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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강용수 전 세종시의회 부의장‘학도병(學徒兵)’
세종매일  |  ygnews@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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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6.17  16:3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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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용수 전 세종시의회 부의장.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우리가 겪은 6.25 동란은 신(神)의 저주라 할 정도로 참혹(慘酷)하였다고 한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에 북한 인민군들의 기습 남침으로 시작된 전쟁은 1953년 7월 27일까지 계속되면서 막대한 인적·물적 피해를 가져 왔었다.

휴전협정을 맺기까지 국군 사망자만도 13만7천899명에 달하고, 전쟁 기간 중 경찰도 3천131명이 전사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북한군의 인명 피해는 약 52만 명에 이르렀고 또한 유엔군과 중공군의 인명피해도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유엔군 사망자만도 3만7천902명이나 되는데, 이 가운데 미군이 3만3천686명으로 대부분이었다. 이 전쟁에 개입해 전세를 바꾼 중공군 사망자는 14만8천600명이라고 한다.

여기에 군인들의 실종자와 포로. 부상자 그리고 민간인들을 모두 포함하면 몇 백만 명이나 된다고 하니, 그 처참(悽慘)했던 광경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렇듯 엄청난 사상자들이 쏟아낸 핏방울로 인하여 이 땅은 붉게 멍들었던 것이다. 남침을 개시한 인민군은 3일 만에 서울을 점령하고 40일 만에 낙동강 이남을 제외한 한반도 전역을 차지하게 되었다.

뺏고 빼앗기는 치열한 전투현장에서 적들의 실탄에 쓰러져가는 병사들의 마지막 순간에는 어머니의 인자하심과 아버지의 근엄하심 그리고 고향산천을 떠올리면서 눈을 감았을 것이다.

본인의 천명이 다했음을 알고 있었기에 누구를 원망하거나 미워하지 아니하며 그렇게 생명을 하이얀 깃털처럼 하늘로 날리우신 임들이 아니었을까!

감히 발로 밟을 수 없는 거룩한 이 땅에서, 그저 눈으로 담기에 숭고할 따름인 맑은 하늘! 가슴 열어 숨을 들여 마시기도 죄송스러운 신선한 공기에 그저 감사하며 살았던 임들이었기에 이에 보답이라도 하듯이 백골과 바스러진 육신들로 이 강토는 진토(塵土)가 되었으리라!

이 땅의 전선마다 국군의 병력은 인민군에 비해 수적으로 불리하여 어쩔 수 없이 교복을 입은 수많은 학생들도 학도병(學徒兵)이라는 이름으로 참전하게 되었다.

어디로 가든지 꼭 살아서 돌아오라는 어머님의 배웅을 받으며 잘 다녀오겠다는 짧디짧은 대답 뒤에 돌아서서 얼마나 많은 눈물을 참아 냈던가! 학도병들은 중학생부터 대학생들로 구성되어 약 2만7700명이 참전하였는데 알려진 사망자만 2천464명이나 된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8월10일 제3사단 후방사령부가 있는 포항여중 운동장에 집결한 71명의 학도병들에게 장총(M1)이 주어지고 실탄은 개인당 250발씩 지급된다.

낙동강 방어선을 사수하기 위해 집결명령을 받은 부대원들은 71명의 학도병들만 남겨두고 최전방인 포항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이팔청춘 16살도 채 되지 않았던 어린 나이의 연약한 어깨에 장총을 짊어지니 얼마나 무거웠을까! 또 얼마나 무서웠을까!

분명한 것은 인민군 첨병대(尖兵隊)가 온다는 신호에 그들을 죽이고자 뛰쳐나간 것은 철없던 영웅심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단 한발의 사격훈련을 시작으로 학도병이라는 신분으로 그저 조국을 위해, 자신들의 가족을 위해, 비 오듯 쏟아지는 총탄에 한 치의 흔들림 없이 방아쇠를 당기며 앞으로의 돌진은 임들이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동료의 주검 앞에서 슬퍼할 겨를도 없이 하루를 버티지 못하고 모두가 전사자의 명부에 오르고 말았다.

그 당시 무기도 충분하지 못한 상태에서 압도적인 화력으로 무장한 북한군을 상대로 포항을 사수하며 전쟁에 큰 공을 세운 학도병들의 실화가 영화(“포화 속으로”)로 제작되어 2010년 6월16일 개봉되었는데, 죽기 하루 전에 쓴 학도병의 슬픈 편지가 세상에 알려지면서 단숨에 3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모으며 화제를 낳기도 하였다.  
 
어머니께 보내는 편지

나는 사람을 죽였습니다!
수류탄이라는 무서운 폭발 무기를 던져 일순간에 죽이고 말았습니다. 어머니, 적은 다리가 떨어져 나가고 팔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아무리 적이지만 그들도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더욱이 같은 언어와 같은 피를 나눈 동족이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하고 무겁습니다. 어머니, 전쟁은 왜 해야 하나요?

이 복잡하고 괴로운 심정을 어머님께 알려드려야, 내 마음이 가라앉을 것 같습니다, 저는 무서운 생각이 듭니다. 지금 내 옆에서는 수 많은 학우들이 죽음을 기다리는 듯 적이 덤벼들 것을 기다리며, 뜨거운 햇볕 아래 엎드려 있습니다.

적병은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는 겨우 71명입니다.

이제 어떻게 될 것인지 생각하면 무섭습니다. 어제 저는 내복을 손수 빨아 입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청결한 내복을 갈아입으며, 왜 수의를 생각해냈는지 모릅니다, 죽은 사람에게 갈아입히는 수의 말입니다.

어머니, 어쩌면 제가 오늘 죽을지 모릅니다. 저 많은 적들이, 그냥 물러갈 것 같지는 않으니까 말입니다.

어머니, 죽음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어머니도 형제들도 못 만난다 생각하니 무서워지는 것 입니다, 하지만 저는 살아가겠습니다! 꼭 살아서 가겠습니다. 어머니 저는 꼭 살아서 다시 어머님 곁으로 가겠습니다.

상추쌈이 먹고 싶습니다. 찬 옹달샘에서 이가 시리도록 차가운 냉수를 한 없이 들이키고 싶습니다.

아! 놈들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어머니 안녕! 안녕!, 아 안녕은 아닙니다. 다시 쓸테니까요. 그럼...

마지막 숨이 멎는 순간에 쥐고 있던 피 묻은 편지가 떨어지면서 어머니께 보내는 편지가 선명하게 나타난다.

살아서 다시 어머님 곁으로 가겠다는 약속은 다들 못 지켰지만 그들은 평화(平和)를 이 땅의 후손들에게 물려주었던 것이다.

혹자는 말한다. 자기가 얻은 전리품(戰利品)을 이웃에게 나누어주는 사람이 영웅(英雄)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들은 학도병으로 혹은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군인으로서 이 나라에 자유민주주의를 지켜주셨으니 영웅은 당연하다 할 것이다.

임들의 고귀한 희생에 머리를 숙인다. 영웅들이여! 고이 잠드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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