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에 살리라…‘아부와 준지’

     ▲권오엽 충남대 명예교수.
     ▲권오엽 충남대 명예교수.

세종호수공원 안에 서있는 정자는, 좋은 사람과 마주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지는 곳이다.

빨간 층계가 있어 지붕의 단청이 더 아름다운 정자에 앉아, 호수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주하는 사람이 신선 같고, 이야기에서 품격이 스며 나와 다시 오고 싶어진다. 그래서 정자에 들려서 이야기를 나눈 쌍은 사랑의 결실을 맺는다나.

지금은 정자가 서있지만, 원래는 씨를 뿌리고 거두는 들판 가운데의 언덕이었다.

그 언덕에는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와 혼인을 맺었다는 총각의 전설이 있다. 그런데도 들려주는 사람이 없어 정자에서 쉬었다 가는 사람이 많은데도, 그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급격히 들어선 고층 아파트의 위용에 전통이 사라져간 것이다.

옛날에 금강이 아름답다며 하늘에서 자주 내려오는 공주가 있었다.

옥황상제가 끔찍이 아끼는 공주는, 하늘나라에도 아름다운 곳이 많은데도, 틈만 나면 금강이 적셔주는 장남평야의 풍광]관이 좋다며 자주 내려왔다. 옥황상제는 공주가 보이지 않으면

“아부 공주는 오늘도 금강에 갔구나.”

으레 천하에 내려간 것으로 여길 정도였다. 공주가 어쩌다 금강변의 꽃을 꺾어다 드리기라도 하면 크게 기뻐하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그런데 안타까운 일이 생기고 말았다. 옥황상제가 알 수 없는 병으로 식음을 전폐하고 자리에 눕고 말았다. 하늘나라의 요리사들이

털이 거친 짐승 털이 부드러운 짐승을 요리해서 바쳐도
비늘이 넓은 고기비늘이 좁은 고기를 요리해서 바쳐도
흰쌀을 빻아 만든 인절미에 노란 콩가루를 얹어서 바쳐도

옥황상제는 쳐다보지도 않는다. 들기는 커녕 냄새도 맞기 싫다며 손사래를 치셨다. 소문을 들은 의사들이 달려와 진맥을 짚어보고, 가늘고 짧은 침을 찔러보기도 하고, 기다란 침을 꽂고 흔들어 보기도 했으나 옥황상제의 입맛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자

“내가 장담하고 고칠 수 있습니다.”

소문을 들은 동방의 의사, 서방의 점술사, 남방의 주술사, 북방에 산다는 무당까지 찾아와 별의별 짓을 다 했으나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먹지 못하는 옥황상제의 병은 점점 깊어만 갔다. 황후가 어렵게 떠 넣기라도 하면 금세 토하며 괴로워했다. 산해진미에 둘러싸인 옥황상제가 굶어죽을 판이었다.
옥황상제가 여위는 것과 더불어 하늘나라에는 걱정이 쌓여갈 뿐이었다.

웃음이 사라지고 활기가 없어져, 이대로 하늘나라가 망하고 마는가라는 탄식이 그치질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온 세상을 하얗게 뒤덮는 눈보라가 치는데, 눈발을 헤치고 찾아왔다는 선사 하나가

“지상의 약초를 구해다 바치면 낫을 것입니다.”

라는 말을 남기고, 바람에 휘날리는 눈보라 속으로 사라졌다.

그 말을 들은 신하들의 의견이 분분했다. 엉터리 선사의 말을 들을 필요가 없다며 욕을 해대는 신하들도 많은데, 공주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아바마마의 병을 낫게 할 수만 있다면 못할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자신이 지상의 약초를 구해오겠다며, 쏟아져 내리는 눈발을 타고 하얀 눈이 소복이 쌓인 금강 변으로 내렸다. 봄 여름 가을을 가리지 않고 피어나던 꽃은 물론 싱싱했던 초목 한 그루 볼 수 없이 하얗게 변한 벌판에 내려온 공주는 이곳저곳을 찾아다녔다.

그러나 그 어디에서도 약초를 볼 수 없었다. 그래도 공주는 의지를 굽히지 않고 정신없이 돌아다녔다. 발이 시린지도 다리가 아픈 줄도 모르고 눈벌판을 돌아다녔다. 그렇게 사흘 밤낮을 찾아다니던 공주가 자기도 모르게 정신을 잃고 하얀 눈밭에 쓰러지고 말았다.
 
그때였다, 벌판 저쪽에 사슴을 쫓는 사냥꾼 하나가 나타났다.

명궁으로 소문난 준지라는 사냥꾼이었는데, 그날은 어찌 된 일인지 화살이 빗나가 그곳까지 쫓아온 것이다. 그런데 도망치던 사슴이 공주가 쓰러진 곳에 이르자 하늘을 향해 세 번 울더니 어디론가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자 돌풍이 일며 눈에 뭍혀있던 공주의 옷자락이 펄럭였다.

“사람이다”

공주를 발견한 준지가 놀랄 틈도 없이 공주를 들쳐 업고 집으로 달려가 아랫목에 눕히고, 뒤뜰에서 뽑아온 파란 풀을 공주의 코에 댔다. 순간 창백했던 얼굴에 혈색이 돌고 숨소리가 커졌다. 공주가 정신을 차린 것이다. 그리고 그 동안의 일을 듣더니

“그것이 바로 내가 구하려던 약초입니다.”

공주는 준지의 이야기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준지를 앞세우고 뒤뜰로 가보았더니, 그곳에는 그렇게 찾아 헤맸던 약초가 파랗게 자라고 있었다.

“이것이 그렇게 좋은 약초라면 얼마든지 뽑아가세요.”

준지의 허가를 받은 공주는 세 뿌리의 약초를 캐들고 승천하여, 금방이라도 숨을 거둘 것 같은 옥황상제의 코에 대었다. 순간 옥황상제가 벌떡 일어나 앉으며

“아, 배가 고프구나. 먹을 것을 가져오느라.”

먹을 것을 찾더니, 사흘 낮 이틀 밤을 쉬지 않고 드시더니, 그전보다 더 건강해졌다. 하늘나라에 다시 웃음이 피어나자, 옥황상제는

“공주를 구해주었다는 준지를 부마로 삼겠다.”

공주와 사냥꾼 준지를 혼인시키겠다며 당장 준지를 하늘나라로 불렀다.
그 뒤로 하늘의 신들은 공주가 공주를 만났다는 언덕에 내려와서 놀다가곤 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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