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에 살리라… ‘조천의 제비’

▲권오엽 충남대 명예교수
▲권오엽 충남대 명예교수

원래 인간들은 새를, 자신들의 소원을 천신에게 전하고, 또 신의 뜻을 인간에게 전하는 영물로 여겼다.

그래서 새들이 날아오면 반기고 날아가면 다시 돌아오라며 손을 흔들었다. 그러면서 제비가 물어다 준 박씨로 행복해진 흥부가 되는 꿈을 꾸기도 한다.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단군의 아버지 환웅만이 아니라 고구려와 백제를 세운 부여씨도 하늘에서 내려왔고, 신라의 박혁거세도 말을 타고 하늘에서 내려 왔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늘을 마음대로 날아다니는 새들을 옥황상제의 사자로 보고,

“나의 소원을 하늘에 전해주세요.”

하늘을 나는 새를 향해 빈다. 그 소원이 간절하면, 옥황상제가 소원을 들어 준다.

흥부가 행복해진 것도, 흥부가 착하다는 것을 제비기 옥황상제에게 알려주었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새를 그린 깃발을 휘두르기도 하고, 솟대를 세우기도 한다.

그처럼 소원이 이루어지게 하는 새들이 모여들기 때문에 조천이라고 부르는 내가 조치원을 휘감으며 흐르기 때문에, 조치원에는 강남에 갔던 제비가 돌아오면서 복을 물어오고, 북쪽으로 날아갔던 기러기도 조치원 사람들이 원하는 행복을 날개에 실어온다. 

조천은 연기군의 전의면 금사리에서 시작하여, 달전리 양곡리 영당리 신흥리 원성리를 지나, 전의역 부근에서 180도 회전하여, 전동면 송성리까지 흐르다, 자루 모양의 곡선을 그리며 솟구쳐 미곡리 청람리 청송리 석곡리 노장리 보덕리 심중리를 거치며, 조치원과 오송을 경계 짓는다.

그리고 번암리 일대에서 미호천에 합류하는데, 전체가 동산을 그리며 흐른다.

조천이 미호천과 합류하여 흐르다 고복에서 시작된 월하천과 다시 합류하는 곳까지를 ‘동진’이라 하는데, 고기들이 때지어 헤엄치는 강바닥에는 조개들의 옹기종기 모여 살고, 사람들은 그것을 잡으려고 횃불을 들고 모여드는데, 얼마나 장관인지
 
“동진어화를 보러가세.”

사람들이 몰려가 구경하고, 구경하고는 몰려다니며 소문낸다.

바로 그곳에 오두막을 짓고 사는 어머니와 소년이 있었다. 양반들끼리 싸우는 난리 때, 아버지는 역적으로 몰려서 죽었단다. 소년 박문은 아버지의 누명을 벗기겠다며 공부를 하면서도 조개를 캐는 어머니를 틈틈이 도왔다. 그런 고달픔 속에서도 동진어화를 볼 때마다

“저렇게 화려했던 가문의 명예를 되찾고 말겠다.”

가문의 영예를 회복하겠다는 의지를 굳히며 열심히 공부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어머니를 도와 조개를 캐다 돌아왔는데, 낮은 처마 밑에서 날개를 다친 제비 한 마리기 펄떡거리고 있었다. 강남으로 날아가다 독수리의 공격이라도 당한 듯, 날개가 빨갛게 물들었다.

그 제비를 보는 순간, 사약을 마신 아버지가 몸을 떨다 꼬꾸라지시던 모습이 떠올라, 제비를 정성껏 치료하며 겨울내내 돌봐주었다. 그리고 새싹이 움트는 봄이 되자
 
“창공을 날아 보거라.”

얼마나 답답했겠느냐며 하늘로 날려 보냈다. 제비는 지붕 위를 선회하다 어디론가 날아갔다. 그리고 3년이 지난해에, 나라에서 특별 과거를 시행한다는 소문이 들렸다. 양반이면 아무나 응시할 수 있는 과거라 했다.

박문도 과거길에 올랐다. 말을 타거나 가마를 타고 가는 자도 있었으나, 박문은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며 걸어갔다. 조치원을 떠나 천안과 수원을 지났을 때의 일이다. 홀로 남은 어머니 생각을 하다 일행을 잃고 말았다. 당황한 박문이 지름길을 찾겠다며 산속으로 들어섰으나, 그만 길을 잃고 말았다.

아름드리나무가 우거진 산속은 대낮인데도 어두컴컴했다. 가까이서 늑대의 울음소리가 들리는데 산 너머에서는 호랑이가 으르렁거리는 소리까지 들린다.

“과거도 못보고 호랑이에게 물려 죽는 것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길을 찾아 헤맸으나 몸만 지칠 뿐 길은 나타나지 않았다. 바로 그때였다. 어디선가 제비 한 마리가 나타나

“지지배배”

반갑게 지저귀는데, 귀에 익었다. 그것만이 아니다. 펄럭이는 날갯죽지의 흉터도 눈에 익었다.

“아니, 너는 바로, 그 제비가 아니냐.”

소년이 반가워 소리치자. 제비도 반갑다는 듯, 잠시 소년의 어깨에 내려 앉아, 서너 번 운 다음에 천천히 날기 시작했고, 박문은 그 뒤를 따라 산등성이를 넘었더니, 잃어버렸던 일행이 저쪽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박문이 일행과 합류하여 걷는 것을 본 제비가 하늘로 날아갔고, 박문은 일행과 함께 한양에 도착하여, 무사히 과거를 치뤘다.
운 좋게도 시험문제가 박문이 좋아하는 ‘새’를 읊는 문제였기 때문에,

새들이 입에 물어온 행복이 조천에서 더 커지면 
새들이 입에 물고 창공을 날며 사방에 퍼트린다

새야 말로 행복을 전달하는 영물이라는 시를 지어서 제출했다.

그것을 읽어본 시험관들의 두 눈이 동그래지는 것으로 보아, 좋은 문장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번 과거는 어두운 밤에 길을 찾는 시험도 있다며 지도를 나누어 주었다.

수험자들은 지도에 표시된 곳을 들렸다 돌아와야 하는데, 산에 익숙하지 않은 박문은 넘어지고 구르다 어둠 속에서 길을 잃고 말았다. 이번에도 서두르기만 했을 뿐 길을 찾지 못하여 쩔쩔매고 있는데

“당신이 제비를 보살펴 주었다는 박문이오?”

어둠 속에서 나타난 올빼미가 박문의 머리에 내려앉는다. 그리고 두 눈으로 길을 밝히고 갈림길이 나올 때마다 좌우의 귀를 가볍게 쪼았다.

덕택에 몇 번 넘어지기는 했으나, 올빼미가 일러주는 대로 길을 택하여 어려움 없이, 지도에 그려진 곳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돌아왔는데, 두 번째로 돌아온 자와는 차이가 컸다.

“문장만이 아니라 지리도 밝은 박문이 장원이다.”

그렇게 장원급제한 박문은 머리에 어사화를 꽂고 고향에 이르러
 
천지를 오가는 새들이 모여드는 조천
산하의 행복을 문 새가 날아드는 조천
동진어화가 은하수처럼 반짝이는 조천

조천을 노래한 후에, 어머니가 기다리시는 오두막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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