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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권오엽 충남대 명예교수세종에 살리라… ‘고추가 없는 여신’
세종매일  |  ygnews@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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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0.11  13:3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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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엽 충남대 명예교수

1592년 4월 13일에 부산진으로 침략한 왜군이 불과 보름 만에 한양을 점령하고 만다.

왕과 대신들이 궁을 버리고 평양을 거쳐 의주로 도망쳤기 때문에, 왜군들은 저항다운 저항도 없이 5월 말에는 개성을 점령하고 평양까지 함락시킨다.

그 전의 일이다. 왕한테 검을 하사받은 신립은, 왜군의 퇴치를 장담하며 새재에 이르러, 산세가 험한 새재에 진을 치고 기다리다 요격하자는 부하들의 작전을 무시하고, 넓은 들에 진을 치고 공격하다 왜군이 쏘아대는 조총을 당하지 못하여 강에 뛰어들고 말았다.

그렇게 자신의 체면은 지켰을지 모르나, 조선의 강토와 백성들은 온갖 수모를 다 당해야 했다.
왜군들은 지나는 곳마다 방화하고 닥치는 대로 죽이며 조선의 씨를 말리려 했다.

연기군을 지날 때도 마찬가지였다.

왜군이 연기군에 이르기 전에, 엄벙이라는 스님은 산속에 들어가 백일간이나 국태민안을 빌고 마을에 내려와 보니, 불에 탄 마을 곳곳에 시체가 즐비했다.

“나무 관세음보살.”

나라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불에 타죽고, 칼에 맞아 죽고, 창에 찔려 죽고, 조총에 맞아 죽은 원혼들의 극락왕생을 빌고 있는데,

“으앵,으앵”

기진맥진한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뛰어가 보았더니, 불에 타죽은 여인이, 암탉이 병아리를 날개로 감싸고 타죽듯이, 아이를 안고 불에 타죽었다.

“너를 보살피라는 부처님의 뜻인 모양이다.”

엄벙 스님은 서둘러 아이를 안고 가랑비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15년이 지난 수디산 계곡에, 노인이 된 엄벙과 청년이 임경이 살고 있었다.

왜인들이 일으킨 끔직한 난리를 경험한 엄벙은 환속하여, 그때 구한 임경을 돌보며 살고 있었던 것이다.
 
엄벙은 약초를 기르며 임경에게 글과 무술도 가르치는데, 임경은 머리가 좋아 쉽게 익히고 산속의 동물들과 어울리는 일이 많아, 새처럼 날렵하고 멧돼지처럼 강하여, 산속의 왕자라는 호랑이도 피할 정도였다
.
“곧 되놈들이 쳐들어 올 것 같다.”

엄벙은 자주 하늘을 바라보며 탄식을 하며 임경의 등을 토닥거리신다.

“사부님 그때는 제가 앞장서서 싸우렵니다.”

그러던 어느 보름날 밤이었다. 임경이 허겁지겁 달려오며

“사부님, 저기 옹달샘에 고추가 없는 사람들이 멱을 감아요.”

산속에서 사느라 여자를 본 일이 없는 임경이 멱을 감는 여인들을 보고 놀란 것이다. 그 이후로 임경은 옹달샘에 자주 다니는 것 같더니. 다녀올 때 마다 상기된 얼굴로

“왜, 그들을 보면 가슴이 뛰고 얼굴이 붉어지나요?”

고추가 없는 사람들을 보면 얼굴이 붉어진다는 말을 하며 수줍어했다.

하늘의 여신들이 옹달샘에 내려와 멱을 감고 올라간다는 말이 있었는데, 임경이 그것을 보고 가슴이 두근거리고 얼굴이 붉어진다는 말을 하는데, 그것은 우연히 아니라, 옥황상제의 뜻이었다.

옥황상제는 엄벙과 같이 살면서 면학하고 무술을 연마하는 임경, 산속의 동물과도 잘 어울리는 임경을 보자

“부마감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공주들을 내려 보냈던 것이다. 임경의 말을 들은 할아버지는

“세상에는 남녀가 존재하는데, 같이 혼인하면 아이가 태어난단다.”

이성 간의 사랑을 설명하고, 선녀와 혼인하고 싶으면 옷을 숨겼다 대려오라고 일렀다.

이성이 그리운 것은 누구도 어찌 할 수 없는 것, 그렇게 착한 임경도 선녀의 옷을 숨겼다. 그리고 옷이 없어 승천하지 못하는 선녀에게 미리 준비한 옷을 건넸다.

그런데 더 이상한 것은 선녀였다. 옷을 훔친 임경에게 화를 내어 마땅한데도

“모든 것이 옥황상제님의 뜻입니다.”

옥황상제의 뜻이라며 임경에게 미소 짓는다.

이성에 대한 사랑은 선녀도 어찌 할 수 없는 문제인 모양이다. 임경이 선녀를 데리고 집에 가자, 엄벙은 둘을 촛불을 켜둔 아랫방에 들게 했다. 이후로 행복한 둘은 칠남매를 두었다.

그러다 두 번 째 아이가 태어났을 때, 임업은 그때까지 숨겨두었던 선녀 복을 꺼내주었다.
하늘나라로 돌아가도 된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선녀복을 본 부인은

“저는 이곳에서 같이 살고 싶습니다.”

하늘나라에 가지 않겠다는 말을 하고 같이 살며 오남매를 더 두었다.

그러던 1636년의 일이다. 임경은 침략한 되놈들을 물리치려고 남한산성에 달려가 칼을 휘둘렀으나 혼자의 힘으로 승리를 거둘 수는 없는 법, 청나라의 공격에 견디지 못한 왕은 1637년 2월 24일에 삼전도에서 무릎을 꿇고 신하의 예를 취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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