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재찬

민주화 25년, 한국의 사회상황은 어떠한가. 고용과 직업 안정성, 소득 불평등, 노인 자살, 가정 폭력, 이혼, 저출산, 우울증…. 어떤 지표를 봐도 오늘의 삶이 너무 위태롭다.

어디 하나 희망적인 데가 없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수많은 중대 사안이 제기만 될 뿐, 책임 있게 해결하지 못한 채 흐지부지되는 일이 반복될 까….

아버지는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모국어 사용에 제약이 많던 때에 문·사·철(文·史·哲)을 겸비하며 꿈을 키웠다.

또 해방을 맞은 후 문단에서 본격적으로 아버지와 더불어 나도 작품을 해왔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국권상실, 해방, 한국전쟁, 남북분단, 독재정권에 이르기까지 한국 현대사의 격동기를 온몸으로 겪으며 언어와 펜으로 살아냈다.

나는 아버지의 막걸리에 담긴 우리 문화와 족보를, 한(恨)의 문학을, 참깨를 볶아 물리적으로 짜내는 동네 방앗간의 기름맛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고소하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사명감에 젖곤 한다.

독자들과 공유하며 활동을 넓혀가고 있다. 소설을 쓰는 건 체력전이다. 내가 힘이 세야 이야기를 장악하고, 내가 만든 세계에 인물을 풀어놓고 조절할 수 있다. 심신이 미약하면 편한 길로 가려 한다. 산을 뚫어야 하는 데 길을 돌아가는 것이다.

힘이 없으면 캐릭터가 제멋대로 돌아다닌다.

소설을 쓰는 건 알래스카에서 꽃삽을 들고 도시를 만드는 것처럼 어렵다. 동토의 땅에서 힘들게 피워 낸 꽃이 독자를 찾아간다. 그리고 다시 새로운 꽃삽을 들고, 새 씨앗을 뿌리기 시작해야 한다. 그래서인지 나는 떠나는 걸 좋아한다.

누구나 경험하듯이 떠나면 떠오르기 마련이니까. 떠날 때마다 나는 작가 알랭 드 보통의 표현처럼 ‘수줍음을 타는 동물(Shy animal)’이 되곤 한다.

나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해가는 나무의 느낌을 좋아했고, 언젠가 회색빛 나무가 부분적으로 노출된 콘크리트색과 어우러지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나는 감히 나 자신을 깨달은 사람이라 말하지 못합니다. 다만, 나는 고독했고, 지금도 그래. 남자라는 어쩔 수 없는 미숙한 부분일거야.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만나고 싶어도 못하고, 머릿속으로만 이상적인 모습을 그리는 소년이야. 세상에 어긋남이 멈추는 순간 굵어지는 눈물이 흘러내리지 않고는 견딜 수 없어.

그 바람, 빛, 가벼움, 망설임…. 나는 음표와 음표 사이의 침묵처럼 존재와 부재 사이의 틈 속에 머무르는 대상에 대해 고민을 던졌어. 뛰어내리는 것들에 대한 비애를 맛보며 더 이상 흘러갈 곳이 없으면 가끔은 엎어지기도 하면서. 모든 태어나는 것들이 겪는 낙하의 무게와 추락의 두려움은 그대로 나에게 전달되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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