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에 살리라…‘임난수의 고민’

▲권오엽 충남대 명예교수.
▲권오엽 충남대 명예교수.

목호의 난을 정벌하고 돌아온 임난수 장군은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공민왕은
“장군의 전공은 청사에 길이 빛날 것입니다.”

한쪽 팔까지 잃으며 발휘한 무공을 치하하며 봉선대부로 책봉했다. 그런데도 장군의 얼굴에서는 밝은 표정을 찾기 어려웠고, 사색하는 일이 많았다. 사람들은 그런 장군을
“팔을 잃으신 충격이 큰 모양이야.”

동정하며 위로하려 했다. 가족도 장군의 안색을 살피며 조심하는 일이 많았다. 그러나 장군의 말수가 줄어든 것은 그런 이유가 아니었다. 목호의 난을 정벌할 당시
“지옥의 사자보다 더 징그러운 관리놈들.”

이라고 욕하며 대들던 주민들이 외침이 귀에 생생하고, 칼에 맞아 고통스럽게 죽어가던 얼굴들이 떠오르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길이 빛날 무공이라며 치하했으나, 장군은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절규하던 주민들의 모습이 생각나 한적한 곳을 찾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울적한 마음을 달래려고 송악산 계곡을 찾아 갔는데,
“봉선대군, 어서 오시게나. 기다리고 있었소이다,”

귀에 익은 소리에 고개를 든 장군은
“아니 정온 나리 아니세요.”

기다리는 사람이 대사헌 정온이라는 것을 알자 반색을 하며 달려갔다.

“장군의 용맹은 언제 들어도 감동적입니다.”
정온이 장군의 공을 치하하며 웃는다.

전라도 부안에서 올라온 임난수와 경상도 진양에서 올라온 정온은 말투가 이상하다며 서로 놀리다 친해졌는데, 개인보다 나라를 먼저 생각한다는 사고도 같아 더욱 친하게 지내는 붕우였다. 둘이 얼마나 친한지, 개경 사람들은

“주나라의 관중과 포숙이 다시 태어난 것 같다.”

둘의 관계를 ‘관포지교’에 비유하며 부러워했는데, 둘은 시를 읊는 취미까지 같아

양팔을 벌리고 바다에서 불어오는 해풍을 맞으며
책이 쌓인 채석강에 날아오는 정기를 들이마시네

임난수가 부안 채석강에서 무술을 연마했던 손년 시절을 회상하는 노래를 하면,

바위를 휘감으며 흐르는 남강에 비치는 청운의 꿈을
어제도 오늘도 푸른데 내일도 엊그제처럼 푸르다네.

정온도 젊은 시절에 굽이쳐 흐르는 남강을 거닐며 청운의 푸른 꿈을 다졌던 시절의 기개를 되살리는 노래를 부르곤 했다.

정온은 임난수가 송악산에서 들어가 사색한다는 소문을 듣고,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둘은 정온은 준비해온 술을 마시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고려는 원과 친했는데, 명의 요구로 목호를 치느라, 장군은 팔까지 잃으셨는데, 명의 요구는 한도 끝도 없다네요. 도대체 나라가 어찌되려고 이러는지.”
“그러게 말이외다. 소국의 설움이라지만 도가 지나쳐요.”

오랜만에 만난 둘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어진다.
“이번 전장에서 제주도 주민들을 죽인 일이 마음에 걸린다오,”

잠시 침묵하던 장군이 술잔을 내려놓으며 속내를 털어놓는데, 쓸쓸한 기색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또 죽어가면서 울부짖던 제주도 주민들의 얼굴이 떠오른 것이다.

“요즘은 무술을 연마한 것 자체가 후회스럽기도 하답니다. 나라를 위해서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마음이 좋지 않아요. 그래서 낙향할까 합니다.”

벼슬하는 것이 괴로워 벼슬을 버리고 은거하고 싶다는 속내를 털어놓자,

“장군도 그러시오, 실은 나도 그렇다오,”

정온도 같은 생각을 하는 중이라는 말을 했다. 그리고 둘은 서로 바라보며 웃었다.
이처럼 인생의 중대사까지도 생각하는 것이 같다, 그래서 우리는 붕우다, 라고 생각는 웃으미었다. 둘의 담소는 그치는 일없이 해질녘까지 이어졌다.

그런 일이 있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조선을 세운 이성계는
“조선은 명과 교류하겠다.”

그때까지 교류하던 원과의 교류를 끊고 신흥국 명과 교류할 것을 밝히며, 인재들을 불러 모았다. 그러자 고려에 충성을 맹서했던 많은 신하들이 이성계를 칭송하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임난수와 정온은 고려에 대한 충절을 바꾸지 않았다.

“대사헌 나리, 어제도 이성계가 사람을 보냈는데, 피하고 만나지 않았소,”
“장군도 그러셨습니까. 저도 그랬습니다.”

이성계가 사자를 보내 벼슬을 내리려 했으나 둘은 그것에 응하지 않았다. 그리고 호젓한 곳을 찾아다니며 망국의 아쉬움을 달래려 했다. 그러다 둘이 만나면

“언제까지나 출사를 거부할 수만도 없으니, 낙향해야겠습니다.”
“그러십시다. 나도 그럴 생각입니다.”

낙향의 뜻을 확인하며 세상사를 걱정했다.

■글속엔 권오엽 명예교수의 상상력이 들어가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저작권자 © 세종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