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재찬

“한국의 철학가 이자, 사상가인 니 아버지의 작품세계를 두고 소외, 부조리, 권태, 공허, 퇴폐, 역사의 포악성, 변화의 비속함, 고통으로서의 의식, 질병으로서의 이성아라는 근대적 주제들에 대한 철학적 로멘스라고 불렀제.”
“음.”
“이 멋진 수사를 줄여 말하자면 뭐꼬?”
“아버지는 염세주의자라는 뜻일 거야.”

기실 아버지의 도저한 염세주의, 때때로 모순을 드러내면서도 결국은 회의주의를 거쳐서 허무주의에 이르고야 마는 그 염세주의는 아버지의 글 곳곳에서 드러난다.

아버지의 세상은 태어나는 것 자체가 골칫거리의 시작이었고 그래서 늘 절망의 꼭대기에서 살았다고 털어놓았다.

“20대의 아버지가 염세주의에 허우적대는 걸 보신 할머니가 ‘네가 이렇게 불행해 할 줄 알았다면 너를 낙태했을 텐데”라고 말씀하셨대.”

할머니는 여성이고 어머니여서 울화를 온몸으로 삭여야만 하는 일이 많았을 것이다. 아버지는 할머니를 죽음으로 내몬 울화를 ‘뼛속에 심은 깨어나’ 피는 꽃이라고 부른다. 울화(鬱火)는 우는 꽃(울‘花’)이다. 부르르 몸이 떨리는 건 그 꽃이 울기 때문이다.

아버지도 자신의 떨리는 몸과 뻐근한 가슴에서 할머니가 겪은 울화를 느끼고 있다. 하지만 아버지는 내면의 상처를 꽃으로 만들어 즐길 수 있는 여유를 준다.

아버지는 그 꽃을 꺾거나 제거하는 일이 아니라 꽃에게 숨길을 열러주어 아름답게 피어나게 하는 일이다. 그러나 생은 나의 것이어서 언제까지나 어머니, 아버지 탓만 하고 살 수는 없는 일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탓하고 싶은 그것이 바로 나를 낳은 부모였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래야 내 안의 상처를 돌보고 살 수 있고, 그래야 ‘나를 키운 것은 팔 할이 바람이었다’는 고백에 힘이 붙는다.
 
그러나 한편으로 아버지는 그 염세주의의 끝 간데를 상품화하셨다.

아버지의 글은 여러 언어로 번역돼 지금도 수많은 독자를 매혹한다.
그 독자들 가운데 아버지만한 염세주의자는 많지 않겠지만, 그들 다수는 아버지의 염세주의를 훈장처럼 달고 다니거나 아이스크림처럼 소비한다.

아버지는 삶의 무의미와 비참에 대해서 말했어. 그렇지만 그 무의미와 비참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했어. 외려 삶이 무의미하기 때문에 산다고까지 말했어. 아버지의 절망이 근본적이고 절대적이었기 때문인지도 몰라. 폭력을 통해서라도 세상을 바꿀 수 있었다면 그 쪽에 아버지의 몸을 걸 수도 있었겠지만, 아버지께는 그런 가능성조차 보이지 않았을 것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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