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에 살리라…‘어서각’

▲권오엽 충남대 명예교수.
▲권오엽 충남대 명예교수.

범지기마을의 허파라 할 수 있는 두루봉에 어서각이라는 정자가 있다.

어서각은 왕이 어떤 사람의 공을 치하하며 내린 글씨를 보관하는 곳으로, 어필각이라고도 한다. 어서각은 이곳만이 아니라 전국 방방곳곳에 있는데, 왕의 글씨를 받는 것은 개인만이 아니라 고을의 자랑거리였다. 그래서 두루근린공원을 역사공원이라고도 부른다. 

지나가는 이성계가 우물가의 낭자에게 물을 청하자, 낭자는 급히 물을 마시면 체할 수도 있다며, 물바가지에 버들잎을 띄워서 건넸고, 이성계는 그런 낭자의 재치에 마음을 빼앗겨 혼인을 맺었다.

그리고 낭자의 오빠에게 벼슬을 내린다는 뜻을 기록한 왕지(王旨)를 내렸는데, 그 왕지를 보관하는 곳이 범지기마을의 어서각이다.

현재의 우리나라에는 글을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에,

“글씨 하나가 뭐 그리 대단하다고 전각까지 세우나.”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문자의 위력을 모르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우리 말도 잘 모르는 아이를 영어학원에 보내는 어머니들의 마음을 알면 그런 말을 못할 것이다.

많은 돈을 써가며 영어학원에 보내는 것은 영어를 잘 해야 출세도 하고 돈도 벌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은 옛날에도 그랬다. 글을 잘 아는 사람이 출세하고 돈도 잘 번다는 것은 어느 시대나 마찬가지다

지금은 영어나 일본어 등도 많이 사용되지만, 조선시대까지는 중국의 한자와 그것으로 기록하는 한문이 중심이었다.

옛날의 중국은 우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잘 살고 강하여, 우리나라의 왕들은 중국의 인정을 받아야 왕노릇을 할 수 있었다. 그것을 책봉이라고 하는데, 왕자는 중국이 마음에 들어야 왕이 될 수 있고, 왕이 된 후에도 말을 잘 들어야 했다.

그런데 중국과 우리는 말이 다르기 때문에, 중국은 한문으로 요구하고, 우리는 한문으로 답해야 했다.

그때 한문을 잘못 해석하거나 기록하면 왕위를 박탈당할 수도 있다. 그래서 한문을 잘 알아야 왕이 될 수 있고, 왕을 돕는 귀족도 될 수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한문을 아는 것이 출세의 길이고 돈을 버는 방법이고 길이었다. 그러다 보니 글을 아는 양반들은 글을 모르는 백성들을 짐승처럼 취급하면서 느끼는 행복을 영원히 독점하고 싶어

“식자우환”

그럴 듯한 말로 백성들이 글을 배우려는 생각을 못하게 했다. 심지어는 

글을 모르기 때문에, 이나마 행복하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그래서 마한 진한 변한의 삼한 시대, 백제 고구려 신라의 삼국시대, 고려와 조선 왕조는 물론, 일본에 나라를 빼앗겼다 되찾은 후에도, 글을 모르는 문맹이 아주 많았다.

세종대왕이 글을 모르는 백성들이 불쌍하다며 쉽게 배울 수 있는 한글을 만들자, 양반들은
“한자처럼 훌륭한 문자가 있는데 한글을 만드는 것은 중국을 배반하는 일입니다.”

“한자와 다른 한글을 쓰는 것은 오랑캐들이나 하는 짓입니다.”

맹렬히 반대했다. 그래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시대가 되었는데도, 1950년대의 할아버지나 할머니는 물론, 아저씨나 아주머니 대부분이 한글도 못 읽는 문맹이었다. 그래서 이런 일은 우리나라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일이었다. 

시간차라고도 말하는 버스가 하루에 두세 번 다니는 신작로, 그 신작로 한 가운데서 갓을 쓴 할아버지와 양복을 입은 신사와 치마저고리를 입은 부인, 그렇게 셋이서, 벌건 대낮에 대성통곡을 하고 있었다. 길 가던 4학년 학생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왜들 그렇게 슬피 우세요.”

라고 물었더니, 갓을 쓴 할아버지가

“저 아주머니의 아들이 군대에서 보냈다는 편지를 읽어 달라는데, 글을 몰라서 이렇게 운 단다. 조선은 쌍놈이라고 글을 못 배우게 했고, 일본은 우리말을 못 쓰게 하여 배울 수 없어서 편지를 읽지 못하는 것이 분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해서 운단다.”

할아버지가 생각할수록 억울하다며 쭈글쭈글한 손등으로 눈물을 닦으셨다. 그러자 이번에는  양복을 입은 신사가 하얀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으며

“나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으나 열심히 일하여 양복을 입을 정도로 돈은 벌었단다. 그런데도 글을 배운 일이 없어, 아주머니가 읽어달라는 편지를 읽지 못한단다. 그래서 이렇게 울고 있단다.”

아저씨도 글을 못 읽는 것이 창피해서 운다고 했다. 그러자 아주머니가 울음을 딱 그치며

“그렇다면 우리 아들이 죽은 것이 아니란 말이에요. 편지를 보시자마자 우시길래, 아들이 잘못된 줄 알고 울고 있었단 말이에요.”

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이 아니라, 글을 못 읽는 것이 부끄럽고 답답해서 울었다는 할아버지와 아저씨의 이야기를 들은 아주머니가 반색을 하며 기뻐했다, 그리고 편지를 학생에게 건네주며
 
“학생이 좀 읽어봐.”

편지를 읽어달라고 부탁했다. 학생이 펴본 편지에는

“어머니 그동안 안녕하셨어요. 저는 군대에 와서…” 

안부로 시작해서, 군에서 한글을 배워 편지도 쓸 수 있게 되었다는 내용, 휴가 갈 때는 건빵을 가져가겠다는 내용, 제대하면 효도하겠다는 내용 등이 삐틀거리는 글씨로 쓰여 있다.
 
“아니 군대에서 글도 가르쳐 주다니, 이렇게 고마울 데가 있나.”

편지의 내용을 알자 아주머니가 활짝 웃으며 연신해서 허리를 굽실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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