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에 살리라…‘두루봉의 달공주’

▲권오엽 충남대 명예교수.
▲권오엽 충남대 명예교수.

하늘나라에 잘 생긴 왕자가 태어났다.

“아니 이번에도 왕자란 말인가.”
 왕자가 태어났다는데, 옥황상제는 반갑지 않다는 표정이다.

아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라고 말할 수도 있으나, 사정을 알면 옥황상제의 처지도 이해할 만하다. 옥황상제도 첫째 왕자가 태어났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왕자가 태어났다고. 이보다 더 기쁜 일이 어디 있겠나!”
 팔짝거리면서 기뻐했다.

그러나 어떻게 된 일인지 황후는 낳을 때마다 왕자라, 다섯이 넘었을 때부터는 그들의 극성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몰려들어 코를 만지는가 하면 눈을 찌르고, 귀를 잡아당기는가 하면 머리를 잡고 늘어져 정신을 차릴 수 없다. 그러다 조용한가 싶으면 

“콰당, 쨍그랑.”
  가구가 넘어지고 그릇이 깨진다. 그것뿐인가 옥황상제의 의관이 찢기는가 하면 황후가 아끼는 보석들이 여기저기 나뒹굴어 정리해도 끝이 없다.

“아이고 이놈들아. 너희들 때문에 남아나는 것이 없구나.”
  뛰노는 왕자들이 든든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억세기 그지없어, 예쁘고 얌전한 공주가 태어나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 마음을 삼신할매가 알아챘는지, 열 번째는 그렇게 바라고 바라던 공주가 태어났다.

“아이고 공주야 어찌 이제야 왔는가. 이리 보아도 예쁘고 저리보 아도 예쁘구나!”
옥황상제는 기쁨을 이기지 못하며 잔치까지 열더니, 이후로는 공주바보가 되었다.

공주가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들어주었고, 공주는 그런 사랑을 받으며 나날이 예뻐졌다. 극성스럽던 왕자들도 공주만 보면 얌전해질 뿐만 아니라

“공주야, 무얼 해줄까, 말만 해.”  공주를 도와주지 못해 안달이었다. 그런 공주가 어쩌다 궁밖에 나가기라도 하면, 공주를 보려는 신들이 몰려들어 길이 막힐 정도였다.

그리고 공주가 궁으로 돌아간 후에는, 공주를 한 번 보았던 젊은 신들은 상사병에 걸리고 만다. 그것을 안 옥황상제는

“공주는 밤에만 나다니도록 해라.”

낮에는 나다니지 말고 방안에만 있어야 한다며, 햇빛을 받으면 몸이 오그라드는 주술을 걸어버렸다. 공주를 보호하기 위한 일이었다 하지만 너무 심한 일이었다. 그런데도 마음씨 착한 공주는 옥상상제가 시킨 대로 낮에는 방에 있고 밤에만 나돌아 다녔다.
 
구름을 타고 이 별 저 별을 돌아다니기도 하고
바람을 타고 땅에 내려서 산책을 하기도 했다.

그러더니 어느 때부턴가는 금강가의 두루봉에 내려가서 노는 일이 많았다.
두루봉 자락에 사는 창호를 보면 가슴이 콩닥거린다며 자주 내려다닌다. 창호 역시 공주를 보면 얼굴이 붉어진다면서, 공주가 내려올 때마다 들길 산길을 안내하며

“이것은 물망초고, 저것은 계수나무고, 저리로 뛰어가는 것은 토끼이고…”
공주가 처음 본다며 신기하게 여기는 것들을 하나하나 설명해주었다. 별것도 아닌 설명인데도 공주는 그것이 재미있단다. 그러는 사이에 공주가 하늘나라로 돌아가는 시간이 점점 늦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두루봉 자락의 넓은 들을 안내하던 창호가
“공주님 간장은 간장인데 못 먹는 간장이 뭔지 아세요.”
생뚱맞게, 수수께끼 문제를 낸다. 창호 나름대로 공주를 기쁘게 해주려고 준비한 모양이나, 공주는 수수께끼가 무엇인지를 모르기 때문에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런데 창호는 그것이 재미있는지

“공주님을 그리워하느라 새카맣게 타는 저의 ‘애간장’이랍니다.”
묻지도 않은 답을 알려주었다. 그래도 그게 무엇인지를 몰라 계속 갸웃거리는 공주에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은 무슨 꽃이게요?”

또 수수께끼를 냈고, 공주는 여전히 고개를 갸웃거리고, 창호는 더 크게 웃으며
“공주님이 밝게 웃으시는 ‘웃음꽃’이랍니다.”

 또 답을 일러준다. 그때서야 수수께끼가 무엇인지를 알게 된 공주가 웃으며 
“그러면 도둑이 좋아하는 금은 뭐게요.”
“소들이 만나면 뭐라고 인사하게요.”

연속해서 수수께끼를 내는데, 창호는 그것이
‘살금살금’
‘반갑소’
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창호가 고개를 갸웃거렸고, 공주는 두 눈을 둥그렇게 뜨고 갸우뚱거리는 창호의 표정이 재미있다며 크게 웃는다.

바로 그때, 하늘나라에는 난리가 났다. 해가 동쪽 하늘로 나가야 할 시각인데, 공주가 그때까지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햇빛에 쐬면 공주가 죽기 때문에 옥황상제는 해를 나가지 못하게 했으나, 그렇게 하면 모든 법칙이 깨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해를 내보낸 순간

“앗”
하는 짧은 비명소리가 두루봉에 울리며 수수께끼 놀이를 하던 공주가 사라진다.

창호가 놀란 눈으로 바라보는데 “텀벙”하고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과 동시에 옹달샘에 생긴 동그라미가 둥글게 퍼진다. 물방울로 변한 공주가 옹달샘에 떨어진 것이다.

“공주님”

창호가 애타게 부르는 소리가 두루봉에 울려 퍼진다.
그렇게 떨어진 물방울이 두루봉 자락 어딘가에 있는 옹달샘에 지금도 괴어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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