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과 인자(仁者)’

▲강용수 전 세종시의회 부의장.
▲강용수 전 세종시의회 부의장.

이스라엘 왕국의 제3대 왕이며 ‘지혜의 왕’으로 잘 알려진 솔로몬의 이야기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부왕인 다윗과 밧세바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여러 형제들과 왕권 다툼에서 이기고 다윗왕의 뒤를 이어 왕좌에 오르게 되었다. 특히 그는 왕권을 강화하며 솔로몬의 전성시대(全盛時代)를 열어 나갔다.

어느 날 솔로몬 왕에게 두 여자가 한 아기를 데리고 왔다.

한 여자가 말하기를 우리 둘이 한집에서 사는데 내가 해산한지 사흘 만에 저 여자도 해산하였고 우리 둘 외에는 집에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밤에 저 여자가 그의 아들위에 누우므로 그의 아들이 죽으니 그가 밤중에 일어나서 내가 잠든 사이에 내 아들을 가져다가 자기의 품에 누이고 자기의 죽은 아들을 내 품에 뉘었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또, 다른 여자는 산 것은 내 아들이요, 죽은 것은 네 아들이라고 역정(逆情)을 내고 있었다.

요즘 같으면 간단히 유전자 검사를 하면 될 것이다. 그러나 솔로몬이 살던 시절엔 그렇게 판단할 과학적 방법은 전혀 없었다.

이때, 솔로몬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칼을 가져오라고 했다.

그리고 “아이를 둘로 잘라서 나누어주겠노라.”고 한다. 솔로몬 왕이 신하를 시켜 아기를 한 여인의 품에서 빼앗아 칼을 내려치려고 할때에 한 여인이 황급히 소리를 질렀다.

“그 아이는 나의 아이가 아닙니다. 왕이시여! 저 여인에게 돌려주십시오.”라고 사정을 하는데 또 다른 여자는 그렇게라도 나누어 달라고 억지를 부리고 있었다.

솔로몬 왕은 빙그레 웃으면서 ‘이 아이의 참 어머니는 바로 자기 아기가 아니라고 하는 저 여인이다. 저 여인에게 아기를 돌려주라.’고 판결을 내렸던 전설(傳說)은 실로 유명하기만 하다.

이 재판과정을 프랑스 최고의 푸생(1594~1665)이란 화가가 17세기쯤 화폭에 담았는데, 그 작품이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그의 전기를 쓴 역사학자 벨로리가 전하는 바에 의하면 푸생 본인도 생전에 이 그림을 상당히 좋아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 그림을 보러온 관람객들이 끊이질 않는다고 하니 그 작품에 솔로몬의 지혜가 그대로 담겨 있는 듯하다.

우리가 이 장면을 보고 감탄하게 되는 것은 누가 아기의 진짜 어머니인가 하는 사건의 진실보다는,그 진실을 밝혀내기 위해 솔로몬이 전개하는 논리 정연한 사고(思考)과정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즉, 진리를 생각하든 도덕을 생각하든 서양인이든 동양인이든, 생각이나 판단이 믿을만한 증거에 의하여 논리적으로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지극히 합리적이라는 말이 아니겠는가!

그렇다. 솔로몬의 시대에는 지혜가 우상이었다면 요즘은 어진 자에게는 적이 없다는 ‘인자무적(仁者無敵)’이란 고사성어가 우리들에게 큰 감동을 주고 있다.

어느 작은 시골마을의 한 노인이 숨을 거두면서 세 아들에게 유언(遺言)을 했다고 한다.

“너희들이 알다시피 내가 가지고 있는 재산은 소(牛) 17마리가 전부인데 큰아들은 반을, 둘째 아들은 3분의 1을, 막내아들은 9분의 1을 나누어 갖고 잘 키우도록 하라”는 것이었다.

형제들은 아버지 장례를 치르고 유산으로 남긴 소(牛) 17마리를 아버지의 유언대로 나누려 했다. 그런데 유언대로 나누기가 곤란했던 것이다.

큰아들의 몫인 절반은 17÷2=8.5로 8마리 반이니 잘 키우라는 소(牛) 한 마리를 반으로 잘라 죽여야 했고, 둘째 아들은 17÷3=5.666...마리이고, 셋째 아들 역시도 17÷9=1.888...마리로, 계산 자체가 안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 아들은 궁리 끝에 인자(仁者)를 찾아뵙고 도움을 청하게 되었다. 이들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난 후 인자는 자신의 소 한 마리를 더 보태어 (17+1=18마리), 아버지의 유언대로 소(牛)를 나누어 주었다.

즉, 큰 아들 몫은 절반이니 18마리 중 9마리를, 둘째 아들은 3분의1인 (18÷3) 6마리를 주었고, 막내아들은 9분의 1인 (18÷9) 2마리를 갖게 해 주었다. 이렇게 유언대로 나누어 (9+6+2=17마리) 주었는데 한마리가 남았던 것이다.

그리고 “남은 1마리는 원래 주인인 내가 가져간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인자(仁者)의 해결 방법을 본 세 아들은 무릎을 치고 말았다.

아버지의 유언을 받들게 되었고, 아버지가 유언한 자기 몫보다 더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인자께서는 소(牛) 한 마리를 보태서 유언보다 더 많이 나누어 주었고, 그 인자는 다시 한 마리를 가져간 이 놀라운 산술 법이야말로, 자기 몫 챙기기에 급급한 현대인들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자신에게 아무런 손해 없이 세 아들 모두를 만족(滿足)스럽게 해 주고 행복(幸福)하게 만든 인자(仁者)를 보고는 누구나 감탄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이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은 이런 지혜를 가진 봉황(鳳凰)들이 아닐까 싶다. 그러고 보니 지혜로운 자(者)와 어진 자(者)는 절대로 남의 탓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요즘은 사람들마다 자기 탓은 없고 남의 탓만 얘기한다고 하니 즉. 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하면 불륜이라는 말일 것이다.

자기가 할 때는 정당한 것처럼 큰소리치다가 남이 하면 전례 따지고 법을 들춰가면서 볼멘소리를 하는 놈들!

그리고 법과 원칙을 지킬 생각보다는 먼저 요리조리 빠져나갈 구멍 먼저 찾는 놈들이 많다는 말이 아닐까!

그러고 보니 여우처럼 교활한 놈들이 많다는 말일 것이다.

그래서 일까! 혹자는 말하기를 “두 가지 마음을 가진 자들 때문에 인격이 무너지고, 조직이 무너지고, 사회가 무너져 가고 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솔로몬과 인자의 가면(假面)을 쓰고 다니는 놈(者)들이 많다는 말일 것이다.
 
참! 묘한 세상이다. 아무튼 지혜와 어진 자들이 많이 사는 행복한 나라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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