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에 살리라…‘다판이 고개’

    ▲권오엽 충남대 명예교수.
    ▲권오엽 충남대 명예교수.

세종시에서 공주로 넘어가는 길에 낮은 고개 하나가 있다.

옛날에는 모두 걸어서 넘었으나 현재는 자동차로 넘어 다니기 때문에 고개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지 않은 것 같다. 고개의 오른쪽에 높게 설치된 나무층계를 올라서 둘러보면 아파트 공사가 한창이다.

위례성에 도읍한 백제는 현재의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와 낙동강 중류 지역, 강원도, 황해도의 일부 지역을 포함하는 영토를 통치했다. 세력이 당당하여 탐라국을 병합하고 침략하는 고구려를 반격해서 고국원왕을 전사시키기도 했다.

그랬던 백제가 신라에게 한강 유역을 빼앗기더니 금강가의 명당을 찾아 천도했다.

그러자 한강변으로 가던 온갖 조공이 금강변의 웅진으로 몰려오기 시작하여, 한적했던 고개를 넘는 사람이 나날이 늘어 초소까지 세워야 했다.

신라가 백제를 침범하려면 금강을 건너야 하기 때문에, 금강을 볼 수 있는 고개는 군사적으로 중요했다. 정보를 훔치려는 첩자가 오기도 하고, 도성에 가면 출세할 수 있다며 모여드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들이 고개에 이르면

“어떻게 하면 벼슬을 할 수 있는가?”
“누구에게 뇌물을 주면 벼슬을 살 수 있을까?”

원하는 정보를 얻으려고 안달이었다.
그러다 보니 그자들을 상대로 해서 돈을 벌려는 사람들도 모여들고, 그들을 상대로 하는 숙소와 주막도 늘어갔다. 백제는 그런 자들의 동태를 파악하기 위한 초소를 세웠는데, 그곳에 근무하는 병사중에는 장사꾼이나 모리배들과 내통하는 방법으로 이익을 얻으려는 자들도 있었다.

그런데 ‘다판’이라는 병사만은 달랐다.

도읍을 위례성에서 웅진으로 옮기게 된 것은 국력이 약해서가 아니라, 부패한 관리들의 탓이라고 생각하는 병사였다.

고구려왕을 전사시킬 정도로 당당했던 나라였는데, 관리들이 부패하여 웅진으로 천도까지 하게 되었으므로, 관리가 청렴결백해야 옛날의 위용을 되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원래 다판은 초소를 지키는 일을 할 신분이 아니었다. 할아버지가 좌평이라는 백제 최고의 관리여서 마음만 먹으면 높은 벼슬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할아버지가 언제나

“벼슬을 하려면 먼저 세상을 알아야 한다.”

세상을 아는 것이 지도자의 기본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그것은 아버지도 그랬고, 다판이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신분을 숨기고 초소에 근무를 자원했기 때문에 다른 병사들처럼 공짜로 얻어먹거나 사람들을 괴롭히는 일은 하지 않았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돈을 내고 구했고, 어려운 자를 보면 도우려 했다.

병사들 중에는 주막이나 점포를 찾아다니며 트집을 잡거나 상인들의 물건을 조사한다며 귀찮게 굴어대다가도, 한두 푼이라도 받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웃으며 자리를 뜨는 자가 많았다.

상인은 장사하여 돈을 벌어야 하는데, 그렇게 돈을 뜯기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근수나 품질을 속여서 팔아야 했다.

궁에서는 열흘에 한 번씩 물품을 구입하러 고개에 서는 장에 오는데, 물품을 구입할 때마다 소동이 벌어진다. 근수가 모자라거나 불량품이 섞여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일이 반복되자 물품을 구매한 자가 의심받아, 한번만 더 나쁜 물품을 구입하면 큰 벌을 받게 되었다.

“도대체 누구를 믿고 물품을 구입해야 할꼬.”

물품 구매자는 좋은 것을 구입하지 못하여 울상이었다. 그 사정을 안 다판이

“나를 따라 오시오.”

측은하다는 생각도 들뿐만이 아니라. 더 이상 부정행위가 이루어지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 평소에 정직하다고 생각하는 장사꾼을 소개해 주었다. 그렇게 해서 좋은 물품을 적당한 가격으로 구입해서 돌아간 구매자는, 처음으로

“잘했다. 참 잘했다.”

윗사람의 칭찬을 들었고, 그 뒤로는 꼭 다판이 소개해 주는 점포에만 들렸다. 그러자 나쁜 물건을 속여서 팔던 장사꾼이나 뒷돈을 받아먹던 병사들의 불만이 커져 갔다.

“다판이 때문에 생기는 것이 없어, 술 한 잔도 얻어 마실 수 없다.”

다판을 원망하고 비난하더니, 나중에는 죽이기로 모의하더니, 다판이 측간에 들어간 틈을 노려, 사방에서 창으로 찔러 죽였다.

그리고 언덕 아래에 구덩이를 파고 묻어버렸다. 백제가 도읍지를 웅진에서 부여로 옮긴 638년의 일이었다.

다판의 가족들은 도읍지를 옮기는 일을 주도하느라 다판을 찾지 못한 체, 성왕을 모시고 부여로 옮겨가고 말았다. 그 후로 고개를 넘는 자들이 줄어 인적이 끊어지기 일쑤더니, 백제는 당나라를 끌어들인 신라에게 망했고, 나라를 잃은 백제인 들은 온갖 수모를 당해야 했다.

그런 세상을 한탄하며 고개를 넘던 길손 하나가 하늘에 뜬 흰 구름을 바라보고 서 있는데,

“다판 같은 병사를 알아보지 못해서 백제가 망한 것이다.”

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그네가 귀를 세우고 들어보았더니, 역시 같은 소리가 바람결에 들렸다.

그 이후로 사람들은 그 고개를 ‘다판이 고개’라고 부르기 시작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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