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에 살리라… ‘염라대왕과 금강’

▲권오엽 충남대 명예교수.
▲권오엽 충남대 명예교수.

신이나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더 오래 살고 싶어, 별의별 일을 다 해도 언젠가는 죽게 되는데, 죽어서 저승에 가면, 반드시 염라대왕을 만난다. 염라대왕은 그들이 생전에 한 일을 살핀 다음에, 지옥행과 극락행을 판단하는데, 좋은 일을 한 자들보다 나쁜 짓을 한 자들이 훨씬 많았다.

“해도 너무 했군, 지옥행,”

나쁜 업보 때문에 지옥으로 보내는 일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염라대왕도 슬쩍 걱정이 되었다. 금이야 옥이야 하는 자기 아들도 언젠가는 죽어서 옥황상제의 심판을 받게 될 텐데, 아무래도 지옥에 떨어질 것 같았다. 그래서 아들 염자를 불러

“세상살이를 해보거라.”

싫다고 때를 쓰는 염자를 세상에 내려 보냈다. 떠밀려 세상에 내려온 염자는 사흘도 넘기지 못하고 길가에 쓰러지고 말았다. 일일이 챙겨주는 시중이 없었기 때문이다.

“멀쩡한 놈이 쓰러져 있네.”

오가는 사람들이 쓰러진 염자를 보고 지나쳐, 시간이 지날수록 배가 고파 움직일 수도 없었다. 그때였다. 술병을 든 주선이 비틀거리며 다가오더니 옆에 쓰러지고 만다.

“푸우, 푸우”

쓰러져 코까지 고는데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크게 벌린 입에서는 고약하기 그지없는 냄새가 퍼지는데, 허기져 쓰러진 염자에게는 더 없이 향기로웠다. 구수하기까지 했다. 그 향기에 정신이 든 염자가 더듬거리다 잡힌 술병을 입에 대고 들이키더니, 곧장 잠이 들었다.

“아니 누가 내 술을 마셨단 말인가.”

코를 골던 주선이 눈을 뜨고 술병이 빈 것을 보자, 화를 내며 두리번거리다, 술병을 안고 잠이 든 염자를 발견했다. 일어나 발로 걷어차려 했으나 염자의 얼굴이 평화스럽기 그지없었다. 주선의 화가 저절로 풀어질 정도로 평화스러운 표정이었다. 그것을 본 주선은 모처럼 술맛을 아는 젊은이를 만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덥석 들쳐 업고 집으로 달렸다. 그리고

산천의 열매를 담가서 우린 술,
들녘의 곡물을 삭혀서 빚은 술,

이술 저술, 맑은 술 탁한 술을 꺼내다 권했고, 염자는 주는 대로 받아 마시며

욕심쟁이만 사는 줄 알았는데
친절하고 착한 사람도 있네요.

세상에 내려와 처음으로 맛보는 인심에 취하여 술을 마시는데,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 않는다. 주선도 모처럼 좋은 상대를 만났다며 마셔대다, 보름이 지나서야 염자를 돌려보냈다.

이후로도 주선은 쉬는 날 없이 술을 마셨다. 그러다 술이 떨어지면 밖에 나가는데, 주선이 거리에 나가면 서로 모시려 했다, 그리고 집으로 모시면 있는 술 없는 술을 꺼내다 권한다.

그러다 주선의 얼굴에 취기가 돌면, 서둘러 붓과 종이를 내놓고 벼루에 먹을 갈며

“돼지 한 마리 그려주세요.”

돼지를 그려 달라며 애원하고, 취기가 오른 주선이 붓을 들어 돼지를 그린다.

그것을 광에 붙이면 만석꾼이 되고, 글방에 붙이면 자식이 과거에 급제한단다. 그것뿐인가. 안방에 붙이면 며느리가 옥동자를 낳고 출가한 딸도 애를 가진단다.

그래서 주선을 마음껏 술을 즐기며 살았는데, 죽음은 피할 수 없어, 백 살이 되는 사흘 전에, 저승사자의 안내로 염라대왕을 만났다.

“평생 술만 드셨구먼. 나쁜 일은 아니지만 좋은 일도 아니라, 어디로 보내야 할지?”

극락행과 지옥행을 판단하기 어렵다며, 장부를 살피던 염라대왕이 크게 놀라며

“당신이 내 아들 염자에게 친절을 베풀었다는 주선이란 말이오!”

반갑다고 소리치더니, 금세 정색하며
 
“은혜는 은혜고 법은 법이다.”

사적인 감정에 흔들리지 않겠다는 듯 몸을 추슬렀다.

그리고 주선의 일생을 기록한 장부를 다시 살피더니, 아들을 도와준 것은 고마운 일이나, 술을 즐기느라 가족을 돌보지 않은 죄가 커, 지옥으로 보내야 한다는 판단을 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가. 판단을 내리기 전에 반드시 한 모금 마셔야 하는 판단주가 없지 않은가. 염라대왕이 놀라서 둘러보는데, 언제 어떻게 가져갔는지, 주선이 한쪽 구석에 앉아서 판단주를 입에 대고 마시지 않는가.

“저승에 두면 술이 남아나지 않겠다.”

그대로 두었다가는 자신이 마실 술도 없어지겠다는 생각이 들어, 곧장 이승으로 돌려보냈다. 그리고 장부의 ‘99세’에 먹칠을 하고, 옆에 ‘영생’이라고 쓴 다음에 빨간 도장을 찍었다.

죽는 일 없이 영원히 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국사봉으로 내려온 주선은, 맑은 물이 술처럼 흐르는 금강변에 살겠다며, 산줄기를 타고 내려가, 강물이 휘돌아 흐르는 봉우리에 앉아 시를 읊었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흐르는 금강을 바라보며 시를 읊었다. 그래서 지금도 공주보의 흔적이 내려다보이는 정자에 오르면

“꽃 피자 술이 익고 달 밝자 벗이 왔네.

이 같이 좋을 때 어찌 거저 보내겠는가. 주선이 술잔을 기울이며 읊었다는 노랫가락이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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