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적으로 우리는 해방후 ‘아래로부터 개혁’을 추진해야할 교원단체가 제대로 뿌리 내리지 못해왔던 셈이다.

“이사장 아들은 30대 초반의 평교사로서 도덕 주임을 맡고 있었는데, 형식상 교사였지 재무·인사를 총괄하고, 교사채용과 학교재산 거래에도 관여한 그는 재단의 실력자였제.”

학교를 휘젓고 다닌 ‘무소불위’ 권력은 곧 비리의 몸통이 됐다.

그는 자신과 돈을 받고 영어 교사를 부정 채용했다. 1차 필기시험 출제자인 교사에게 40문항의 영어문제를 주고 ‘그대로 출제하라’고 지시했다.

필기시험에 1등을 했다. 소문이 나 교육청 감사가 시작되자, 그는 출제교사를 불러 입단속하고 증거를 조작해버렸다. 그는 그해 10차례에 걸쳐 수천만원을 받고 행정실에서 데리고 있던 기능직 직원을 체육교사로 채용했다.

다음해엔 ‘누가 가장 나으냐’고 물어오는 교사 채용 면접관, 재단 이사에게 일일이 면접 점수를 불러줬고, 어느 해엔 교사채용 이력서를 교감에게 보냈다. 법률상 그는 교원 채용의 지휘, 감독권이 없다.

하지만 학교와 재단 간부들은 줄곧 이사장 아들의 눈치를 보고 재가를 받았다.

그는 학교 부동산을 처분하며 받은 가계약금 몇천만원을 사적으로 써버리기도 했다. 감사와 검찰 수사에 꼬리가 잡히기도 쉽지가 않았다. 비리투성이면서도 통제받지 않는 고삐 풀린 사학들이 수두룩한 현실이다.

“이사장 아들은 비리로 채용한 체육교사와 함께 운동을 즐기고, 특히 방과 후에 야구하기를 좋아했제.”

매 주마다 교사들끼리 2개 팀으로 나누어 게임을 했는데, 운동에 관심이 없는 교사들은 하는 수 없이 그의 말에 따라야 했다.

봉준이 또한 마찬가지로 주말에는 집안일도 도와야하고 여러모로 바빴다.

이사장 아들 ‘조학문’은 주로 투수를 도맡았다. 물론 운동도 꽤 잘했으며, 건장한 체구에 미남형으로 여자들이 꽤 좋아하는 타입이었다.

어느 날. 그의 타석 순이었는데 투아웃에 타자가 2명 1, 2루에 있었고, 점수는 7대 3으로 리드 당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긴박한 순간이었기에 운동장은 일순 조용했고, 마침 토요일 오후라 창가엔 꽤 많은 학생들이 창문을 열고 구경을 했다.

갑자기 학생들이 응원을 했다.  

“항문이 잘 해라! 항문이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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