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치와 인질’

▲권오엽 충남대 명예교수.
▲권오엽 충남대 명예교수.

2018년 4월 27일 9시 29분에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판문점 군사분계선에서 악수를 하더니, 같이 분계선을 넘나든다.

그것을 보는 나의 눈에는 나도 모르는 눈물이 솟았다.
이해할 수 없었던 국무위원장의 헤어스타일에도 정감을 느낄 정도의 감동이었다. 그 이후에 들리는 뉴스들이 통일과 평화를 기대하게 한다.

뉴스를 반복해서 듣느라 텔레비전 앞을 떠나질 못하는데, 29일에는 일본의 아베 총리가 우리 대통령에게 감사를 표했다는 뉴스가 흘러나온다. 우리 대통령이 국무위원장에게 일본인 납치문제를 거론한 것에 감사를 표한 것이란다.

북한이 일본인을 납치한 것은 잘못된 일이고, 일본이 문제를 제기하며 반환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도 전적으로 동의만 할 수 없는 요소가 있다. 일본이 그런 요구를 하려면, 자신들이 범한 전쟁범죄를 먼저 해결해야 했기 때문이다.

왜구들이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 방화와 약탈, 살해와 납치를 자행했던 역사는 분하지만 덮어 둘 수도 있고, 풍신수길의 범죄에 대해서도 이를 악물고 과거사로 치부할 수도 있다.

그러나 20세기의 일본제국이 범한 전쟁범죄는 그렇게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서양에서 배운 침략의 기법을 우리에 적용한 것을, 약육강식이 상식화되었던 시대의 산물이라고 인정하면, 용서할 부분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무능한 선조들의 탐욕이 자초한 면도 있어, 부끄럽지만 묵인하는 용기를 발휘할 수 있는 일이다.

우리는 일본의 침략에 의한 역사의 중단으로 민족의 정기가 중단되고 오염되어, 회복하고 정화하는데 앞으로 얼마나 많은 시간이 더 걸릴지,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도 치유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을 수도 있다.

역사의 중단으로 우리는 능력이 부족한 선생들한테 면학해야 했고, 그래서 헤아릴 수 없는 시행착오를 범해야 했지만, 다른 나라를 침략하는 일 없이, 세계의 평화를 위해 봉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 가고 있다.

통일도 자력으로 이루려는 노력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아베 총리가 우리 대통령에게 감사를 표한 것도, 그런 우리의 자주적 능력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지난 2월에 일본에 갔는데, 텔레비전의 시사평론가들이, 북한과 우리를 조롱하며, 자력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이라며 득의만만한 표정을 지었고, 기상캐스터는 여전히 우리와 일본 사이의 동해를 ‘일본해’라 칭했다.

일본은 맹목적인 민족주의를 위해서는 사실의 왜곡을 주저하지 않는데, 그때 일본은, 우리한테 약탈해간 자본으로 구축한 지식을 악용한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왜곡된 사실은, 우리의 진보하는 학문에 의해 탄로 나기 마련이다.

독도 문제가 그렇고 납치문제가 그렇다.
우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일본의 독도 자료를 보면, 그 어디에도 독도가 일본 땅이라는 내용이 없다.

그런데도 일본이 독도의 영유를 주장하는 것은 왜구의 습성을 버리지 못한 일이고, 기록을 왜곡하는 능력을 과신한 결과다.

이미 우리는 그런 왜곡을 간파할 수 있는 능력을 구비하고 있다.

역사의 단절에 따른 능력의 부족으로 해독에 어려움을 겪는 시기가 있었지만, 우리는 우월한 문화를 왜에 전해주던 시기의 능력을 회복하고 있다.

일본이 독도를 이야기하려면, 17세기의 일본인들이 동해에서 어렵하던 안용복과 박어둔을 납치했던 일부터 사과해야 한다. 그런데도 일본은 그런 범죄를 부끄러워하기는커녕 해양국민의 영웅담처럼 말하기도 한다.

북한이 일본인들을 납치하는 범죄를 범한 것은 1970년대의 일로 50년 전의 일이다. 과거를 잊고 미래를 논하자는 일본의 주장에 따른다면.

이미 반세기가 지난 과거의 일이다. 그런데 일본은 이미 50년이 지난 과거를 들춰가며 북한을 추궁하는데, 북한이 잘못한 일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고, 북한은 잘못을 인정하고 인질을 돌려보내야 하지만, 일본이 그런 말을 하려면 그보다 조금 전의 과거사도 언급해야 한다.

북한이 일본인을 납치했다는 1970년대를 조금 거슬러 올라가는 1940년대까지 일본은 어떤 짓을 했는가.

70년대의 북한이 일본인 17인을 납치한 것을 문제로 삼는다면 40년대까지 우리 민족을 마음대로 끌어다 전쟁의 희생물로 삼았던 일도 언급하며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

20세기 초의 일본은 무능하면서 탐욕 덩어리였던 매국노들을 매수하여 조선을 합병했다는 정통성을 근거로, 망국의 한을 절규하는 사람들을 일본의 필요에 따라 이리 보내고 저리 보내고, 이리 끌어다 혹사하고 저리 보내어 탄알받이로 삼으며 능멸하지 않았던가.

그런 가운데 어쩔 수 없이 끌려간 소녀들은 병기화된 병사들의 노리개가 되었다. 동내 어귀만 벗어나도 품행이 문란하다고 매 맞던 소녀들이 멀고 먼 이국에 끌려가 살인병기들에게 농락당해야 했다.

“너무 많으나 이제 그만 보내길 바람.”

더 이상의 위안부를 보내지 말라고 요청할 정도로 많은 소녀들을 징발해갔다. 그래놓고도 우리 대통령에게 감사를 표했다는 아베 총리는 그런 사실이 없었다고 부정만 한다.

북한은 50년 전의 일을 부정하지 않는다.

또 돌려보내지 않겠다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일본은 70여 년 전의 전쟁범죄를 부정하며, 과거를 잊고 미래를 논하자는 말을 반복한다.

북한은 일본과의 약속에 따라 2002년에 5인의 일본인을 일시 귀국시켰다. 그때 일본이 ‘일시귀국’이라는 약속을 지키지 않아 지금까지 해결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일본이 소녀들을 징발한 사실을 인정하지 않아 ‘평화의 소녀상’을 세계 이곳저곳에 세우자 일본은 그것이 부끄러운지 설치를 반대한다.

그러지 말고, 사실을 인정하고 반성하면 끝날 일인데, 일본은 부정하면서 약간의 돈으로 무마하려 한다. 일본의 양심이 무엇이고 그들이 주창하는 세계평화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모르게 하는 짓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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