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에 살리라…‘동방에서 온 총각’

▲권오엽 충남대 명예교수.
▲권오엽 충남대 명예교수.

물 건너 동쪽 어딘가에는, 의리 있는 사람들만 모여서 산다는 곳이 있었는데, 보통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곳이었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약자를 괴롭히며 약탈과 방화를 일삼는데, 심술이 고약할수록 좋은 사람이고, 방법이 악랄할수록 정의롭단다. 그래서 거짓에 능하고 욕심이 많을수록 영웅대접을 받는다.

어쩌다 나쁜 짓이 탄로되기라도 하면 자기들이 한 일이 아니라고 우기다 남에게 뒤집어 씌우는 데. 그런 일에 능수능란해야 두목이 될 수 있단다.

“뭐야, 왜구보다 더 한 놈들 아냐.”

보통 사람이라면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 마을에서는 그런 생각을 하거나 말을 하는 사람은 살아남을 수가 없다.

그런데, 그런 마을에 부지런하고 착한 현인이라는 청년이 살고 있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해가 질 때까지 일만하는 청년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를 볼 때마다 “마을의 수치”라며 추방시키려 했다. 그런데도 현인이라는 청년은 마을을 떠나려 하지 않았다, 그러자 마을 청년들은

“죽여 버리자.”

죽이기로 모의하고 높은 바위가 늘어선 계곡으로 데려가더니 돌멩이로 내려치려했다. 바로 그때였다. 하늘이 갑자기 어두워지며

“우르릉 쾅쾅”

천둥번개가 치며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하늘을 가르며 번쩍이는 벼락이 높이 솟은 바위에 부닥치고 번쩍거리자 바위들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남자 중의 남자라고 큰소리치던 청년들은 얼굴색이 파랗게 질려 벌벌 떨뿐, 움직이지도 못했다.

그 위로 높이 솟았던 바위들이 벼락에 맞아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모두가 죽을 수밖에 없는 그 순간, 어찌 된 일인가? 촌장집 마당만큼이나 넓은 바위 하나가 비스듬히 넘어지며 산자락에 걸리더니, 현인과 청년들을 이불처럼 덮어주었다. 그리고 우산이 비를 막아 주듯이, 무너져 내리는 바위들을 튕겨내며, 현인과 청년들을 감싸주어, 모두 살아남았다. 그때였다.

“현인의 적덕으로 살아남은 줄이나 알거라.”

모두 죽어도 마땅하지만, 현인이 덕을 쌓았기 때문에 살려준다는 소리가 들리더니, 천둥번개도 멎었다. 그러면 청년들은 현인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었다.

그런데도 청년들은 오히려 그것이 창피하다며, 다시 죽일 음모를 꾸미기 시작했고, 동네 어른들도 그것이 마을의 명예를 지키는 일이라며 부추겼다. 그것을 안 현인은

“어쩔 수 없다. 이곳을 떠나자.”

마을을 떠날 결심을 하고, 그때까지 모은 재산을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기로 했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은 하나라도 더 얻어가려고 손을 내밀며 아양을 떨기도 했다. 마을 사람들이 현인을 보고 웃는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재산을 나누어준 현인은 괴나리봇짐 하나만 메고 마을을 떠나면서도,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그동안 고마웠습니다.”라는 인사까지 했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은 현인이 마을 어귀도 벗어나기 전에

“저것도 빼앗아버릴 것을 그랬나.”
“아냐, 우리 같이 정의로운 사람들이 그럴 수야 있나!”

라며 히히덕거리는데, 재산을 하나라도 더 얻으려고 굽실거릴 때와는 완전히 다른 표정들이었다.

현인은 재산을 나누어주면서도 하나만은 그럴 수 없었다.

조상 대대로 물려받는 조그만 단지였는데, 그것은 아무에게도 주지 않고 괴나리봇짐 속에 넣고 길을 떠났다. 사발보다 약간 큰 단지였는데, 신기하기 그지없는 가보였다.

매달 둥근 보름달이 중천에 뜨는 시각이 되면, 그 단지에서 “댕그랑! 댕그랑!”하는 소리가 들리고, 들여다보면 노란 금덩이 하나가 빙글거리는 단지였다.

그런데 부지런히 일을 하지 않았거나 일을 해도 게으름을 피운 달에는 둥근 달이 훤히 떴다 서편으로 질 때까지 아무런 소리기 들리지 않는다. 궁금해서 단지 안을 들여다보면 휑하니 비어있을 뿐 금덩이는 보이지 않았다. 그 대신에 거무스름한 연기가 반나절이나 쉬지 않고 피어오르는데, 냄새가 얼마나 고약한지 코뼈가 내려앉을 정도였다.

마을을 떠난 현인은 정처 없이 서쪽으로 걷다가 일하는 사람들은 만나면

“일을 도와 드릴까요.”

일을 거들어 주고 끼니와 잠자리를 해결하며 서쪽으로 나아갔다. 그런 현인과 말을 나누거나 같이 일을 해본 사람들은 한결같이 살기를 권했다. 그때마다 현인은

“세상 구경을 하고 싶습니다.”

라는 말을 하며 서쪽으로 길을 떠났다. 어떤 사람은

“내 딸과 혼인하여 같이 살면 어떻겠는가?”

예쁜 딸까지 주겠다는 사람도 있으나 정중히 사양하고 서쪽으로 향했다.

그렇게 유랑하며 3년이 지난, 어느 봄날이었다. 싱그럽게 솟아오르는 새싹들 사이로 아지랑이가 피어올랐고, 나비들이 하늘거렸다. 선인이 된 기분으로 걷는데, 갑자기 물소기가 요란하여, 걸음을 멈추고 사방을 둘러보니, 흘러가던 물줄기가 방향을 크게 바꾼다.

“어찌 된 거야.”

놀라서 살펴보니, 남에서 북으로 흐르던 강물이 서남쪽으로 굽으러져 흐르는데, 산야의 풍경이 한가로웠다.

“지상낙원이 바로 이런 곳이구나.”

물소리와 풍경에 취하여 서있는데, 흘러오는 강물에 떠내려 오는 것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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