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에 살리라… ‘조치원의 새’

▲권오엽 충남대 명예교수
▲권오엽 충남대 명예교수

옛날에 하늘과 땅이 생기고, 환인이 하늘나라를 다스릴 때의 일이다. 환인의 아들 환웅은 하늘나라보다 천하에 관심이 많아, 천하에 모두가 잘 사는 세상을 열겠다며, 3천명의 부하를 거느리고 태백산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신단수 아래에 신시라는 장을 열었다.
그 소문을 들은 신과 인간들이 모여들었다.

그리고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신시에 모여 상의하여 해결했다.
그러다 보니 신시는 기쁜 일이나 슬픈 일이 생기면 신과 인간들이 그곳에 모여, 같이 걱정하고 기뻐하면서, 필요한 물건을 주고받았다. 그 뒤로 방방곡곡에 장터가 생기고 그곳에서 물물을 교환하며 살았다.

신시를 훗날에는 장, 장시, 시상 등으로 불렀는데, 그곳에 가면 좋은 일이 있을 것 같고 원하는 것을 구할 수 있다며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사통팔달하는 천하의 길지라는 조치원에도 그런 장터가 생기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

신라 시대에는 최치원이 이곳에서 장을 열고 상업을 장려했기 때문에, 최치원의 이름을 따서 조치원으로 부르게 되었다는 말도 있는데, 사실 여부를 떠나서, 일찍부터 장이 설 수 있을 좋은 땅이었다는 것이다.

백제는 이곳을 두잉지현이라 했으나, 백제를 멸망시킨 신라는 연기현으로 불렀는데, 조선 말기인 1895년에 연기군으로 개명했다.

그렇게 지명이 바뀌는 동안에도 조치원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 길손이 묵는 주막이 생겨 주막촌으로 불렸다. 지금도 조치원장에 가면 그때 모여서 물건을 사고파는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동국여지승람’이라는 책에 의하면 이미 15세기에, 이곳에는 물건을 사고파는 장과 나라의 살림을 맡은 관리들이 오가며 머무는 원(院), 지금으로 말하자면 국립여관이 생겼다 한다.

환웅이 땅에 내려와 신시라는 장을 열었다는 것과, 조치원에 일찍부터 장이 서고 장을 찾는 길손들이 묵어가는 여관이 생겼다는 것은 조치원이 사람과 물건이 모여드는 곳이고 필요한 것을 구할 수 있는 곳이었다는 것이다.

조치원은 사람만이 아니라 새들도 모여드는 곳이다.
새들이 얼마나 모여들었으면, 두잉지현이라는 지명을, 새들이 모여든다는 것을 의미하는 ‘연’자를 포함하는 연기군으로 개명했겠는가. 그래서 조치원은 새(鳥)들이 휴식(院)하기 위해 모여드는(致) 낙원으로 풀기도 한다.

전의면에서 발원하여 전동면을 거쳐 미호천으로 흘러들며, 조치원과 오송의 경계를 이루는 하천이 있는데, 이를 ‘새내’로 부르고 조천(鳥川)으로 표기했다.

새들이 날아와 서식하는 하천이라는 의미다. 조천에는 새들이 서식하기 좋은 띠풀이 우거져 있어서 조천의 둑을 ‘띠풀언덕(苧峙堤堰)’이라고 한다. 띠풀이 우거지고 많은 새들이 날아든다는 것은 새들이 먹이로 삼는 고기가 많다는 것이다. 오죽했으면

“조천으로 등불을 구경하러 가자.”

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였다. 조천에는 고기와 조개가 많아, 그것을 잡으려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는데, 밤이 되면 횃불을 켜들었는데, 그 풍경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사람들은 그것을 ‘동진어화’라고 이름 지어 자랑했다.

동진은 조천이 번암리 일대에서 미호천과 합류하여 흐르다 다시 월하천과 합류하는 곳까지를 이르는 곳으로, 그곳에 사는 물고기와 조개와 새들이 많은 사람을 불러들인다.

그런 조치원에 기차역이 생겼다.

시아버지 대원군과 며느리 민비가 권력을 다투던 조선이, 이완용을 앞세운 이등박문의 협박에 견디다 못해, 외교권을 일본에 넘긴다는 을사늑약을 1905년 11월 17일에 맺는다.

그런데 그 보다 21일 전인 1904년 12월 27일에 경부선이 완성되었는데, 그때 조치원역도 생겼다.

철도의 운영권을 가진 일본이 조천(鳥川)을 기념하여 ‘조천원역’으로 하려 했으나, 조천을 일본말로는 ‘쵸우센’이라고 발음하는데, 그것은 조선(쵸우센)과 같은 발음이기 때문에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천’을 ‘치’로 바꾸었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매월 4일과 9일에 조치원장이 선다라는 기록이 1770년에 편찬된 ‘동국문헌비고’라는 책에 있는 것으로 보아, 조치원이라는 지명은 기차역이 생기기 전에도 있었다는 것이 된다. 그런데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는 사람들을 보았다. 화가 나는 이야기였다.
 
“새는 날아가 버리는 것이기 때문에 조치원에는 복이 머물지 않는다니까.”

조치원에는 복이 머물지 않는단다. 듣는 귀를 의심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런 이야기를 다른 사람도 아닌 조치원 사람이 한다는 것이었고, 더 놀라운 것은

“그러니까 땅을 사려면 서울땅을 사야한다니까.”

조치원 사람들이 맞장구를 치고 있었다는 것이다.

어떻게 그런 대화가 태연스럽게 이루어질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은 지역에 대한 모독이고, 새를 모독하는 생각이고 언어다. 새는 복을 물고 날아가는 것이 아니라 복을 물고 날아오는 영물이다.

그래서 고구려는 태양 안에 세 발 달린 까마귀를 그린 깃발을 휘두르며 대륙 곳곳에 민족의 기상을 펼쳤다. 깃발에 그려진 삼족오가 고구려의 뜻을 하늘에 전하고, 하늘의 뜻을 고구려에 전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 새들이 떼지어 날아드는 곳이 조치원이다.
천하의 중심이 될 ‘세종특별자치시’가 이곳에 들어선 것으로도, 조치원이 천하의 명당이라는 것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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