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에 살리라…‘서당골’

▲권오엽 충남대 명예교수.
▲권오엽 충남대 명예교수.

예나 지금이나 공부를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런데 가끔가다

“공부가 제일 재미있다”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어, 재수 없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부모들은 왜 그렇게 자식들에게 공부하라고 성화일까. 제일 사랑한다는 자식이 제일 싫어한다는 공부를 강요하는 것은, 공부를 잘 해야 성공하고, 성공해야 남보다 잘 살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잘 사는 것이 무엇이오.”

라고 물으면 쉽게 대답하지 못한다.

남들과 같이 행복하게 사는 일을 할 수 있는 자리에 앉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기야 하겠지만, 자기보다 못한 사람들을 깔보며 떵떵거리는 것을 상상하는 사람이 더 많을 것 같다.

머리가 좋다는 사람들이 좋다는 자리에 앉아서 저지른 죄악이 초래한 지저분한 결과를 볼 때마다 사람들은 그런 생각을 한다.

옛날에는 중국이 천하의 중심이었다.
그래서 신라는 당나라 군사를 불러다 고구려와 백제를 멸망시키고 자기들끼리만 호의호식했고, 고려왕조는 원나라를 믿고 마음대로 백성들을 괴롭히더니, 조선은 명나라를 섬기는 사대를 최고의 영광으로 여겼다.

그러다 조선이 일본에 망하자, 일본의 비위를 맞추며 출세하려는 친일파들이 나타나더니, 현재는 친일파의 후손이 좋은 자리에 앉아 민족의 긍지에 먹칠을 한다. 모두 머리가 좋다는 사람들이다.

옛날에는 중국의 문화가 가장 뛰어났고 국력도 강하여, 주변국들은 중국에 조공을 바쳐야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군대를 이끌고 나타나 왕을 바꿔버리고,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지 멋대로 약탈했다.

그래서 주변국들은 어떻게든 중국의 비위를 맞춰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한문을 잘 읽고 잘 써야 했다. 그러다 한문에 능해야 출세할 수 있고, 출세를 해야 남들보다 잘 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부모들은 자식에게 공부하라고 극성을 떠는 것이다. 부모들은 공부를 잘 해야 남을 깔볼 수 있는 벼슬을 할 수 있고, 벼슬을 해야 법을 무시하고 나쁜 짓을 해대도 벌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오죽하면

“억울하면 출세하라.”

라는 말이 생겼겠는가. 그런 관념이 옛날만이 아니라 지금도 유행하는 것은 머리가 좋아 출세한 자들이 저지른 적폐다.

개인의 이익만을 위해 일하는 것이 죄라는 것을 잘 아는 사람들도, 자식이 어려운 시험을 통과하여, 많은 사람들이 가고 싶은 자리를 차지하면, 공익보다 사익을 먼저 챙기길 원한단다.

자식의 부정을 부모가 지시하는 셈이다.

고구려는 태학과 경당이라는 학교를 만들고 머리 좋은 아이들을 교육시켜 중국에 버금가는 나라를 만들려 했다. 백제에는 오경박사 의박사 역박사 등이 존재하여 한학의 수준이 높았다.

그래서 아직기와 왕인을 일본에 파견하여 한문을 일러주기도 했다. 삼국에서 가장 늦었다는 신라가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킨 것도 화랑도와 같은 교육기관을 설치했기 때문이다.

통일신라는 국학, 고려는 국자감, 조선은 성균관 같은 대표적인 교육기관을 두었는데, 그런 교육기관 이외에도 지역 관청이나 개인이 세운 서당과 같은 글방도 많았다.

부용산 자락에도 글방이 있어서 서당골이라는 마을이 있었다.

이 마을에 태어나는 아이들은 부용산의 정기를 받아서 그런지 똘똘하고 영리했다.
게다가 경문이라는 박사가 글방을 차리고 학동들을 가르치면서 부터는, 인재를 선발하는 시험이 있을 때마다 많은 학동들이 뽑혔다.

장원을 차지하는 일도 많아, 멀리서 유학 오는 학동이 늘어, 글 읽는 소리가 마을에 가득했다.

오방이라는 학동이 있었다. 공부를 잘하는데 부용봉에 올라 별자리를 보는 것을 남달리 좋아했다. 특히 달이 뜨지 않은 어두운 밤에는 빼놓지 않고 올라 다녔다.

그러던 어느날 밤이었다. 총총한 별들을 보고 있는데, 북두칠성 가까이서 반짝이던 별 하나가 하늘거리며 내려오지 않는가. 신기하여 달려가 보았더니 별에서 내린 소녀 하나가 걸어오면서

“나는 별나라 공주란다.”

자기를 소개하더니 오방의 손을 잡고 산자락을 내려가 강변을 거닐며, 별나라 이야기를 들려준다.

 효성이 지극한 칠 형제가 북두칠성이 되어 하늘에 산다는 이야기. 칠석날에야 만날 수 있다는 견우직녀 이야기, 옥황상제가 은하수에서 자주 찬치를 연다는 이야기 등을 들려주다 새벽에 승천했다. 그날 이후로 오방은 별을 보면 천기를 알 수 있게 되었다.

“스승님 내일은 비가 오니 모레 떠나세요.”

위례성에 간다는 스승에게 하루 늦출 것을 권했다. 그러나 스승은 그 말을 믿지 않고 길을 떠났으나 갑자기 쏟아지는 비로 되돌아 왔다. 그리고 오방이 택한 날에 떠났다.

그 이후로 사람들은 중요한 일이 있을 때는 오방에게 물었고, 소문이 위례성까지 퍼져,

“역법이 무엇인고.”

위례성의 임금님이 오방을 불러, 역법의 뜻을 물었다.

하늘에는 해와 달과 별과 같은 일원성신이 쉬지 않고 움직입니다. 그런 움직임을 잘 살피면 하늘의 뜻은 물론 천제의 생각도 알 수 있습니다. 천제의 뜻을 알고 제천의례를 거행하면 천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오방이 주저하는 일 없이, 하늘의 뜻을 파악하고 하늘의 뜻에 따르면 천명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을 했다.
천제의 뜻에 따라야 나라가 잘 되고 백성들도 행복하다는 것이다.

천명이 무엇인가. 천제가 천하를 다스리는 통치자를 지명하는 일인데, 위례성의 임금님이 그런 천명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오방이 알기 쉽게 설명한 것이다.

“참으로 똑똑하구나. 네가 살던 곳을 서당골로 불러야 겠구나.”

천명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들은 임금님이 크게 기뻐하며 오방이 수학한 글방에 큰상을 내렸다. 이후로 사람들은 부용골을 서당골이라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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