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으로는 만화를 날렵하게 넘겨 읽었제.”
“6.25 반공만화가 제법 많았는데, 교회 주일학교에서 더 잔인한 살인과 전쟁 이야기를 숱하게 들은 통에 별로 놀랍지도 았았어.” 
“풍선을 만지던 내 손은 하늘에 닿아 있었제.”
“그것은 정말 친숙함을 뜻하는 거잖아.”

불숙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중학생 때 친구들 중, 좀 올된 녀석들은 어디서 구했는지 이상한 사진을 가지고 왔고, 쉬는 시간 교실 한 구석에서 뭉쳐 그것을 보느라 선생님이 오신줄도 모르고 있다가, 결국 사진을 빼앗기고, 사진을 가져온 녀석은 교무실로 불려가 출석부로 머리를 통타(痛打)당하기도 하였다.

아마 요즘 이런 책을 보는 학생은 없을 것이다. 인터넷에 그런 희한한 것들이 지천이니까.
“열일곱땐 ‘반에서 몇등하노?’라는 질문으로 침묵의 의미를 생각게 해주셨제”
“그럼, 꽤 고민스러웠다는 얘긴데…”
“열아홉 살 땐 던져준 질문은 ‘니 형편에 대학은 갈 수 있겠노?’ 였제”

“또, 다음엔?”
“음, 뭐꼬, 스무살엔 ‘이제 더 이상 묻지 않겠거니’라고 생각했고만 ‘니 요즘 뭐하노?’라는 가장 강력한 명대사로 비수를 꽂아 주셨는기라.”
“그 말은 엄청난 뜻으로 재해석 될 수 있는 질문인데.”
“뭐 먹고 살끼야? 취직은 안노? 밥은 먹고 살 수 있겠나?”
“…”

“어른들이라면 사사건건 반발심이 일던 사춘기에는 스무 살이 되면 어른이 되는 줄 알았제.”
“그때가 되면 어른다운 일을 하면서 어른스럽게 말하고 성숙하게 행동할 거라 기대했어.”
“하지만 생물학적, 법률적 성인의 나이가 되었을 때 내가 알아차린 단, 한가지 사실이 있제.”
“그 사실은?”

“어른도 별게 아이고마.”
“스무살이 되어도?”
“기내, 내는 어른이 되어있지 않았고, 둘러보면 또래들 모두 미숙하고 비릿한 아이처럼 보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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