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역설적으로 이상주의자였기 때문에 독재자 앞에서도 추상같이 매서울 수 있었다.

아버지는 강연도 하고, 대학에서 제자들 가르치고, 한때 정치권에서 어디 나와 달라, 맡아 달라 하는데 인연이 있으니 거절하기 쉽지 아니했다.

‘요즘 니체전집 마무리를 하는 게 있으니 끝나기 전까지는 힘들다고 하면, 그런 제의에서 빠져나오기 수월하다’고 말했다.

‘정치권의 요구를 거절한 이유는 죽을 때 글쟁이로 기억되고 싶어서다. 교수도, 시민운동가도 했고, 이런저런 보직도 맡아봤는데, 고통스럽지만 글쟁이로 죽는 게 가장 인생을 잘 산 것’이라고 했다.

스스로 업적을 드러내지 않은 탓에 니체연구의 대가이자, 창시자라는 위치 역시 오랫동안 공인받지 못했다. 우리는 왜 권력에 자발적으로 복종하는가. 스스로 자유인이기를 포기하고 노예임을 자처할까.

아버지는 절대 권력의 정당성에 의문을 품는다.

아버지가 니체를 연구하기 시작한 동기다. 사안의 민감성 때문에 민주화 이후, 저항세력에 의해 한참 후에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니체 전집은 역사책에서 누락된 몽상적 철인 니체의 일대기를 조명하는 평전이다. 소년 시절부터 최후의 공상가에 이르기까지 모두 17개의 장으로 이뤄져 있다.

아버지가 전국적인 유명인사로 떠올랐던 때는 민주화 항쟁이었다. 당시의 아버지는 민주항쟁에 잠깐 관여한 뒤 니체 독립연구소를 차렸으며, 새로운 전환을 모색하던 차였다.

하지만 정작 아버지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한 신문사의 기사였다.

어느 무더운 여름날 식당에서 진행된 한 편의 인터뷰기사는 매우 꼼꼼하게, 그 니체의 신체적 특징을 묘사하면서 시작한다.

“두 눈은 깊이 들어가 있고 색이 희미했다. 키는 180센티미터가 넘는데 몸무게가 63킬로그램 밖에 되지 않으니 아주 훌쭉하다. 두 손은 엄청 크다. 특히 엄지가 유달리 크다…”

책은 니체가 주고받은 편지, 기록, 증언, 출판물과 유물 등을 샅샅이 뒤져 그의 내면과 현실을 촘촘하게 직조하고 있다. 아버지의 삶은 아이디어와 환상 사이의 투쟁이었다. 니체 또한 아버지가 보여준 이상주의자의 열정과 처세의 서투름과도 같이 극적인 흥망성쇠를 기록했다.

‘이미지와 현실을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했던 니체의 상상력이 사실은 실제의 미래였다’고 결론을 내리면서, 오늘날 반문화의 영웅, 뉴에이지의 성자로 니체가 미치는 영향력까지 서술했다.

차가움과 뜨거움을 동시에 간직했던 아버지가 남긴 글은, 대다수가 절대 권력에 굴종할 때 이를 거부하고 인간의 존엄을 지키고자 노력한 사람들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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