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난기 어린 표정은 여전한 그를 만나면 맥없이 흘려보낸 시간이 일순 무색해진다.

뉘 집 누구와 누구의 근황을 읊어대는 투박한 사투리가 정겹다. 어느 별에선가 휙 날아와 떨어진 운석인 양 빤빤하게 굴어도, 어쨌든 잔뼈는 그 너른 오지랖과 눈길 속에서 굵은 게다.

이상하게도 그를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이 든다. 정체 없는 일이다. 그에게 잘못하거나 못된 짓을 한 것도 아닌데 난감한 일이다. 그의 행동과 마음이 파동의 진원이다.

그는 누군가에게 자기의 과거를, 안부를 들키는 것이 두려운 사람처럼 보인다.

아니 남자들끼리는 그런 것이 조금 멋쩍다. 서로 안다는 것이, 그것은 좀 서로에게 부끄러운 일이기도 하다. 그는 여러 차례의 수감생활을 해 왔다.

“그날 이후로 20년 동안 이틀에 한 번꼴로 병원에 실려 다녔고마예.”
“…” 

나는 발가벗긴 소설에 대해 부끄러운 것이고, 그는 지나온 과거의 무모함에 멀찍이 떨어지려고 하는 것이 부끄러워 그런 것이라는 걸 잘 안다. 그도 알고 나도 안다. 남자와 남자사이에 수줍음이 우리에겐 더 많아진다는…

“한 번 가위에 눌리면 손발이 굳고 전신마비가 지는고마예.”

가끔 내맘대로 그가 걱정스러웠다. 안부가 걱정스러 전화를 만지작 거리다 그만두곤 했다.

그에게 한동안 안부를 묻지 않았다. 다른 누구에게도 그의 안부를 묻지 않았다. ‘잘 지내? 별일 없어?’라고 물을 수 없었다. 그에게 안부를 묻는 것조차 가혹한 일인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를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이 그에 대한 예의처럼 느껴졌다.

그가 교도소 문을 나와 마치 절망의 시간을, 참회의 시간을 건너는 듯한 목소리는 물론 삶의 모든 것을 스스로 가라앉혀둔 것처럼 보였다.

그에게 큰 기대를 건 시골 어머니가 생각났고, 그 어머니가 가진 실망의 아픔을 나는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슬픔을 가늠하는 것조차 할 수 없었다. 그에게 죄스러움처럼 느껴졌다. 투박한 그의 음성에도 간혹 짓는 미소에도 한없이 낮고 깊이를 알 수 없는 절망이 묻어있었다.

죄의식과 자책감은 그것을 이해하려는 다른 사람에게도 전염된다. 마음을 나누는 일이란 그런 파동일지도 모른다. 그런 것을 짐작하는 일, 결국 아무것도 모른다는…

“온몸이 오그라든 상태에서 움직일 수가 없는 기라예. 20년을 그러다 보니 잠자는 게 두렵고마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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