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까짓 것 다시 사면 그만이지, 무슨…”
“다시 찾겠다는 마음가짐이 전혀 엄는기라예.”
“참, 누가 그런 수고스럽게 다시 찾겠소?”
“기래도 한편에선 끼니 걱정에 이어 잠자리 걱정까지 해야 하는 아도 있다아입니꺼.”
하지만 그런 뜻을 교장이 모를 리가 있을까.

어쩌면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짐짓 모른체하며, 물었는지도 모른다. 지금은 노골적으로 드러내놓고 그런 조사를 하지 않지만 봉준이가 다닌던 시절만 해도 “집에 자가용 있는 사람! 피아노 있는 사람! 아파트에 사는 사람!” 하며 학교에서 가구조사를 했다. 이런 조사를 하면 아이들은 위축된다. 그래서 없는 것도 있다, 하며 거짓말도 하게 된다.

학교에서 “장미꽃을 좋아하는 사람! 새를 좋아하는 사람! 산을 좋아하는 사람!” 같은 ‘취향조사’를 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예나, 지금이나 물질적인 것에 국한되어 있는 것은 변함이 없었다.

청소년 시기에 아이들은 ‘자존감’으로 산다.

그 자존감을 뭉개는 이는 어른들이다. 어른들의 동정심이나 연민도 아이에겐 자존감을 무너뜨리는 일로 작용한다. 봉준이의 청소년기는 가난했다. 먹는 일은 공평해야 한다. 부모가 있든 없든. 부모가 부자든 아니든 먹는 건 공평해야 한다.

 그래야 아이들은 자존감을 다치지 않는다. 학교 교육에서조차 아이들의 자존감을 조금도 헤아려주지 않았다.

“지난해 겨울, 동네 숲길에서 마주친 아이들을 잊을 수가 없는기라예.”
“무슨 일인데요?”
“눈부신 날씨를 즐기기 위해 근처의 학교에서 선생님들과 여러 모둠으로 나뉘어 나들이를 했던기라예.”
“소풍인가요?”

“그 가운데 한 무리를 오솔길에서 정면으로 마주쳤어예.”
“정면으로요? 요즘 애들 무서운데?”
”아니예, 맨 앞에 있던 아이가 내와 눈을 마주치더니 무심코 큰 소리로 말하는기라예.“
“무슨 봉변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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