더니만 이런 놈을 두고 하는 말인가 보구나. 닭도 못 알아보는 걸 보니 꽤나 어리석은 놈인가 보다 주인은 김선달이 얼치기인 줄 알고 골려 먹을 셈으로 이렇게 말했다.
“이건 봉(鳳)이요”난데없이 닭을 봉황새라고 속인 것이었다.“뭐, 봉이라고? 오호, 말로만 듣던 봉황새를 여기서 제대로 보게 되었군. 그래, 그 새도 파는 것이오?”“물론이오. 팔지 않을 거면 뭐 하러 장터까지 가지고 나왔겠소?”주인은 이제 제대로 걸려들었구나 하고 생각했다.
“값은 얼마나 받을 생각이오?” “열 냥만 내시오” 닭은 한 냥씩 받고 팔고 있지만, 봉은 닭보다 훨씬 값어치가 가기 때문에 열 곱은 더 내야 한다는 게 주인의 주장이었다.
김 선달은 값을 깎을 생각도 않고 주인이 달라는 대로 열 냥을 고스란히 건네주고 닭을 샀다. 그리고는 곧바로 관가로 달려갔다. 김선달은 관가를 지키고 있는 문지기에게 품에 안고 온 닭을 보여 주며 말했다.
“내가 방금 귀하디귀한 봉황을 구했는데, 이것을 사또에게 바치려고 하오. 그러니 사또께 말씀을 전해 주시오”그리하여 김선달은 닭을 가지고 사또 앞에 나가게 되었다.
하지만 천지개벽을 한들 닭이 봉이 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결국 김선달은 사또를 희롱한 죄로 곤장 열 대를 맞았다. “사또, 억울합니다. 맹세코 저는 죄가 없습니다”꼼짝없이 곤장을 다 맞은 김선달이 눈물을 질금거리며 사또를 향해 하소연을 했다.
“이 놈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구나. 닭을 봉이라고 속인 죄가 얼마나 중죄인데 죄가 없다는 것이냐?”“저는 그저 닭장수가 봉이라고 하기에, 닭 값의 열 배를 치르고 샀을 뿐입니다”그 말을 듣자 사또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뭐라고? 분명 닭장수가 봉이라고 했단 말이냐?” “예, 그렇지 않고서야 제가 왜 닭 값의 열 배나 치렀겠습니까?” “음, 그래....”사또는 제법 영민(英敏)한 사람이어서 상황을 금방 눈치 채고는 닭장수를 불러들이게 했다.
“네가 닭을 봉이라고 속여 열 냥을 받고 판 게 사실이냐?”볼기를 맞아 얼굴에 잔뜩 독이 오른 김선달이 노려보고 있는 터라 거짓말을 할 수도 없는 상황이어서 닭 장수는 사실대로 고(告)하고 말았다.
“그렇다면 이제 어찌하면 좋겠느냐?”사또가 김선달을 보며 말했다.
“저 자가 저를 속여 공매를 열 대씩이나 맞았으니 저도 그 대가는 받아야겠습니다. 제가 닭 값의 열 배를 주고 가짜 봉을 샀듯이 저자에게 제가 맞은 곤장의 열 배인 백 대를 쳐주십시오. 아니면 제가 저 자에게 준 열 냥의 열 배인 백 냥을 지불하라고 판결해 주십시오. 그렇게 하면 모든 것이 공정할 듯싶습니다”
사또가 듣고 보니 그럴듯한 이야기였다. 결국 닭 장수는 거의 살아서 돌아갈 수 없을 것이 분명한 곤장 백 대를 포기하고, 김선달에게 백 냥을 주는 것으로 사건을 마무리 하였다.
뒷날 이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전국 각지에 퍼져 사람들은 김선달의 이름 앞에 ‘봉이’라는 별칭을 붙여서 부르게 되었다. 그리고 이때부터 어리숙하여 무엇이나 빼앗아 먹기 좋은 사람을 농으로 일컬을 때 ‘봉 잡았다’는 표현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혹자는 이 나라 각계각층의 지도자라고 하는 자(者)들은 사람들 앞에서는 평등하고, 공정하며, 정의로운 척하면서 뒤로는 “천하의 사기꾼 봉이 김선달”의 뺨을 치고도 남을 정도라고 하니, 정말 가증스럽기만 하다.
설마!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법과 원칙을 안 지키기야 하겠느냐만, 금번 법무장관 인사청문회에서 만큼은, 사슴을 말이라 하고, 닭을 봉이라 하며, 사실(寫實)을 가짜뉴스라고 하는, 억지와 으름장만은 제발 없기를 바랄 뿐이다!
아직도 국민을 봉이라 생각하는 놈들이 많이 있는 것 같아서 하는 말이다! 명심하고 또 명심하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