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에 살리라…‘용궁의 당산 무사’

▲권오엽 충남대 명예교수.
▲권오엽 충남대 명예교수.

남의 물건을 훔치거나 나쁜 짓을 하는 자를 도적이라고 말하는데, 산에 숨어 있다가 지나가는 나그네의 물건을 빼앗는 자를 산적이라고 하고, 배를 타고 가는 사람들의 습격하고 물건을 빼앗는 도적을 해적이라고 한다.

“그러면 왜구는 뭐예요.”
“응, 그것은 아무데나 쳐들어가서 방화하고 약탈하는 왜인을 말한단다.”

그렇다. 왜구들은 남을 해쳐야 살아갈 수 있는 왜인들로, 게으르지만 칼과 창으로 사람을 죽이는 일에는 능하다.

그런 왜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든 빨리 해치우는 능력이다. 원하는 것이 어디에 있는가를 재빨리 알아내고, 재빨리 잠입하여 훔치면, 재빨리 도망쳐야 한다. 그래서 방화하고 살인도 한다.
그런 왜구들도 때가 되면 배가 고프고 졸리지만, 한 곳에 머물면서 잠을 자고 식사를 할 수는 없다. 군불을 땐 따뜻한 방에서 잠을 자거나 먹을 것을 가마솥에 삶아 먹거나 화롯불에 구워먹는 일은 생각할 수도 없다.  

졸리면 아무데나 몸을 쭈구린체 눈을 붙이고, 도망치다 배가 고프면 허리에 치고 다니는 주먹밥을 먹어야 한다. 맛있는 고기가 생긴다 해도 구워 먹거나 삶아 먹을 여유가 없다.
그래서 날것으로 먹는 일에 익숙한데, 운이 좋아 고추냉이라도 발견하여 발라 먹을 수 있으면 최고의 성찬이다. 그런 왜구들에게는

봄에는 너른 벌판을 파고 씨를 뿌리고
여름에는 파란 두렁의 잡초를 뽑아내고
가을에는 탐스런 열매를 거두어 들이고
겨울에는 새 봄에 뿌릴 씨앗을 고른다

성실한 사람들이 성실히 일하며 가족이 따뜻한 방에 둘러앉아 국에다 밥을 말아 먹으며 산다는 나라, 바다 건너에 있다는 나라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왜인들은 옛날부터

바다 건너 서쪽 나라에는 금은보화가 널려 있다네.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고 나이를 먹어도 건강하다네

바다를 건너에 있는 서쪽 나라에 가기만 하면 원하는 것 모두를 얻을 수 있다는 말을 들으며 자랐다. 그래서 왜인들은 기회만 되면 서쪽 나라에 가서 원하는 것을 마음껏 빼앗아 오겠다 하며, 노를 젓는 법, 무기로 살생하는 법, 방화하고 약탈하는 짓을 연습했다.

땅을 파고 씨앗을 뿌리는 일은 싫어하면서도 그런 일은 재미있다며 즐겨한다.

그렇게 연습을 하고 서쪽 나라에 건너가, 칼을 휘두르고 방화하면, 사람들이 대들기는커녕 도망치기 바쁘기 때문에, 원하는 것을 얼마든지 훔칠 수 있었다.

처음에는 대마도에서 가까운 해안을 침범하던 왜구들이 나중에는 동해안은 물론, 남해를 거쳐 서해안까지 쳐들어가 온갖 악행을 자행했다.

그때 사람들이 힘을 합쳐서 나타나는 대로 때려잡았어야 했다. 그러지 않고

“왜구는 무섭다.”

왜구가 나타나기만 하면 무섭다고 도망쳤기 때문에 점점 기고만장해진 것이다. 여하튼 서해안에 나타나던 왜구들이 급기야는 금강을 거슬러 올라 연기까지 쳐들어오게 되었다.

수천이는 자기 고향이 왜구들한테 짓밟힌다는 것도 모르고 향란과 꿈 같은 생활을 보내고 있었는데, 바로 그때, 수천이의 꿈에 당산신이 나타난 것이다.

“고향 사람들이 왜구에게 짓밟히고 있는데 너는 이곳에서 무엇을 하는가.”

당산신이 고향의 소식을 전하더니 금새 어디론가 사라졌다.
수천이가 어릴 때부터 자주 찾아뵙던 신으로, 볼 때마다 온화한 얼굴로 맞아주었는데, 꿈에 본 얼굴은 그런 얼굴이 아니었다. 화를 내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당산신님!  당산심님!”  

수천이 큰 소리로 당산신을 부르다 눈을 떠보니 꿈이었다. 수천이가 외치는 바람에 향란이 눈을 뜨고 바라본다.

향란 낭자님 당산신이 꿈에 보였소이다
당산신이 잠자는 나를 크게 부르더이다
고향으로 돌아오라고 부른 것 같소이다

수천이 걱정스런 얼굴을 하는 향란에게 꿈에 나타난 당신신 이야기를 들려주었더니, 향란은 낭군의 고향에 난리가 난 것이 틀림없다며, 귀향할 준비를 서둘렀다.
이 칼과 창에는 여인국의 위용을 담고

이 옥 구슬에는 여인국의 씨앗을 담고
이 자루에는 여인국의 기운을 담았어요

그동안 모아 두었던 물건들을 하나하나 정리하는데, 시종을 거느리고 나타난 여왕이 수천과 향란을 격려한 다음에  

이것은 물을 흡수하는 구슬이고
이것은 물을 방출하는 구슬이고
이것은 물을 저장하는 구슬이다

구슬가를 노래한 다음에 세 개의 구슬을 건네 주셨다. 그리고

“수천과 향란 부부를 칠룡선으로 모시거라,”

일곱 마라의 용이 끄는 칠룡선을 타고 가라며 많은 보물을 실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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