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에 살리라…‘민마루의 선녀’

▲권오엽 충남대 명예교수.
▲권오엽 충남대 명예교수.

하늘에 사는 신이 땅에 내려오기도 하고, 땅에 사는 인간이 하늘에 올라갔다 내려오기도 하는 옛날에, 금강의 금빛 모래밭을 거니는 것이 재미있다며, 민마루에 내려오는 신이 있었다. 옥황상제의 셋째 공주였다. 그러던 어느 가을날, 그날도 금강 변에서 놀고 하늘로 돌아가려고, 민마루에 서서 구름을 부르는데,

“공주님, 이곳에서 주운 밤인데, 아주 구수하답니다.”

어깨가 떡 벌어진 총각 하나가 밤을 가득 담은 자루를 공주에게 건네준다. 인간한테 물건을 받는 일이 처음인 공주는 당황하면서도 기쁘다는 듯, 싱긋 웃으며 밤자루를 구름에 싣고 날아올랐다. 그리고 옥황상제가 천신들을 모아 회의를 하는 곳으로 찾아가 자랑했다.

“공주가 인간한테 받은 선물이라니, 맛이나 한번 볼까.”

산해진미 중에서도 맛있는 것만 골라서 드신다는 옥황상제는, 공주의 기분을 맞춰줄 생각으로, 구워온 밤 하나를 집어 들었으나 기대는 하지 않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하나를 집어서 씹어보시더니

“아니, 이렇게 구수한 것을 인간들이 먹고 산단 말이냐!”

맛있다며, 신하들에게도 권했다. 신하들도 내키지 않은 얼굴로 집어든 밤을 깨작거리더니, 나중에는 어금니로 씹으며 다른 밤을 집어 든다.

“이렇게 맛있는 밤을 구해온 공주가 최고다.”

옥황상제는 왕자들과 다른 공주들이 시샘할 정도로 칭찬했다. 우연찮게 칭찬을 들은 공주는 기분이 좋아, 더 자주 민마루에 내려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공주가 내려온 것을 안 산야의 짐승과 새들이 민마루로 모여들며

“공주님 오늘은 더 아름다워요. 눈이 부셔요.”

아르답다고 칭송하는데, 하늘의 햇빛이 공주의 목에 걸린 보석에 내려앉는가 싶더니 크게 반짝거리며 사방으로 퍼진다. 마침 들에서 일을 하던 떡벌이도 부신 눈을 비비며

“세상이 밝아지는 것을 보니, 공주님이 오신 모양이다.”

공주가 내려왔다는 것을 안 떡벌이는 하던 일을 멈추고 민마루로 달려갔다.

“지난번에는 고마웠어.”

공주가 달려온 떡벌이를 보며 환하게 웃더니, 떡벌이를 앞세우고 들판을 지나 금강에 이르자 물 속애 뛰어들어 헤엄치기도 하고 금빛 모래밭을 뛰어다니며 한나절을 놀았다. 그리고 해가 서산에 지려하자 손짓으로 부른 구름에 오르려 했다.

“공주님께 꽃다발을 드리고 싶어요.”

떡벌이는 어느새 준비했는지 들꽃을 묶은 꽃다발을 공주에게 건네며 얼굴을 붉혔다.

“오늘은 꽃다발이네, 고마워.”

꽃다발을 받은 공주는 기뻐하며 구름을 타고 노을 진 하늘로 날아올랐다. 선물을 받으면 기분이 좋은데, 옥황상제한테 칭찬까지 받아서 그런지, 떡벌이가 더 고맙고 든든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늘에 올라간 공주는 궁궐 회의장에 있는 꽃병에 그 꽃을 꽂았다.

마침 하늘나라에는 감기가 유행하여, 신들이 킁킁거리며 다녔다. 하늘에 사는 신들도 감기는 피할 수 없는 모양이다. 회의장으로 향하는 신들은 한결같이 코를 킁킁거리며

“독감이 유행하는데, 꼭 회의를 해야 하나, 안 하면 안 되나.”

노골적으로 투덜거리는 신도 있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가, 회의장에 들어서는 순간 신들은 눈을 크게 뜨며 코를 벌름거린다. 콱 막혔던 코가 뻥 뚫리면서, 그때까지 맡아본 일도 없는 꽃향기가 코 속으로 빨려들기 때문이다. 꽃향기가 콧속을 타고 정수리로 올라가는 것 같더니 머릿속까지 시원해진다. 신들은 그것이 신기하다며 “훅,훅”하고 짧은 숨을 들이마셔 보다가 “후우우우욱”하고 길게 들이마셔보기도 한다. 그것을 본 옥황상제가

“공주가 천하에서 가져다 꽂아둔 꽃이 신들의 코를 뚫어준 모양이구려.”

꽃병을 가리키며 웃는 옥황상제도 코를 벌름거린다. 그랬다. 공주가 꽂아둔 꽃의 향기가 천신들의 감기를 낫게 해준 것이다.

“공주님 만세, 셋째 공주님 만세.”

코가 뚫린 신들이 만세를 부르며 감사했다. 그렇게 칭찬을 들은 공주는 더 자주 민마루에 내려다니더니, 어느 날에는 떡벌이 총각을 구름에 태우고 올라와

“아바마마, 떡벌이와 혼인하고 싶어요.”

다짜고짜 인간과 혼인하겠다는 말을 했다. 그 말을 들은 천신들이 일제히 옥황상제를 바라본다. 옥황상제가 크게 화낼 것을 걱정하는 표정들이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가.

“하하하, 너에게 자주 선물한다는 그 총각이로구나. 내 이럴 줄 알았다.”

옥황상제는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껄껄 웃었다. 야단치기는커녕 혼인을 허가한 것이다. 그 후로 하늘나라에는 민마루에 가면 좋은 짝을 만날 수 있다는 소문이 퍼져,

구름을 타고 내려오는 신,
달빛을 타고 내려오는 신
별빛을 타고 내려오는 신

이런 저런 신들이 민마루로 내려와서 놀다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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