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앞으로 다가올 사랑이 중요해요.”
“이 나이에 내게 사랑이 올까, 안 올거 같다.”
“…”

아버지에 대한 간절함이 너무 강하다 보니 오히려 위로의 표현이 안 되었다.

“아버지, 간절하면 이루어질 거예요.”

사랑은, 그리고 사랑하는 관계는 애무와 비교될 수 있다.
애무는 당신 손으로 사랑하는 이를 어루만지는 거다. 그런데 애무와 폭력의 경계는 매우 미미하다는 거다. 얄팍하다. 당신은 무심코 상대를 아프게 할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당신의 아버지와, 어머니와, 북에 두고 온 처자식을 사랑했다.
그리고 나를 낳아준 어머니를, 당신의 아들에게 사랑이 많은 걸 품었다. 이 의미는 안녕을 원하고 자기 삶 속에서 평안하기를 바란다는 거다.

어떤 조건이 되면 행복할지 생각하며 애쓴다.

아버지는 행복해지는 조건에 대해 다른 생각을 가질지 모른다. 그럼 나의 사랑은 폭력이 된다. 바라지 않는 것을 강요하게 되니까… 아버지와 나는 이런 상황에서 잘 분리되지 못했다.

어떻게 벗어 날 수 있을까? 아버지만의 레시피가 있나? 나는 깊이 아버지를 사랑한다. 하지만, 다툰다.

생애 몇 해 전, 아버지와 크게 다퉜다. 내 이름도, 직업도, 외모도, 심지어 내 감정까지도, ‘나’가 아니라 ‘내 것’일 뿐이라는 지적에… 그동안 소설 때문에 웃고 울던 나는 허탈하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자유를 느끼기도 했다.

소설을 잘 쓰기 위해 십 수년간 4시간만 자는 글쓰기 끝에 큰 인기를 누리는 인기 작가가 됐고, 그것이 나인 줄 알고 살아왔다. 어떤 날은 한꺼번에 쏟아지는 세상의 비난과 야유 때문에 억울하고 감당할 수 없어서 많이 울기도 했다.

아버지의 표현대로라면 칭찬도, 비난도, 다 딱지일 뿐인데… 칭찬에 한없이 즐겁다가 비난에는 한없이 분노하는 일들이 얼마나 어리석은가?

아버지는 누구인가 참구(參究)해왔다. 묻고, 물을수록 실체가 없었다.

아버지는 과거에 내 판단으로 만들어진 이미지들의 합이었고 내제가 만든 개념이었다. 그걸 알고 나서 관계가 달라지긴 했지만, 현실에서는 또 매일을 새날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사로잡힌다.

앞으로는 어둠 속의 것, 보이지는 않지만 만질 수 있는 것들을 찾아보고 싶다. 없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너무 가까이 있고, 그게 우리 인생을 좌지우지할 수도 있다. 

“소설가는 허구로 창작하는 게 일이지만 책임을 가져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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