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에 살리라…‘약탈자와 당산성’

   ▲권오엽 충남대 명예교수.
   ▲권오엽 충남대 명예교수.

미호천이 금강과 합류하는 합강리를 그윽하게 바라보는 당산에 540미터의 토성이 있었다는 것은 이상하다 못해 신기한 일이다. 당산 주변을 걷다보면 금방 느낄 수 있는 것이

“세상에 이렇게 한가로운 곳이 또 있을까!”

라는 감탄사가 저절로 튀어나오는 농촌이라는 것이다. 들과 산자락에 씨앗을 뿌리고 가꾸며 살아가는 농촌 사람들은, 자신들의 노력으로 얻은 결실에 만족하고, 수확물을 이웃과 노나 먹으며 화목하게 살려고 한다.

모자라는 것은 빌려 쓰고 여유가 생기면 갚는다.

봄부터 가을까지 열심히 일하여 거둬들인 곡식들을 광에 쌓아두고, 장독의 항아리에는 갖은 반찬을 저장하고 겨울을 맞이한다. 하얀 눈이 펄펄 내리는 겨울, 얼어붙은 산하에 살을 에이는 바람이 부는 겨울이 되면, 장작불로 따뜻하게 데운 방에 둘러앉아 가마솥에서 막 퍼온 밥을 국에 말아 먹거나 하얀 쌀밥에 김치를 얹어먹으며

“아버지, 재너머 사래 긴 밭은 언제쯤 가는 것이 좋을까요.”

자식은 부모의 가르침을 들으며 봄맞이를 준비한다.

“어머니, 할아버지 방에 군불 좀 더 때야겠어요.”

밥을 다 먹은 큰 손자가 불록한 배를 쓰다듬으며 밖으로 나가는데, 검은 댕기머리가 등짝을 흘러 엉덩이에 이른다.

“내년 가을에는 손자며느리를 보아야겠구나.”

할머니가 방문을 열고 나가는 손자를 바라보며 말하자, 할아버지도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게 단란하게 사는 나날이 만족스럽기 때문에, 당산 자락의 주민들은 고향을 떠나는 일이 거의 없다. 그저 태어난 곳에서 살다가 죽는다. 다른 데로 이사 갈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 마을의 뒷산을 토성으로 둘러쌌다는 것은 당산 자락에 사는 주민들을 해치고 약탈하려는 세력이 있었다는 것이다.

“도대체 어떤 자들이 그런 짓을 했단 말인가!”

그런 생각을 해보니, 열심히 일해서 먹고 사는 것보다 공짜를 좋아하거나 남의 것을 빼앗아 생활하려는 자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도 하지 않고 게으름 피우며 살던 자들이, 필요한 것이 있을 때마다 훔치려 왔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성으로 둘러 싼 것이다.

원래 게으른 자들은 일하는 것은 싫어하면서도, 남들이 잘 먹고 사는 것을 보면 배가 아파서 견디질 못한다. 그런 게으름뱅이들은 논밭에 나가 일은 하지 않고

“슬쩍 훔쳐서 바람처럼 사라지는 것이 최고다.”

라는 생각을 하며 살았다. 훔치다 들키기라도 하면 들고 있는 흉기로 위협한다. 그러다 여의치 않으면 해치거나 죽이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그런데 그런 짓은 땅을 파는 농민보다 어렵이나 사냥을 하는 자들이 능했다.

평야에 사는 농민들은 자기가 가꾸고 기른 것을 거두어서 먹는 데, 산속의 사냥꾼이나 물가의 어렵꾼들은 자신들이 기른 것이 아니라, 자연에서 저절로 자란 것들인데도 보기만 하면, 먼저 보는 자가 임자라며 닥치는 대로 잡아먹는다.

산에서 뛰어다니는 짐승을 보면 칼로 베거나 창으로 찔러 죽이는 것이 사냥꾼이고 헤엄치는 물고기에 그물을 던지거나 작살로 찌르는 것이 어렵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기르지 않았는데도, 보기만 하면, 먼저 본 자가 임자라며 때려서 죽이고 찔러서 죽인다. 그러다보니 살아있는 생명을 죽이는 일에 익숙하고, 살생을 즐기기까지 한다.

그러다 하얀 쌀밥을 된장국에 말아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남의 집에 들어가 훔쳐다 먹는 자들도 있었다. 그런 자들을 도둑이나 약탈자라고 하는데, 약탈자들은

산에 뛰어 다니는 짐승들이 내 것이고 농민들의 쌀도 내 것이다.
물속의 물고기를 낚듯이 광에 쌓아둔 쌀가마도 들고 오면 된다.

라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남의 것을 훔치거나 빼앗으면서도 미안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렇게 살다보니, 살생에 능숙하고, 살생에 익숙하다보니 싸우는 일에 용감했다. 그리고 전쟁터에 나가면 선봉에 서서 칼을 휘두르고 창을 던져 닥치는 대로 죽인다.

그런 자들이 당산 자락에 나타나기 때문에 주민들은 어쩔 수 없이 성을 쌓은 것이다.

대개 동쪽에서 나타난 세력이거나 왜구들이었는데, 그런 자들의 근본을 따져보면, 옛날에 이곳에 진국이라는 나라가 있었을 때, 은혜를 입고 떠났던 자들의 후손이었다.

약탈을 생업으로 삼는 자들은 간편한 복장에 살생도구를 들고 다닌다. 그래야 재빨리 약탈하고 흔적을 남기지 않고 도망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온돌방에 불을 때고 자거나 음식을 익혀먹는 생활은 할 수 없다. 졸리면 아무데서나 웅크리고 자야 했고, 산이나 강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으로 배를 채워야 했다.

그래서 날로 먹는 일에 능숙하다. 넓은 나뭇잎이나 풀잎에 들고 다니던 간장을 부어놓고, 물에서 잡은 생선을 찍어먹는데, 습지에서 찾아낸 고추냉이라도 발라먹으면 성찬이었다. 거기다 소금을 바른 주먹밥까지 곁들이면 더할 수 없는 행복이었다.

백제는 많은 문물을 왜에 전해주다, 나중에는 분국까지 세웠다.
그것은 백제가 원한 것이 아니라, 왜인들이 선진문화가 필요하다고 부탁해서 이루어진 일이었다.

그렇게 해서 백제의 선진 문화를 경험한 왜인들이었는데, 그들 중에서 게으른 자들은 동해를 건너고 금강을 타고 올라와 노략질을 해댔다. 그래서 주민들은 어쩔 수 없이 성을 쌓아야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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